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삼월 초하루 즈음 4, 그때 그 친구들, 그 친구들 한복판에서 풍금 치시면서 열정적으로 고개 흔드시던 젊으신 아버지의 모습이 더욱 선하다

청솔고개 2023. 2. 26. 01:45

                                                  청솔고개

   국민학교 6학년 시절이 다시 떠올려본다. 담임선생님이선 아버지께서는 음악시간에 유달리 열정적이셨다. 음악교과서에서 나와 있는 곡목 범위를 넘어서서 음악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감성을 전해주려고 노력하셨다. 낡은 교실에서 낡은 풍금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 하듯 가르쳐 주시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를 통해 나의 평생 감성과 낭만을 키워나갔다. 서른다섯 청년교사로, 혈기 왕성한 젊은 아버지로서의 순수한 교육애가 어린 이 아들에게도 그렇게 뜨겁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으리라.

   이후 아버지는 틈만 나면 피아노 건반에서 시름 달래시곤 하셨다. 아버지가 큰집 건너 방에서 혼자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생애 구비마다 당신 자신과 우리 어머니, 우리 5남매 등 가족들에게 닥쳐오곤 했던 온갖 시련과 고통, 애환을 피아노의 선율에 묻으셨던 것이다. 허공에 날려버리고 하셨던 것이다. 삶의 무게, 그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어깨를 가볍게 하시고자 하셨다. 건반 두드림은 아버지께는 일종의 정신적 승화 작업이셨다. 아직도 큰집에 아버지의 그 평생피아노가 놓여 있다. 이를 어쩔거나 이제…….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은상(李殷相) 작사, 박태준(朴泰俊) 작곡] 

   그때 교실에서 아버지와 함께 배우고 불렀던 ‘사우[思友, 동무생각]’의 노랫말을 다시 떠올려 본다. 그때는 ‘교향악, 백합 같은 내 동무, 청라언덕’이 무엇인지 잘 몰랐었다.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왜 사라지는지도 잘 몰랐었다. 모두 내 평생을 살아오면서 조금씩 알게 된 것들이었다.

   삼월 초하루가 다가오니 다시 떠남과 만남의 교차가 회상된다. 어린 날, 광 낸다고 초칠하여 반질거리는 마루로 된 복도와 삐걱거리는 구멍 난 나무송판 교실에서였다. 그때 그 친구들, 그 친구들의 한복판에서 풍금 건반 두드리시면서 열정적으로 고개 흔드시던 서른다섯의 젊으신 아버지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선연하다.               2023.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