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n Here

라오 텔레콤[LAO TELECOM]

청솔고개 2024. 12. 28. 00:10

                                                                                     청솔고개

   2024. 1. 19.

   아침 9시에 식사했다. 갈수록 느긋해진다. 새벽에 일어나 자전거 빌려서 메콩강 변을 달리거나 아니면 걸어보는 일은 그냥 버킷리스트 순에만 있는가 싶다. 내가 한 번 실행에 옮겨 보려 해도 이곳은 자전거 도로는커녕 인도도 거의 보이지 않아서 자전거 바퀴를 어디에다 얹어서 굴려야 할지 몰라서 그냥 참았다. 또한 국내에서 만 원 가까이 주고 발급받은 국제면허증으로 차를 렌트해서 주변 가까운 곳을 한 번 둘러보려고 해도 가족들이 모두 사고 난다고 야단들이다. 하기야 여기는 자동차가 좌측 도로를 달리니 아무래도 나의 운전 감각으로는 위험부담을 감수하기는 해야 할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여기 떠날 날이 며칠 남지 않으니 마음에 아쉬움이 남는다. 해외 도로에서 자동차 운전해 보는 것도 나의 버킷리스트인데 이번에도 결국 못한다는 예감 때문이다.

   오늘도 어쩐 일인지 5시에 못 일어났다. 이 시간이 되면 바깥은 이미 훤할 텐데 침대에서 빠져나오는 게 안 된다. 이제 여기서 이렇게 여유 부릴 날도 이틀 남았다. 단 하루라도 이렇게 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 1차 자전거 타기, 2차 렌터카 활용해 보기 버킷리스트가 자꾸 내 목덜미를 붙잡는 것 같다.

   오늘은 예정대로 라오텔레콤[LAO TELECOM]에 가서 아내의 유심을 교체하러 10시에 호텔을 나섰다. 내가 앞서 나가는데 아내가 멈칫한다. 아내는 로비에서 친절하고 웃음기 많은 청년을 만나 얘기 나눈다. 아내는 그새 그 청년에게 초콜릿 바를 하나 건넨다. 아내의 이런 마음은 측은지심이 바탕일 터, 천생의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 아무나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고귀한 심성일진대 그냥 지지해 준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만 낍이나 되는 팁도 쥐어줬다고 한다. 다만 이런 행태가 혹 값싼 동정심 발로로 현지인들에게 오해받을까 봐 걱정은 된다.

   라오텔레콤 찾아가는 길은 해프닝의 연속이었다. 조금만 가면 틀림없이 나올 것 같았다. 암만 걸어가도 라오텔레콤이 나타나지 않아 우선 길가에서 쉬고 있는 경찰에게 물었더니 직진하라고 한다. 가다 보니 결국 딸랏사오 아침시장 네거리까지 가게 되었다. 아내는 진작 짜증을 슬슬 내뱉기 시작한다. 내 마음은 더 바빠지고 땀은 삘삘 흐른다. 암만해도 이 길은 아닐 것 같아서 다시 뒤돌아오면서 근처 은행의 수위한테 라오텔레콤 가는 길 약도를 그려달라면서 부탁했더니 친절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약도를 그리면서 아주 자세히 뭐라고 설명해 준다. 알아듣는 체는 했지만 설명을 들어도 라오어 몇 마디 알아듣는 수준이었다. 아주 세밀하게 그려준 약도를 보니 더 헛갈린다.

   급기야 아이한테 연락했다. 그래도 바로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아내는 노골적으로 짜증을 터트린다. 나도 큰소리로 이럴수록 협조적이어야지 그렇게 짜증만 내면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하고 맞받아쳤다. 아이는 끝까지 남푸분수을 찾으라고 강조한다. 바로 그 근처라면서 계속 강조하는데 나는 이미 인지와 집중력은 다 달아나고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아내는 행인에게 물어보더니만 뭔가 결정적인 걸 알아차린 듯 뒤도 안 돌아보고 남푸분수 북쪽 골목으로 재빨리 도망치듯 달려간다. 내가 아이와 길찾기 위해 통화 중인데도 그렇게 달려가 버리니 나는 또다시 화가 날 대로 난다. 큰 소리로 불러도 아는 체도 안 한다. 골몰 길 끝에 가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드디어 내가 짐작했던 검은 벽의 돌탑 닷탐이 보인다. 드디어 찾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아내는 앞서 가면서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골목으로 들어간다. 내가 이번에는 제대로 확인했다면서 급히 아내를 불렀더니 불퉁한 표정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뒤돌아 따라온다. 드디어 라오텔레콤 입구다. 내가 들어가지 않고 아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제처럼 유심과 아내 여권을 얼굴 나오게 찍고 처리했다.

