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23. 8. 25. 23:54
청솔고개
거실에서 키우고 있는 다육이 몇 개가 달포 전부터 힘이 없어 보이고 밑동부터 잎이 시나브로 지고 있었다. 마치 다 핀 동백꽃잎이 떨어져 땅바닥에 쌓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증상으로 여겼었다. 그런데 며칠 전 서울 간다고 집을 나흘 비운 뒤에 와보니 그 증세가 더욱 악화됐다. 화분 한두 개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다 그런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 동안 태풍으로 문을 너무 처닫아 놓아서 습도와 온도가 지나치게 높아져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아니면 내가 물을 준 뒤 혹 너무 많이 줬나 싶어서 좀 마르라고 이 폭염에 창가 달궈진 곳으로 무작정 내몰지는 않았나 하는 죄책감도 든다.
작년 여름까지 2,3년 동안은 그보다 더 좋지 않은 생육환경이었지만 잘 버텨줬는데 이 상황이 정말 답답하다. 3년 전인가 찻집 아래층 가게에서 구입해서 멋지게 키워오던 다섯 개의 다육이중에서 하나만 온전한데 이것도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생긴다. 아직까지 다육이 이름 아는 게 별로 없다. 이것이 크면서 그 모양도 묘하고 그 기세도 왕성하게 뻗어간다. 그 싱싱한 과육 같은 잎이 기하학적으로 뻗어나가는 게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허나 나머지 네 개는 다 그런 증상을 보이고 있다. 몇 주 전부터 다육이 잎의 상태가 좀 이상해 보여서 만지기만 하면 밑 부분은 그냥 스르르 흘러내려버린다. 맨 위의 한두 층만 남아 있다. 떨어진 잎들은 바짝 마른 화분흙에 말라붙어 있다. 속이 상한다. 그때 뭔가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중 내가 가장 가슴아파하는 게 하나 있다. 작년 초인가 어느 날 저녁 늦게 들어오다가 아내와 내가 아파트 자전거거치대 근처에 뿌리에 흙이 묻은 채로 그냥 버려져 있는 다육이를 보았다. 유기(遺棄) 다육이라서 우리 마음이 더욱 짠했다. 아내는 바로 비닐봉지에 담았다. 이렇게 정성껏 거두어 들여서 심어놓았는데 잘 커주었다. 당초 우려했던 거와는 딴판이었다. 그 다육이를 바라볼 때마다 너희가 우리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 했나 하는 생각까지 하곤 했다. 이것도 올 7월까지는 아주 싱싱하게 잘 자랐었다. 올 가을이나 내년 쯤 그 세력이 많이 커지면 따로 준비된 화분에 심으려고 흙까지도 준비해 놓았다. 그런데 이제는 이것도 잘못돼 가는 것 같다. 갑자기 모두다 허사가 되어버리는 두려움이 생긴다. 2023.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