여정(旅情)
길 위에서의 상념들/엊저녁에 출발한 크루즈는 스웨덴(SWEDEN)의 스톡홀름(Stockholm) 가기 위해서 발트 해(Baltic Sea)의 보트니아 만(Bottniska viken) 입구까지 미동도 없이 편안하게 실어다 준다
청솔고개
2020. 5. 24. 22:45
길 위에서의 상념들
청솔고개
인천 공항 가는 길.
오전 10시 2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도로 옆은 어느새 천지에 미만한 아카시아 꽃이다. 이번 여정을 마치고 나면 저 아카시아 꽃도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영종도를 대낮에 이렇게 맑고 훤히 보기는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끝없이 펼쳐진 갯벌, 맑고 깊은 하늘과 구름이 아름답다. 새삼스레 나의 봄 여행의 낭만이 솟구친다. [2016년 5월 14일, 러시아 북유럽 여행 1일 째]
오후 2시 50분에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오후 3시 10분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인천 공항 가는 길은 시골의 정취가 아직 물씬 풍기는 정겨운 우리네 마을 그대로다. 논에는 제법 큰 모 포기들이 무성하다. 육지와 섬 영종도를 잇는 대로라서 도로와 다리가 거대하고 그 자체가 볼거리다. 때마침 썰물이라서 바닥을 드러낸 갯벌은 광활하기 그지없다. 갯벌 들판이다. 자주색으로 물든 알 수 없는 해조류(海藻類)들이 일대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다. 붉은 대지처럼 된 해조류의 군락(群落)은 그 자체가 신비함이다. 영종도 인천 국제공항의 위용이 드러난다. 신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을 이루고 있다. 그 한 쪽에는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어촌의 모습이 한가롭고 여유 있어 보인다. 한 섬의 두 얼굴이다. [2003년 8월 15일, 미 동부, 캐나다 여행 1일 째]
러시아 모스크바 아르바트(Арба́т, arbat) 거리.
아르바트 거리는 생각보다 조용하다. 이른 오전이라 그런지 거리 공연하는 모습도 거의 없다. 푸시킨과 그의 부인 동상을 비롯해서 유명 예술가들의 동상이 있고 거리 중앙에는 구소련,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안내 자료가 빼곡히 전시돼 있지만 깡그리 러시아어로 돼 있어서 내용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빅토르 최, 조선족 출신의 록 가수 기념 골목 추모 벽을 찾았다. 벽이 온통 그를 추모하는 낙서로 가득하다. 한국의 언론에서는 오래 전 에이 가수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보도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르는지 덤덤하다. 나는 ‘ 여기서이렇게 하고 가버리면 안 되는데, 적어도 이 가수한테는’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26년 전 쯤 비극적으로 사망한 소련 록 밴드 ‘키노’의 리더로 빅토르 최는 지금까지도 러시아 음악계의 스타로 남아 있다. 전 국민이 사랑하는 러시아의 록 영웅이다.
이 거리에서 혼자 호젓이 빅토르 최, 푸시킨, 고골리, 톨스토이, 체호프, 차이코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 등 거장들의 그림자라도 밟아 볼 기회가 내게 다시 올까? 이 거리 바로 곁에는 손에 닿을 듯이, 푸시킨의 생가, 박물관, 배우의 집, 고골 동상이 있고 좀 멀리는 도스토예프스키 동상이 세워져 있다. [2016년 5월 15일, 러시아 북유럽 여행 2일 째]
크렘린(Kremlin)대궁전의 밤.
시간이 저녁 9시 다 돼 가는데도 여전히 훤하다. 그냥 사진을 찍어도 바실리 성당이니 성벽 너머 크렘린 대궁전, 그 오른 쪽 초콜릿 색깔을 띤 국립역사박물관, 레닌 묘 등 배경이 또렷이 나온다. 많은 방문객이 한참 늦은 저녁이지만, 해질 무렵처럼 모여서 붉은 광장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있다. 모두들 즐겁고 밝은 표정이다.
이 광장을 직접 와보기 전에는 내게는 ‘크렘린’ 하면 구소련 공산당의 총 본산으로 악명 높은 KGB의 아지트 같은 이미지 밖에 없었는데, 이토록 아름다운 건축물의 집합체인지는 몰랐다. 철의 장막 속 공산당 세계의 음흉함을 흔히 ‘크렘린이다’라고 한 냉전 시대의 빗댐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2016년 5월 15일, 러시아 북유럽 여행 2일 째]
크렘린 대궁전 야경 보고 호텔로 오는 길.
