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다시 빈집에서 3/ 이 빈집에서 나는 나의 부재, 상실, 죽음 등을 체감할 수 있다

청솔고개 2023. 7. 27. 18:21

다시 빈집에서 3, “내가 갑자기 무슨 애니미즘(animism) 혹은 정령신앙(精靈信仰)에나 경도된 것처럼 느껴진다.”

                                                                                  청솔고개

   나는 왜 이 여름 두 달 째 아침마다 복잡한 골목길을 거쳐 이 낡은 집을 찾게 되는가. 그것은 이 집에서 실감하게 되는 부재, 상실, 죽음 때문인 것 같다. 이 빈집에서 나는 나의 부재, 상실, 죽음 등을 체감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나의 실체를 실감할 수 있다. 나의 생존도 확인하게 된다. 또한 이런 것들을 통해 내가 비로소 위안을 받게 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희한한 일이다. 아마 언젠가는 나도 그러한 상황의 중심에 서게 될 것 같은 예감 때문인가. 여기 빈집 방마다 내 앞에 놓여 있는 모든 물상(物像)들에서 내가 이생에서 알고 겪었었던 누군가의 부재, 상실, 죽음을 확인한다.

   축 늘어져 홀로서지 못하는 소나무 한 그루 있다. 소나무 치고는 기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생전에 아버지는 끈으로 얼기설기 매서 2층 문으로 이어 놓았다. 몇 차례나 가지치기 해 놓아도 자꾸만 자라서 앞집을 범접하는 이름도 모르는 나무 한그루가 이제는 이집 주인인양 버젓이 마당 한복판에서 버티고 있다. 가장자리가 터져 깨진 간장 단지 밑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소금 덩이에서는 당신들의 반백년 세월을 읽을 수 있다. 어느 여름 날 큰집을 들렀는데 아버지는 독을 가득 채운 황토반죽처럼 굳어진 이 된장을 박박 긁어서 국을 끓이시는 걸 목격했다. 그 된장 덩이는 말라붙어 돌처럼 돼 있었다. 생전 어머니가 언제 담갔는지 모를 일이다. 여기만 들르면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아버지는 당신에게 온 온갖 우편물을 다 챙겨 놓으셨다. 모임 통보용 우편엽서, 세금고지서와 영수증, 은행 통장과 심지어 거래확인서나 영수증, 수도, 전기 등 여러 공과금 고지서가 장롱, 벽장, 서가 등 어디에서라도 가지런히 뭉쳐 놓아 흐트러짐 없이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 초창기부터 구입해 쓰시다 남겨 놓은 각종 휴대폰이 10개나 된다. 티브이나 전축의 리모컨도 무슨 보물단지나 되는 것처럼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비록 모든 게 먼지를 덕지덕지 뒤집어쓰고 있어도. 그밖에 꼽을 수도 없는 잡동사니 하나하나에서도 아버지의 숨결과 손길을 감지할 수 있다. 내가 갑자기 여기서 무슨 애니미즘(animism) 혹은 정령신앙(精靈信仰)에나 경도된 것처럼 느껴진다.      2023.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