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삶과 죽음 2, 결국 한 번도 이 약속을 지켜 드리지 못한 게 한이 된다
청솔고개
2023. 2. 3. 00:16
청솔고개
얼마 전 내가 읽은 소설이 생각난다. 이런 내용이다. 요양병원에 있는 한 재력가가 거동이 심히 불편해서 자기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없자 이걸 도와주면 수천 억대 자기 전 재산의 반을 주겠다고 한 젊은 종사자에게 제안했는데 이 종사자가 법적인 문제와 양심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제안 수용을 거절했다는 이야기다. 그 이유는 물론 그 환자의 요구대로 도와주면 자살 방조 혹은 조력의 범죄를 저지른다는 합리적 판단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그 환자는 왜 그런 요청을 했을까? 그의 처지로 볼 때는 더 이상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자신의 힘으로는 그걸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조건을 내걸고 협조를 요청했던 것이다. 나는 7년 전과 반 년 전에, 각각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의 요양병원에서의 말년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어서 그런지 이 환자의 심중이 좀 이해가 된다.
아버지께서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후 처음 몇 달은 하루에도 많게는 예닐곱 번 적게는 두세 번 맏아들인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병원 생활의 답답함과 불편함, 불안함 때문에 여기서의 생활이 마치 지옥 같다는 호소를 하시고, 내일 당장 죽어도 좋으니 집에 가서 하룻밤이라도 마음 편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싶다고 애원하시곤 하셨다. 물론 이건 병원 주치의의 허락이 있어야 하며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는 사안이라 그때마다 나는 이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곧 종식될 터이니 조금만 참으시라고만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마다 아버지께 희망고문을 해드린 셈이다. 결국 한 번도 이 약속을 지켜 드리지 못한 게 한이 된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내게 “요즘 왜 그런 거 있잖아? 한 알만하면 잠자듯이 편안하게 가는 거, 그런 거 의사한테 얘기해서 좀 구해다오. 내가 여기서 미쳐 죽는 꼴 봐야겠나? 정말 내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절대 안 물을 테니 좀 도와 다오.”하셨다. “야야, 지금 내가 답답해서 내가 바로 여기 4층에서 저 밑으로 뛰어내려 버리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심중을 대략 짐작은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식한테 어찌 그런 못할 소리를 하실 수 있습니까?”하고 아버지를 도리어 윽박질렀다. 우리 아버지는 가실 때까지 인지능력이 어느 정도 유지되셨으니 이렇게라도 당신의 고통을 충분히 호소라도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2023.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