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행로(行路)

우중 산행, 단상 4

청솔고개 2023. 9. 4. 00:47

우중 산행, 단상 4

                                         청솔고개

   10시 좀 지나니 세차게 내리던 비가 약한 이슬비로 바뀌었다. 나는 황급히 산행 준비해서 옥룡암 입구로 향했다. 들머리에는 ‘기상악화로 출입금지’라는 경고문구와 더불어 차단해 놓았다. 오늘은 옆으로 돌아서 올라가보기로 했다. 옥포저수지 옆길로 해서 올라갔다. 여기도 두 군데 출입금지라 안내해 놓았지만 오늘은 좀 지나가기로 했다. 첫 번째 여울을 만났다. 계곡 물 건너려고 해보니 물살이 제법 세다. 떠내려 갈 걱정은 조금도 없겠지만 무리하게 건너다가는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등산화가 많이 젖을 것 같기도 하다. 혹은 다칠 수도 있다 싶어서 건너기가 좀 꺼려진다. 다시 능선 오솔길로 되돌아가서 두 번째 물 건너는 데 이르렀다. 거기도 마찬가지다. 다시 능선 길로 해서 되돌아왔다. 벌써 두 차례 오르락내리락한다. 오늘 제대로 체력 훈련하는 것 같다. 웃비는 거의 오지 않았지만 대신 모기가 걱정이다. 흰 줄이 보일 듯 말 듯 나 있는 이 산 모기에 한번 물리면 그 통증과 심한 간지러움 때문에 그 불편, 불쾌한 감각은 형언하기 어렵다.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른다고 보면 된다.

   첫 쉼터에 다다랐다. 솔잎 끝에 빗물이 동글동글한 구슬로 맺혀 있다. 굵은 진주다. 이슬이 이토록 영롱한 느낌을 주는 줄 처음 알았다. 역시 자세히 보아야  고운가 보다. 솔잎 끝에 맺힌 이슬이 염주이며 묵주다. 몇 장을 확대해서 찍어서 폰에 담아 본다.

   마지막 물 건너는 데는 다행히 중간에 디딜 곳이 있어서 거의 젖지 않고 건넜다. 아무래도 상류라서 수량이 적을 것이라고 예상은 한 바다. 낙우송 숲 아래는 예상대로 아주 질벅했다. 비닐봉지를 꺼내서 걸터앉은 목마에 깔고 앉아보았다. 모기를 쫓아가면서 또다시 삼불화두에 빠져본다. 늘 했던 것처럼 먼저 가신 증조할아버지부터 할머니, 작년의 아버지까지 그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우리 아이들, 아내, 형제자매들의 모습도 떠올리면서 세어 나갔다. 그러면 나의 정체성과 시간과 공간의 좌표에서 나의 존재감이 되살아난다. 전에도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내 나름대로의 명상법으로 이렇게 하니 좀 개운해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마음이 많이 편해진다.

   그새 그 산 모기가 두어 군데 문 것 같다. 왔던 길로 다시 내려왔다. 오늘 물길을 잘 못 건너 우왕좌왕했더니 다리가 좀 풀리는 것 같다. 첫 쉼터까지 내려와서 아래 골짜기를 굽어보니 아직 안개가 자욱한 게 또 비가 한 줄금 세게 내릴 것 같다. 올라갈 때 보았던 솔잎 끝 구슬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햇살도 없는데 그 새 말라버렸다. 내려오면서 전번에 모아 두었던 소나무껍질을 담아갈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이것이 정말 화분 밑동에 깔면 보습효과가 있을까. 한 번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2023. 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