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아재, 아재, 나의 아재 5/ 이 장조카는 우리 아재의 기적 같은 쾌유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청솔고개
2023. 3. 11. 00:05
아재, 아재, 나의 아재 5
청솔고개
삼촌은 평생 교직에 종사하시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시다가 40여 년 전에는 졸지에 해군입대 후 훈련 중 순직으로 큰아들을 앞세우는 비운도 겪으셨다. 그 참담한 마음을 가눌 길 없으셔서 산행에 깊이 빠져드셨다. 산행을 통해서 자식 먼저 보내신 마음을 달랬다고나 할까.
말레이시아 최고봉 등 해외 유명한 산까지 등반했다고 자랑하시더니 그 후는 다시 마라톤에 입문하셨다. 마라톤 150회 완주 기념 타월까지 주문해서 돌리셨다. 삼촌의 명함이 새겨진 수건을 대여섯 번은 받는 것 같다. 삼촌은 완주 200회까지 채우는 게 평생 과제라고 공언하셨다. 삼촌 댁에 들러 보면 삼촌 방 하나에 그동안 마라톤 완주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온통 도배가 된 걸 보고 놀랐다. 연령대별 대회 우승트로피 포함한 각종 입상 트로피도 즐비하게 전시돼 있었다. 참 대단한 분이시라면서 내 친구들에게 자랑까지 자주 했었다.
동아국제마라톤 대회, 경주벚꽃마라톤 대회 등 굵직굵직한 국내외 대회에는 빠짐없이 참가하셨다. 100킬로미터, 150킬로미터를 도시락을 매달고 달리면서 밥을 먹어가면서 밤새 달리는 울트라마라톤에 완주했노라고 자랑하시던 게 생각난다. 합천의 황강 바닥을 달리는 수중 마라톤, 보스턴, 베이징 등 국제마라톤에도 참가할 정도로 마라톤 마니아이셨다. 나도 베이징 마라톤 참가 기념 티셔츠도 하나 받아서 여름만 되면 입곤 한다.
삼촌이 이런 익스트림스포츠에 빠져드는 심리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많은 풍파를 겪으면서 심한 상실감, 공허감 등으로 마음이 힘드니 자연스레 몸을 힘들게 함으로써 극복하려는 심리기제 같다. 그런 상황을 내가 겪어보아서 조금은 알 것만 같다.
그러시던 삼촌이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병상에 저리 누워계시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병실에서 나오면서 종제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삼촌께 당신의 형님이 반년 전에 별세하신 걸 이제는 알려 드렸는가? 하고. 그래서 알고는 계시는가? 하고. 당신의 형님이 가신 직후에는 충격 받을까봐 종제가 차마 말 못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후에라도 알려드렸는지가 궁금하다. 아무리 몸과 마음과 쇄락해진 인생 말경이라고는 하지만 형제간 유명 달라진 사실은 알려 드려야 하고 또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 남은 혈육 간의 도리와 존엄을 지켜드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문득 두 형제가 마지막으로 상봉한 적이 언제쯤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시국 시작 이전에서 1,2년 더 거슬러 올라간 시점일까? 아마 종중 묘제 때나 설 명절 때일 것 같다. 삼촌은 고향에 와서 형님을 보고 싶다는 말을 수없이도 되뇌었는데도 결국 이루지 못했다. 어떤 이유를 댄다하더라도 이것은 나를 포함한 후세들의 책임이다. 나는 세상에 둘밖에 없는 형제분, 그 두 분 세대에서, 적막하기 짝이 없는 인생무대에서의 퇴장을 목도하고 있다. 얼마 안 가서 나도 저런 모습으로 나의 후세들에게 비칠 것 같아 자못 비감해진다. 이 장조카는 우리 아재의 기적 같은 쾌유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2023. 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