호텔로 돌아오는데 시내 야경이 찬연하다. 아직 훤한 기운이 더 많이 남아 있어서 야경이라기보다 해질녘 풍경이라고 하는 게 맞다. 이런 아름다운 찰나는 내 생애 몇 번 안 될 것 같다. 호텔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훨씬 지났다. [2016년 5월 15일, 러시아 북유럽 여행 2일 째]
여름궁전을 거닐며.
베르사유 궁전을 본 땄다는 여름궁전은 거기에 딸린 정원과 분수가 잘 정돈되어 기하학적인 아름다움마저 느껴진다. 지금 여기는 우리나라 4월 초 정도 기후라, 한창 왕성한 신록이 제 아름다움과 싱그러움을 마음껏 자랑하고 있다. 원색의 튤립이 대자연에 커다란 수를 놓고 있는 것 같다. 모두 제철을 만나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발산하고 있다. 잘 꾸며진 정원을 따라 팥고물처럼 폴폴 날리는 부드러운 흙길을 신나게 걷는다.
지도상 이 궁전은 핀란드만을 향해 있다. 모두들 흥겹고 들뜬 한 순간 순간들을 만끽하고 있었다. 세계지도에서 찾아보니 그 위쪽은 라도가호수인데 러시아에서 바이칼 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2016년 5월 16일, 러시아 북유럽 여행 3일 째]
핀란드 헬싱키 시벨리우스(Sibelius) 공원.
깨끗한 해안을 끼고 부드러운 오월의 잔디가 깔린 시벨리우스 공원을 찾았다. 발트 해 특유의 호수 같이 고요하고 청정한 핀란드 만 너머에는 어제 우리가 묵었던 에스토니아 탈린이 손에 잡힐 듯 나타나 있다. 바로 앞에는 세우라사리라는 작은 섬이 나타나 있다. 물론 지도상이지만.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국민 영웅이자 국민 작곡가다. 그의 사후 10주년을 기념해 이 공원이 세워졌다. 시벨리우스는 러시아에 저항해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에 민족적 정체성을 음악에 반영한 교향시 핀란디아(Finlandia)를 지어 국민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다. 600개의 강철 파이프로 만든 기념비는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을 연상시킨다. 그 옆에 있는 이 위대한 국민작곡가의 두상에도 어딘가 비장한 독립투사의 이미지가 숨어 있다. 이 공원의 오월 햇살은 참 따스하다. 멀리 잔디밭에 배 깔고 독서하는 아가씨의 등이 더욱 포근해 보이고 왠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나도 여기서 잔디에 엎드려 단 며칠만이라도 이 오월의 양광을 쬐면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면서 머물고 싶다. [2016년 5월 18일, 러시아 북유럽 여행 5일 째]
핀란드 투르크에서 스웨덴 가는 크루즈 실야라인(Silja Line) 뱃길.
오후 6시 좀 지나 투르크에 도착해서 실자라인 여객 터미널에 도착했다. 실자라인은 핀란드와 스웨덴을 왕복하는 초호화 유람선으로 길이 203m, 너비 31.5m, 수용 승객 2,900명 규모로 2인 1실용 선실에는 옷장, 에어컨, 샤워실, 화장실 등이 완비돼 있다. 비록 약간 좁아 보이기는 하지만 호텔 객실처럼 편리하다. 면세점, 사우나, 수영장, 카지노, 바 등 각종 부대시설도 있다.
선실 내 식사를 하고, 밤 9시 반에 미끄러지듯 떠가는 바다 위를 바라보면서 흠뻑 북유럽 여정에 젖어 본다. 저녁 식사 때, 반주로 마신 와인 기운이 아직 남아 있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카지노에 들러 슬롯머신도 즐겨본다. 이런 것들이 크루즈의 매력인 것 같다. 꽤나 늦은 밤인데도 백야현상이 지속된다. 아직 날이 훤하다. 해의 기운은 밤새도록 가시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이 밤이 지나면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새날의 새벽이다.
