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 산행, 단상 1
청솔고개
오솔길을 올라간다. 태풍전야의 바람에 풋밤송이가 많이 떨어져 있다. 구르고 있다. 어언 가을 소식인가. 능선을 따라 오르막에 올라도 덥지 않다. 서늘하고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헤세가 사랑한 가을인가.
첫 쉼터에 이르렀다. 계곡 너머 비탈에는 송림이 짙어져서 오히려 검은색이다. 자산(玆山)이다.
나는 이 한 시간이 참 행복하다. 나우 앤 히어, 이 순간, 이 곳이 행복하면 행복한 거다. 마음 평화다. 이 순간이 이어져서 평생을 이룬다. 나의 행복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여기 쉼터, 지금 흩뿌리는 빗소리가 정겹다. 귀한 시간, 소중한 장소다.
두 번째 쉼터에 앉는다. 나의 저림도, 떨림도, 뒤뚱거림도, 더덩덩거림도 모두 내것, 끌어안고 나와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골짜기 물이 줄었다. 펑퍼짐 앉아서 얼굴과 목에 샘물을 끼얹는다. 손수건에 물을 추겨서 목에 끼얹고 얼굴을 닦는다. 기분도 좋고, 모기가 달려들지 않아서 좋다.
낙우송 숲에 도달했다. 입구에 흙이 짓이겨져 있고 파헤쳐져 있다. 멧돼지가 목욕한 것인가. 땅속 벌레를 탐한 것인가. 삼라(森羅)와 만상(萬象)의 생존이 치열함을 보게 된다. 바로 위로는 밑동째 드러내고 있는 거목의 뿌리가 참람하다.
낙우송 아래 목마에 걸터앉으니 시원하다. 눈을 감고 108번을 세어본다. 증조할아버지로부터 숙부님까지 가신 분의 영자(靈子)를 떠올려본다. 중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다. 여기서 참 오랜만의 묵상이고 명상이다. 떠나려고 출발하자 비가 세차게 내린다. 우산을 편다. 2023.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