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을 미친 듯이 헤매다. 꽝시폭포, 왓 씨앙통, 푸시산, 야시장, 메콩강변
청솔고개
2024. 1. 23.
여기 루앙프라방에서의 체류 날짜가 촉박한 것 같아서 마음이 바빠진다.
아침 7시에 식사, 어제 예약한 택시 기사가 8시 30분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아내를 왕비 대접한댔으니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개념과 아내나 아이가 생각하는 것이 훨씬 다를 수도 있으니 모든 이들의 인식을 존중하는 태도가 절실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겠다.
운전자는 우리가 두말없이 호응해 주니 서비스 차원에서 시내 몇 군데 둘러보려면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일단 푸시산 입구에 내려준다. 계단으로 해서 조금 올라가다가 입장권을 끊어야 한다는 말에 조금 올라가다가 그냥 돌아섰다. 입장권 끊어야 한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이 명소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당장은 나는 좀 아쉬웠지만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나 혼자 오후, 일몰 때에 다시 와 보는 게 오히려 좋다는 생각에서였다. 8시 40분, 이어서 국립박물관 같은 곳에 들렀다. 전시 방식과 수준이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 전시의 수준이 많이 떨어져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해설을 못 들어 알 수 없었지만 연도로 보아서 라오스 공산정부 들어서기 전 몰락한 왕들에 관한 자료 같다. 공산혁명을 통한 새 정권이 들어섰더라도 그들의 지난 왕조의 역사도 역사이므로 이렇게 그 인물들에 대한 유물이 보존돼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이런 유물들에 대해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흥미를 못 느낀다. 아이는 아예 출입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둘러보고 후문에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랐다.
다음 코스 꽝시폭포는 50분 정도 걸린다고 택시 기사가 말했다. 가는 도로 곳곳이 패고 아스팔트가 떨어져 나간 곳은 있었지만, 생각한 것보다는 도로 사정이 괜찮은 듯했다. 꽝시폭포에 10시경 도착해서 다시 전기 차로 2분 정도 올라가서 입구에 도착했다. 멀리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조금 걸어 올라가니 그야말로 옥빛 에머럴드빛 물빛이 시야에 들어온다. 물빛은 짙은 코발트 색에 우유를 약간 탄 듯하였다. 투명하지는 않았지만 부드럽고 편안한 색깔이었다. 아이가 날씨가 쾌청했으면 더 아름다웠을 터인데 아쉽다고 했다. 가다 보니 날씨가 개서 햇빛이 좋아지는 것 같다. 오른쪽으로 계속 올라가니 곳곳에 아름드리 높이도, 이름도 가늠할 수 없는 열대 원시 수림이 즐비하다. 그 사이에 마치 다랑이 논처럼 조성된 높고 낮은 언덕에서 물이 떨어진다. 서양인 남자 하나가 바지만 입고 물로 들어간다. 안에는 그의 커플인 듯한 여자가 이미 헤엄을 치고 있었다. 아무리 물을 좋아하고 체험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나는 저런 이벤트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니 끊임없이 다단계 폭포가 이어진다. 우리 내외의 사진을 찍어 달라고 아이한테 부탁했다. 아이는 사진을 찍어 주면서 최종 폭포가 바로 보이는 여기서 쉬고 싶다고 한다. 우리는 10여 미터 더 올라갔다. 드디어 높이가 3십 미터는 족히 될 만한 폭포수가 굉음을 내고 내리꽂히고 있다. 폭포 앞에는 나무 데크가 설치돼 있다. 우리는 넋을 잃고 폭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신 이 자연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예술을 폰에 담으면서 눈과 가슴에도 담아 두려고 애써본다. 여기서 더 이상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여기부터는 아주 가파른 산길이다. 올라가서 폭포 뒤로 가보고 싶지만 나 혼자가 아니라서 생각을 접었다.
문득 2017년 2월 말로 기억되는 우리 삼부자의 구채구 여행이 생각난다. 그곳 역시 이런 폭포 물 색깔로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겨울이라 수량도 부족해서 좀 아쉬웠지만 폰을 쳐들고 감동한 듯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아버지의 모습이 돌연 떠오른다. 그땐 셋이, 혹은 둘이서 사진도 많이 찍으면서 기록도 남겼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우리 셋의 얼굴이 다 나오는 사진 한 장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른쪽 포장길로 해서 내려왔다. 국적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일군의 단체관광 팀이 열심히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다.

