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삶과 죽음 4/ 거기서도 내가 좋아하던 봄에 피는 꽃, 가을에 물드는 단풍을 과연 볼 수 있을까
청솔고개
2023. 2. 5. 00:10
삶과 죽음 4, 이것만 서약해 놓으면 이승에서의 생지옥만큼은 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참 안심이 된다.
청솔고개
어머니가 치매와 뇌경색, 급성신부전 등으로 병원집중치료실에서 처치를 받고 있을 때 병세의 고비를 맞으니 병원 측에서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등 서너 가지 연명치료 시행 여부에 대한 보호자 의사 확인을 요구했다. 당시 아버지는 어머니께 환자에게 극심한 고통을 줄 수도 있는 연명치료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사인을 했고 이 결정은 나중에 요양병원에서 장기 입원 중 돌아가실 때까지 그대로 유효하게 되었다. 5년 후 어머니와 거의 똑 같은 과정을 겪으시던 아버지께는 내가 보호자 대표로 다른 가족들과 협의 후 같은 내용에 확인 사인을 했다.
이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확인해 보았다. 그 법적인 근거는 연명의료결정법(2018. 2.4.)에 명시되어 있다.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두 가지가 있다. 현재 나의 입장에서 이를 시행하려고 하면 나의 경우 ‘회생 가능성이 없고 임종과정의 말기에 해당하여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 환자’의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다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등록기관에 등록하면 유효하도록 돼 있으며, 혹 의향이 바뀌면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나는 이런 제도가 너무나 잘 돼 있다고 생각했다. 환자의 자기 생명권 선택권을 평소 건강할 때 보장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연명치료 절대 거부, 생전 장기 기증 서약 등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진행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할 것 같다. 결정되면 조만간 건강보험 관리공단 지부를 방문하여 서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이것만 서약해 놓으면 이승에서의 생지옥만큼은 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참 안심이 된다.
어언 2월 초순이다. 오늘이 입춘이다. 날짜로 봤을 때 겨울은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다. 3월에 접어들면 내가 손꼽아 기다리던 매화, 생강나무 꽃 산수유, 진달래, 벚꽃, 산벚꽃, 겹벚꽃, 철쭉 순대로 피어날 것이다. 그 따스한 봄이 올겨울에는 유난히 기다려진다.
문득 내가 내일이라도 갑자기 죽으면 가장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죽어 저승에 가서도 이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남북통일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내가 좋아하던 봄에 피는 꽃, 가을에 물드는 단풍을 지켜 볼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죽어서 좋은 데 가면 봄꽃 가을 단풍도 어쩌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본다. 거기서도 목청 돋워서 “그 시절 그리워 동산에 올라보면 놀던 바위 외롭고 흰 구름만 흘러간다.”하고 한 소절이라도 노래 부르고 싶다. 2023.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