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먼 산에 아지랑이 3/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청솔고개 2023. 3. 20. 23:14

먼 산에 아지랑이 3

                              청솔고개

   오늘은 초등학교 동기회 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며칠 전부터 이 모임에 대한 기대감이 마치 초등 시절 소풍 날짜를 받아 놓은 아이의 마음 같더군요. 그래서 이 나이에도 살짝 들뜨는 기분입니다.

   이 동기생들과 나는 각별한 인연으로 맺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결코 눈을 감을 때까지 이 모임을 외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혹여 어떤 일로 내가 이 친구들을 저버려서는 더욱더 안 된다는 강한 신념이 있습니다.

   그 연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59년 전 나의 아버지께서 이 친구들 6학년 졸업반 담임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담임교사라는 사실에 대한 나의 부담감은 감당할 수 없었지만 한편 든든한 뒷배이기도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것이 또한 나를 자라게 하는 큰 힘이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가 담임교사인 국민 학교 6학년 졸업반 그 시절에는 60년대 초반이라 아직도 살기에 급급했습니다. 시골에서는 상급학교인 중학교 진학은 46명의 졸업생 중 10명도 채 안 되었습니다.

   당시 국민 학교 졸업식장이 왜 눈물바다가 되는지 요즘 세대에게는 암만 설명을 해도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정들었던 친구들과의 이별의 슬픔에다 이제 다시는 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현실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상실감과 박탈감은 당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감히 헤아린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열세 살 그 어린 마음들이 오죽했겠습니까? 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자조적(自嘲的)인 표현을 들어본 적은 있나요? ‘나는 가방끈이 짧다’느니, ‘문교부혜택을 못 받았다’느니 하는 그것 말입니다.

   졸업식의 클라이맥스는 울음바다를 이루게 되는데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 장면은 아직까지 제창되고 있는 ‘졸업식 노래’ 2절(답가)의 다음 구절이 불리어 질 때입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그런 세월을 함께 보낸 오늘의 친구들입니다.    2023.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