한참 내려가니 드디어 전기 차에서 내렸던 데 도착한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차 타고 내려가기보다 걸어 내려가 보기로 했다. 양옆으로는 내 어린 시절 고향 마을 장터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특히 병아리를 가두는 대나무로 만든 가두리가 보이고 그 앞에는 고물고물 병아리들이 어미 닭과 놀고 있다. 아이와 아내한테 횃대라는 걸 들어봤냐고 하니 장 닭이 올라가서 잠자는 곳이라고 정확히 알고 있다. 드디어 택시 기다리고 있는 데까지 걸어왔다. 12시 좀 지났다. 택시 운전자가 승차하려는데 차문을 열어준다. 이것이 바로 대접받는다는 느낌인가 싶다. 아까 올 때 운전자가 말해주어서 보아두었던, 프랑스인이 경영하는 물소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 가게에 세워달라고 했다. 멀리는 버팔로라고도 불리는 라오스 물소 농장에 물소들이 험악한 뿔과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며 쉬고 있다. 일군의 서양인들이 이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면서 즐기기도 한다. 우리는 운전자에게도 주려고 네 개를 사서 같이 먹었다.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운전자는 도로 사정을 고려해서 잘 달린다. 한참 언덕에서 내려오는데 멀리 도심이 보인다. 운전자가 저곳이 루앙푸라방이라고 가리킨다. 드디어 골목 안 호텔에 도착했다. 아이는 약정된 택시 비용을 지불하고 우리 내외는 5만낍씩 10만낍을 팁으로 전했다. 운전자는 고맙다는 듯이 두 손을 모으고 연신 “껍짜이”를 연발한다. 우리도 “껍짜이”를 연발했다. “쏙디”라고도 말해주었다. ‘다시 만나요’라는 뜻이다.
호텔에 들어와서 좀 쉬었다가 바로 앞에 있는 마사지숍에 다시 들렀다. 오늘은 다른 여자 마사지사가 해준다. 어제보다는 좀 괜찮은 것 같다. 아이도 어제보다는 만족한다고 했다.
둘은 피곤하다면서 호텔로 들어가고 이후 나는 혼자 떠나기로 했다. 나는 이미 점찍어 두었던 왓 씨앙통 사원으로 향했다. 먼저 아침에 택시 타고 갔던 데를 지나가는데 박물관은 벌써 닫혔다. 이곳을 보려고 온 듯한 여행객들이 이 사실을 보고 황당해한다.

거리는 여행자들로 넘쳐난다. 길가 의자에 앉아 맥주와 음료를 즐기면서 담소를 나누는 서양인들의 모습에서 자유와 여유가 늘 넘쳐나 보인다. 길가 가게에는 갖가지 꽃들이 화분에 심겨 있고 가로수의 샛노랑, 연분홍 새빨강 색깔의 열대 꽃들은 오후의 역광에 빛나고 있었다. 나는 또 혼자 정말 나그네 된 심경으로 이 여행자 거리를 걷는다. 나는 걷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늦었다는 후회보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데 대해서 스스로 축복하고 있다.

