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콩강 변에는 황토 먼지가 날리고
청솔고개
오늘은 더욱 맑아진 날씨다. 비엔티안에서 한 달 살기로 작정하고 와서 보낸 지 5일째다. 오후 3시 반까지는 좀 쉬었다. 다시 또 마음이 어지럽다. 걸어야만 할 것 같다. 그 길이 비록 열사의 사막일지라도.
여기 내 해외여행에서 비로소 생애 최초로 혼자 길을 나서 본다. 더운 기운이 확 덮친다. 일단 메콩강 둑으로 향했다. 그래도 약간 서늘한 강바람이 불어 들었는데 계속 걸어가니 땀이 나고 무척 덥다. 한참 가니 태극기와 라오스 국기가 새겨져 있는 작은 구조물이 보인다. ‘수도 비엔티안 메콩강 통합관리사업 차관(2013)’이란 내용의 설명이 영어로도 새겨져 있다. 그 옆에 술에 취한 듯한 라오스 어떤 남자가 웃통을 벗고 앉아서 나를 보고 뭐라고 한다. 살짝 불편해져서 자리를 피했다.
나는 강의 상류를 향해 둑을 걸어 올랐다. 드디어 강변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두어 대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먼지를 내면서 달려오고 있다. 강변으로 향하는 길은 건기답게 바짝 말라서 팥 고물같이 보드랍다. 길가 풀밭에는 말 몇 마리가 매어져 있고 멀리 강에는 작은 배가 한두 척 떠 있다. 모든 풍광이 한가롭다. 그 옆으로는 고기 잡는 듯한 주민들이 자그마하게 보인다. 그 너머는 태국이다. 강 한가운데가 국경이란다.
나는 참 오랜만에 먼지가 풀풀 날리는 황톳길을 걸어본다. 내 검은 샌들이 먼지로 부옇다. 샌들 안의 하얀 등산 양말에는 먼지가 벌써 찐득찐득하게 낀다. 먼지를 머금는 듯한 오후 날씨에 숨이 턱턱 막힌다. 드디어 강가에 도착했다. 천막 친 옆에 승용차와 트럭 몇 대가 보인다. 주민들이 강에 들어가서 뭔가 작업을 하고 있다. 한 군데는 그물을 걷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나는 살짝 꾸부려 앉아서 강물에 손을 담가보았다. 물이 미지근하다. 우리나라 개천이나 못에 있는 말 같은 물풀이 강가를 덮고 있다. 가지고 간 물을 마시고 땀을 닦아보아도 열풍과 풍진(風塵)에 숨이 막히는 듯하다. 문득 이러다가 쓰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힘드는 길인 줄 몰랐다. 저 멀리 하류 쪽 강변에는 호텔인 듯한 높은 건물이 한가롭게 자리잡고 있다. 폰에서 이 상황 몇 장 기록하고 물로 목을 축이면서 잠시 강너머 둑을 바라다보았다. 그러고는 그늘 한 점 없는 여기에 더 있다가는 안 될 것 같아서 돌아섰다. 길은 말라붙어서 거북 등처럼 쩍쩍 갈라져 있다. 조심스레 거북 등짝을 디디니 흙먼지는 좀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 옆으로는 오토바이가 오프로드 경주하듯 한다. 그 옆으로 뒤로 자동차들도 꿈틀꿈틀한다. 먼지가 시야를 가린다. 그새 내 온몸은 먼지와 땀으로 뒤범벅이 된다.
땀에 전 온몸을 끌고 강둑으로 다시 올랐다. 아까 태극기 새겨져 있던 곳을 지나면서 그 뒤를 살폈다. 옆으로 돌아보니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2019년 9월 5일’이라고 우리말로 새겨져 있다.
나의 온몸은 땀과 먼지로 절여져 있다. 엊그제 지나치면서 어떤 곳인지 몰랐던 사원에 다시 들어가 보았다. 안을 자세히 둘러보았지만 영어로 된 설명문 하나 없다. 스님 하나가 물을 뿌리면서 청소하다가 다 마치고 들어간다. 일단 입구 안내판 같은 것을 찍어놓았다. 호텔까지 얼마 안 남았다. 호텔 입구 계단을 오르면서 샌들과 양말을 벗어서 먼지를 털어보았다. 흙먼지가 주르륵 흐른다. 다 모으면 한 줌은 족히 될 것만 같다. 기가 찰 노릇이다. 양말은 비닐에 담아서 가방에 넣고 호텔 방까지 갔다. 신발부터 씻었다. 땟국물이 진하다. 검붉은 황토물이 주르륵 흐른다. 먼지를 뒤집어 쓴 윗도리, 아랫도리, 속옷 할 것 없이 비닐에 담아서 입구를 봉하였다. 먼지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나는 뭣 하러 열사의 메콩강 변을 다녀왔던가. 온몸에 먼지를 흠뻑 덮어쓰고 땀에 전 몸으로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자문자답(自問自答)한다. 그건 마치 내게 ‘왜 사느냐?’고 묻는 것과 다름이 없지만.
그날 온몸으로 묻혀온 메콩강의 짙은 주황색 흙먼지는 두 달이 지난 지금에도 내 양말에 배어 있다. 그 양말을 신으면서 배어버린 황톳빛 흔적을 볼 때마다 그날 메콩강 변을 터벅거렸던 그 순간순간이 오롯이 떠오른다. 나의 내면은 아직도 그 황톳길을 걸어간다. 이승의 어딘가에서. 갓 스물여덟, 염천의 소백산 자락길을 첫 순례길로 삼아 이역 메콩강 변 먼짓길까지. 아직도 영적인 순례에도 목마르고 배고픈 길 나그네인가. 나는 속으로 되뇐다. ‘온몸이 먼지 세례, 땀 범벅이니 마음은 참 알아차림’이라고.
2024. 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