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말의 향기

청솔고개 2023. 12. 31. 23:39

말의 향기

                                                               청솔고개

   한해가 또 어둠 속으로 저물어 간다. 해가 바뀐다는 것은 시간과 인간의 편의를 위해 날짜의 개념을 적용해서 덧씌운 분절성을 통한 의미 부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달그믐날과 정월 초하룻날을 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행태는 조금은 별나 보인다. 그래서 ‘가는 사람 붙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마라.’를 나는 ‘가는 세월 붙들지 말고 오는 시간 거절하지 마라.’로 고치고 싶다.

   갈수록 친구 사이의 개인적인 인사말을 비롯해서, 방송과 포털에서 과잉 정서로 포장된 언어가 난무한다. 언어가 난무하면 일견 세상이 참 활발하다고 느껴지지만 그만큼 인간은 언어 내적으로 간직해야 될 기운과 품격을 천박하게 소비하게 된다. 그 천박한 모습은 디테일에서부터 콘텐츠 전체에 걸쳐 불량품을 양산하게 되고 이는 다시 우리 인간들에게 나쁜 기운으로 앙갚음하도록 하는 것 같다.

   우리 모두가  개인적 오프라인에서나 SNS,  혹은 공중파 방송 등에서 저급한 말 한마디나 메시지가 내뿜는 기운은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의 '매우나쁨' 상황보다 더 심각할지 모른다. 나는 요즘 우리 사회가 점차 증오, 혐오의 양산에 경쟁적으로 뛰어는 것 같은 섬뜩한 광기를 느낀다.  

   평생을 모국어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온 나로서는 최근에 들어 더욱 우리 모두의 모국어 언어생활에 대한 많은 위기의식을 감지한다.

   먼저 우리는 모국어를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본과 디테일에 충실히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예를 들어 오늘 모 공중파 방송에서 출연자가 송년 인사말을 이렇게 하는 걸 들었다. "시청자 여러분, 올 한해도 수고 많으셨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더욱 행복하세요." 이 표현을 그냥 들어서는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쉽게 판별이 안 될 것이다. 여기서 그 출연자는 방송가에서의 역할로 보아 누구보다도 모국어를 정확히 구사함직하지만 결정적 비문을 양산한 셈이다. 여러분들은 여기서 무엇이 잘못된 표현인지 판별해 낼 수 있는가? 만약 그러하다면 당신은 이미 모국어에 대한 기본 소양은 갖추었다고 본다.

                                                                 2023.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