   정말 한바탕의 해프닝이었다. 내가 어제 아이와 동행하면서 길 알아두기에 태무심했던 것이 근본 원인이었다. 찾아가는 길이 너무 쉬워 보여 신경을 제대로 안 쓰다 보니 결국 큰 착오를 일으킨 셈이다. 며칠 전 내가 혼자 14번 버스 차 시간표 알아보러 갔다가 오면서 확인했던 닷탐이라는 거대한 벽돌 불탑 가는 골목 안이라고 확인만 했더라면 그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뙤약볕에 대통령궁까지 가서 왼쪽 돌아서 빠뚜싸이 대로로 향하는 우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 30분이면 유심 교체 끝낼 시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2시간이나 걸린 셈이다. 내가 그사이 오가면서 길 익히기에 대한 잘못된 기준점 인식을 통한 일종의 확증편향 증세가 발동한 듯하다.

   비로소 한숨을 돌리고 바로 조마베이커리카페에 들어갔다. 라테 세잔과 당근케이크를 사서, 어제 준비한 카오 놈 콕이라고 하는, 코코넛쌀떡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식사하면서 오늘 실수에 대한 피드백을 해보았다. 가장 큰 원인은 내 머릿속에는 이미 그 라오텔레콤이 빠뚜싸이 가는 대로변에 있다는 고정관념, 즉 오도된 정보가 굳건히 심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너무 쉬운 길 찾기라는 인식 때문에 내가 안일하게 접근한 탓으로 결론을 지었다.

   어쩌겠나. 여행 중 이러한 실수는 지나고 보면 웃지 못할 에피소드 같은 이야깃거리로 남는다. 이 사단으로 오늘 우리 점심시간은 웃음판 그대로였다. 역시 남에게 즐거움을 주려면 내가 몸이든 마음이든 망가져야 하는 게 세상 이치 아닌가. 몸 개그, 어처구니없는 발상, 그런 것들이 전형적인 웃음의 콘텐츠 아닌가.

   오후에는 좀 쉬었다. 오늘도 말라서 먼지 풀풀 날릴 메콩강 너머 해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해가 마지막 지평선에 걸리는 모습을 보려고 1분 후에 나가보니 이미 해는 지평선 구름 속에 빠져버린 듯 자취도 없었다. 여기서 두 번째 메콩강의 낙조를 보는 셈이다.

   마사지 받으러 오늘은 6시에 출발했다. 마사지 받는 사람이 꽉 차서 7시 반에 오라고 한다.

이어서 오늘 낮에 내가 제안했던 넴느엉 식당을 찾아갔다. 벌써 많이 붐빈다. 아이가 일러준 대로 넴느엉 한 세트, 짜조라고 하는 돼지고기 다진 것 한 세트, 스프링롤 한 세트를 시켰다. 상추와 고수 등 각종 허브 채소 쌈으로 조심스럽게 종업원이 일러둔 대로 먹어보았다. 처음엔 고수 맛이 좀 불편했지만 나중에 용기를 내 남은 고수는 내가 다 먹어치웠다. 아내는 아직도 고수가 자신의 음식에 행여 닿을까 봐 기겁한다.

   마치고 다시 나이스 마사지에 갔다. 오늘은 웃음이 참 선해 보이는, 둘째 날 나를 담당했던 마사지사였다. 마사지 받은 효과라서 그런지 몸과 마음이 거뜬해진다. 근처 피자집에 가서 아이한테 줄 피자를 시켜서 갖다주고 내려와 쉬었다. 우리 내외는 룸에서 호텔측에서 매일 제공하는 오디차 우려낸 짙은 색감을 음미하면서 오늘을 접어본다. 캔맥주 하나로 내 마음과 몸의 피로를 달랜다. 샤워 후 반바지, 양말 빨래하고 나니 자정이 넘었다. 잠자리에서 내일 아침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아침 산책을 하기로 다짐을 해 본다.      2024.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