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먼 산에 아지랑이 4/ 서른다섯의 한 청년 교사가, 젊디젊은 우리 선생님이 저 하늘 가 멀리 어디서 구름이 되어 바람이 되어 우리를 인솔하시고

청솔고개 2023. 3. 21. 00:08

먼 산의 아지랑이 4

                                                 청솔고개

   오늘 동기회에서 나는 회장으로부터 인사말을 부탁 받고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최근 나의 근황, 즉 허리 수술에 대한 나의 호소와 이후 나의 심리 상태 변화, 그리고 작년 여름 아버지 상을 당했을 때에 보여준 친구들의 도움에 감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도 쌓인 게 좀 있어서 일어선 김에 하소연처럼 하려다가 너무 길어지면 듣는 이들의 심중은 안중에도 없이 내 감성풀이만 될까봐 참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고집을 소신, 신념으로 확증한다든지, 신세 한탄, 자조적 감성이 넘치는 넋두리를 눈치 없이 늘어놓는 상황을 많이 목도하게 됩니다. 적어도 듣는 이로 하여금 말하는 이의 감정을 퍼 담아 주는 쓰레기통이 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감정과 감성의 절제와 조절은 꼭 글이나 노랫가락에서만 있어야 되는 게 아니고 일상의 말하기에서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회의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정담에 흠뻑 빠져 있다가 그 시절 소풍 갔던 곳을 함께 가 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소풍 간다고만 하면 봄가을로 한 번도 빠짐없이 갔던 정자가 하나 외롭게 서 있었던 그 계곡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골짜기를 들어가는 길가에 참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친구 중 누가 이런 노래로 선창을 했습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그 목소리에는 일흔도 더 넘은 나이에서 10대 초반의 목소리로 돌아가 보려는 애씀의 흔적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좀 어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진실함과 천진함은 그대로 배여있었습니다.

   우리들 마음은 벌써 59년 전 그 시절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다만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때는 우리 선생님이 우리를 인솔하셨습니다만 지금은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안 계십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자꾸 생각이 됩니다. 서른다섯의 한 청년 교사가, 젊디젊은 우리 선생님이 저 하늘 가 멀리 어디서 구름이 되어 바람이 되어 우리를 인솔하시고 계신다고, 그날처럼. 그래서 우리는 모두 그날의 소풍을 떠나는 기분이  되었습니다.    2023.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