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23. 8. 26. 00:06
청솔고개
내가 이 상황이 하도 답답해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여름철 기온이 지나치게 높거나, 통풍이 안 되거나, 지나치게 습하면 그런 물러짐 병증이 생긴다고 설명해 놓았다. 이에 대비한다고 했는데도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겠다. 비바람이 심하지 않으면 항상 온 창문을 다 열어놓았고 에어컨을 가동해서 습도조절도 제대로 해주곤 했었다.
그 동안 이들과는 서로 말은 못 나누지만 뭔가 교감(交感)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틈만 나면 농부가 조석으로 채전 밭이나 문전옥답을 둘러보듯이 하루에도 서너 번은 족히 둘러보곤 했던 것이다. 논밭의 곡식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은 진실이다. 이들은 우리 집에 들어오는 대로 그런대로 잘 커주면서 내게 많은 것을 안겨 주었다. 아낌없이 주었다. 생명 현상에 대한 외경심(畏敬心)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그런 확신을 심어주었다. 아파트 베란다라는 밀폐, 밀접, 밀집이란 삼밀의 척박한 환경에도 생존을 위해 애쓰는 그 모습이 아름답고 또한 눈물겨웠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 줄기나 잎에서 움, 촉, 실뿌리를 내면서 스스로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내가 노경에 하루하루 무단히 무기력증이나 답답증에 빠지면 나도 모르게 이들을 한 번씩 둘러보게 된다. '다들 잘 있나' 하고 살피는 순회방문이다. 사막을 극복하려는 그들의 생명력 확인만으로도 나는 힘을 얻었다.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내게는 힐링이고 기쁨이고 선물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이름들을 제대로 아는 게 없다. 학명 같아서 한참 낯설고 익히기도 어려웠다.
아직 좀 생생해 보이는 다육이 잎을 미리 잘라서 다른 화분에 옮겨 심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간 이 좁은 공간에 들어와서 커가는 모습을 통해, 왕성한 생명력을 통해, 내게 얼마나 많은 즐거움과 살아가고자 하는 의욕을 주었던가. 이제 이들이 타고난 생명력이 다한 것이다. 제 할 일을 다한 것이다. 나는 그들이 오랫동안 내 곁에 있기를 바랬다. 성장의 경이로움을 보여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한순간 이건 내 욕심이다. 그 욕심이 지나치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2023.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