왓 씨앙통 사원은 생각보다 멀었고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골목으로 접어들어 가보니 옆문이라서 들어갈 수 없었다. 마침 종이 울리기에 바로 동영상을 작동해서 그 소리를 담아보았다. 한참 다시 돌아드니 후문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루앙프라방의 메콩강의 배들이 멀리서 그 고요함을 띄우고 있었다. 여기는 여행자를 태워 나를 차들로 길이 다 막힌 것 같다. 드디어 좀 걸어가니 정문이 보인다. 이만 낍을 주고 입장권을 끊었다. 드디어 화려한 장식을 한 출입문을 통과했다. 이 절의 아름다움은 벽면이나 계단 곳곳의 현란한 유리 조각 붙임에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그것은 마치 에메랄드 같은 고귀한 아름다움으로 보인다. 본당인 듯한 건물 벽면에는 석가의 일생이 담긴 부조가 검푸른 바탕에 금색으로 양각돼 있는 듯하다. 또 한 건물 벽면에는 석가의 집회 모습인 듯한 장면을 유리 조각으로 타일처럼 붙여서 아주 판타스틱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 위로는 마야부인이 누워 있고 그 옆에는 코끼리도 누워서 마야부인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황금색으로 새겨져 있다. 그 밖에 유리로 붙여 놓은 큰 나무 형상에 달린 열매나 잎 모양의 부조, 부처의 일생이 거의 전면에 황금빛으로 조각된 것이 특이했다.
한참 만에 후문으로 내려오니 바로 메콩강 변이다. 천천히 메콩강 그림자를 따라 걸어본다. 한 남자가 병맥주 한 병을 따놓고 혼자 메콩강물을 바라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벌써 1만 보를 훨씬 더 걸었다. 피곤이 몰려오고 자꾸 뒤뚱거려진다. 그래도 푸시산에 오르려면 더 힘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벗어날 수 없다.
푸시산 오르는 입구는 이미 그 앞 도로가 오늘 밤 펼쳐질 야시장 설치로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시간도 많이 지난 것 같아 마음은 바쁜데, 몇 차례 물어서 겨우 허위허위 올랐다. 이번엔 허기가 몰려온다. 더럭 겁이 난다. 저혈당 증세가 되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근처 좌판을 보니 뭔가 먹을 것을 파는 게 눈에 띄었다. 소녀가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팔고 있었다. 55,000낍을 주고 먼저 아이스크림을 근처 벤치에 앉아서 먹고 나니 허기가 가신다.
드디어 1단계 높이까지 올랐다. 오후 5시 10분이다. 멀리 메콩강물이 석양에 물들기 시작했다. 그 앞으로는 이 도시의 집들이 올망졸망 정겹게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더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갑자기 자신감이 없어진다. 이럴 때 내게 스틱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정말 안성맞춤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다 올라왔다. 어떻게 올라왔는지 나도 정신이 없다. 5시 18분이다.
여기서는 강물 빛보다 하늘빛이 더 현묘(玄妙)해 보인다. 저 하늘빛이 그 인(因)이라면 저 물빛은 연(緣)이 아니던가. 저 하늘빛 역시 구름에 가려져 그 오묘한 천변만화(千變萬化)를 가져오지 않던가. 서광이 마치 우산살처럼 펼쳐져 있다. 겹겹의 산 사이에는 연기인지 구름인지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광의 황금색에 대비돼 보인다. 숱한 여행자들이 벌써 올라와 조망하기 편한 난간을 차지하고 있다. 내 바로 뒤에 한 엄마는 아기를 안고 재우고 있는 듯하다. 저 아기를 안고 여기 올라왔다니. 그 집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해가 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도착하자마자 폰을 들고 그 석양을 담고 있다. 그 모습이 흡사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뭔가 기원하는 듯해 보인다. 햇살이 바로 내리꽂히는 곳에 동그랗게 주황빛에 황금을 입힌 듯한 모습이다. 다만 그 앞에 나무가 가려져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아쉽다.

드디어 해가 졌다. 발 디딜 틈조차 없던 이 난간이 어느 순간 텅텅 비어버린다. 주황색 가사(袈裟)를 걸친 청년 스님 몇몇이 올라와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이제 내 뒤로 우뚝 솟아있는 황금 탑 뒤를 돌아다보기로 했다. 아직 어둠이 다 내리지 않아 굽이쳐 흘러가는 메콩강 양옆으로 도시의 집들이 올망졸망 평화롭게 펼쳐져 있다. 뭇 지붕들이 한결같이 새벽이슬에 씻어진 듯 정갈해 보인다. 석양이 넘어가면서 그 기운으로 이 마을을 모두 씻어간 듯 하다.

이제 내려온다. 어둠 속에 행여 실족(失足)할까 봐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집들 사이 골목 사이에 등불이 훤하다. 야시장 골목은 불야성을 이룬다. 드디어 다 내려왔다. 야시장이 끝없이 펼쳐져 호텔 입구를 찾을 수 없다. 호텔에 도착하니 저녁 6시 반이 됐다.
아내와의 약속대로 호텔을 나와 다시 야시장을 걸어보았다. 특별히 살 물건은 없다. 메콩강가에 가서 맥주 한 잔 하자고 약속한 대로 천천히 둘러보았다. 드디어 적당한 곳에 들러서 피자와, 들어도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것을 주문해서 맥주 한 잔 들어 서로 건배했다. 결코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이다. 이제 메콩강에도 어둠이 짙게 내린다. 다만 밤배들의 불빛은 강물을 밝게 비춘다. 유람선을 한 번 타 봤으면 했지만 일정이 허용못한다. 아내와 나는 이 호젓한 메콩강변 길을 손잡고 걸어본다. 다시 한 번 이 순간을 분명히 확인해 본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붕 떠 있는 듯하다.
드디어 우리 호텔 입구를 찾았다. 호텔 명, “La nuit de Laos”란 뜻도 아직 모른다.
오늘 만보기 2만 3천보 걸음 기록. 피곤하다. 종일 루앙프라방을 미친 듯이 헤맸다. 그냥 곯아떨어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일 뿐. 내일 라오스를 떠나야 하는 일정을 가슴에 품으면서. 2024.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