엊저녁에 출발한 크루즈는 스웨덴(SWEDEN)의 스톡홀름(Stockholm) 가기 위해서 발트 해(Baltic Sea)의 보트니아 만(Bottniska viken) 입구까지 한 점 미동 없이 편안하게 실어다 준다. 내해로 이어져 있는 바다가 그냥 호수 같다. 얼음 위를 미끄러져 흘러가는 것 같다. 구름 타고 하늘을 떠다니는 듯 한 편안한 기분이랄까. 선상에서의 하룻밤이 짜릿한 꿈결이다. 더없이 낭만적인 첫날밤의 두근거림은 가시고, 이제는 선상에서 맞는 해뜨는 아침이다. [2016년 5월 18일~19일, 러시아 북유럽 여행 5일~6일 째]
스톡홀름(Stockholm) 시청사에서 주변을 조망.
스톡홀름 시청사에 도착하니 아침 7시 30분, 이른 시간이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시청사가 고요한 멜라렌(Mälaren) 호수에 비쳐서 더욱 빛나 보였다.
바다 건너편의 아침 정경은 아침 안개에 잠겨 있다. 아름답고 품격 있고 멋진 건물, 여유 있는 풀밭, 상쾌한 공기, 맑고 깨끗한 주변의 호수 같은 바다와 섬의 풍광 등이 새로운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다.
이 나라가 스칸디나비아의 다른 나라들처럼 상당히 북쪽에 위치해 있지만 동쪽 면에 자리 잡고 있어서 대서양을 순환하는 멕시코 난류 덕분에 겨울에도 대체로 온화한 기후 때문인가. 아니면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삼림으로 덮여 있고, 10만 여개나 되는 호수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이 도시가 750년의 역사를 지녔고 14개 섬이 57개 다리로 연결된 특이한 아름다움을 지녀서인가. [2016년 5월 19일, 러시아 북유럽 여행 6일 째]
바사 호박물관(Vasa Museum) 가는 길.
이어서 바사호박물관 가는 길은 스톡홀름 시가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섬을 이어놓은 다리와 아기자기하고 나지막한 구릉에 자리 잡은 건축물은 시각에 따라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톡홀름중앙역 근처, 세르겔 광장(Sergel's Square, Sergel Tog) 중심으로는 오래된 문화적 전통을 곱게 보존하는 이들의 높은 수준의 문화의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 같았다. 수백 년이나 되는 건축물이 즐비하다. 다 답사하려면 몇 달은 체류해야 할 것 같다. 고품격 도시다. 아직도 잘 꾸며진 장난감 기차 같은 트램이 여유 있게 도심을 오간다. 제복을 멋있게 차려입고 말을 타고 거리를 순찰하는 경찰이 이채롭다.
바사 호 박물관을 관람하고 주변을 돌아서 바닷가를 산책한다. 어디를 둘러봐도 그림엽서의 모델 풍광이다. 깔끔하고 낭만적이며 이국적이다. 어선, 요트, 여객선 이 여러 섬 사이로 그림 같이 펼쳐져 있다. [2016년 5월 19일, 러시아 북유럽 여행 6일 째]
스톡홀름에서 왼쇠핑(Jonkoping) 가는 길.
덴마크로 이동하기 위해서 스웨덴 왼쇠핑으로 이동했다. 도로 연변은 새파란 초지와 샛노란 유채밭, 민들레 밭이 이어져 있다. 그 뒤로는 두텁게 조성된 자작나무와 소나무 숲이 있는 언덕이다. 호수인지 강인지 모를 맑은 물길에 비치는 땅버들, 수양버들의 그림자가 이국 봄날의 여정을 더욱 짙게 해 주었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찾으리오. 한 순간 순간이 더욱 절대적으로 소중하고 아름답다. 이리 아쉬운 느낌이 절실하니 길을 떠나는 거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오른쪽 튼실한 허벅지를 가로질러 4시간 걸려서 왼쇠핑에 도착하니, 오후 5시 좀 지났다. [2016년 5월 19일, 러시아 북유럽 여행 6일 째]
덴마크 헬싱괴르(Helsingor) 크론보르성(Kronborg Castle)에서 코펜하겐(Copenhagen, København)으로 가는 길.
고성(古城) 크론보르성을 조망하고 코펜하겐 가는 길은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의 연속이다. 집집마다 흐드러지게 핀 자줏빛 라일락이 내 이웃집 것처럼 정답다. 시내로 들어서자 길가에 정장차림, 혹은 편하게 입은 시민들이 거의 대부분 자전거로 이동한다. 100년에 세계 최초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든 덴마크답게 자전거 우선 정책이 확립되어 있다고 한다. 시민들은 자전거 교통이 훨씬 안전하기도 해서 무려 35% 정도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고 한다. [2016년 5월 20일, 러시아 북유럽 여행 7일 째] 2020.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