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비엔티안 한달살이
청솔고개
2024. 1. 8.
다음은 딱 1년 전 그날, 비엔티안 한달살이, 출발 기록이다.
어찌 된 셈인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올해 들어서 가장 추운 날 장도를 출발하게 된다. 남쪽 지방에서의 출발 복장이 매우 애매하게 된다.
먼 길 예정해 놓은 터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택시로 터미널 도착하니 10시 반쯤 됐다. 아이는 아직 안 보인다. 아이는 45분쯤 왔다. 차를 타자 또 엄습하는 잡다한 생각들이 내 마음을 붙잡는 것 같다. “몸은 가더라도 어지러운 이 마음만은 두고 갈 수 있어야 하는데…. 마음은 두고….” 그래도 가야 한다.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낙동강 구미 휴게소에 한 번만 쉬고 냅다 달렸다. 경기도 안성 지날 때쯤 멀미 기운이 있더니 제법 심해진다. 드디어 인천 대교가 공항 소재인 영종도와 이어진 장대한 모습을 본다. 참 오랜만에 본다.
4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캐리어의 짐 무게 초과로 인한 조정 문제로 아이와 제 어미, 또 나와 살짝 불편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타고난 성정(性情)상 불가피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아이 편을 들었다고 아내가 표정이 안 좋아지는 걸 보고 아이가 오히려 더 불편하게 여긴다. 또다시 난감해지는 분위기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내가 자연스럽게 중재했더니 아이도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제 어미도 아이한테 다가간다. 아이가 무거운 표정을 가누지 못한다. 아무래도 내가 반복해서 무게 줄이라고 심하게 주장했던 게 아내의 심기를 불편케 했는가 싶다. 아니 편들어 뭔가 세몰이 할 계산은 해서는 안 된다. 제일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 분위기마저 이 여행에서는 없어야 한다. 아이가 침울, 침묵하면서 얼굴이 굳어지는 데, 또 그 감정대로 처리하고 행동하면 모든 건 다 어그러진다. 판이 뒤집히다가 판 전체를 깨버리는 것이다. 어쨌든 첫 번째 난관은 살짝 이겨낸 셈이다. 나는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이러한 가족 역동(力動)을 세심하게 주시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서로 물리적 심리적 밀착(密着), 밀접(密接), 밀폐(密閉) 삼밀(三密) 환경에 처하게 되는 장기 여행의 경우는 더욱 민감해질 것이다.
셀프 수하물 처리를 하니 조금 오버되는 무게를 항공사 측에서 양해해 주는 바람에 모든 게 자연스럽고 기분 좋게 해결된 셈이다. 뭔가 들이대어 보지도 않고 안 될 것이라는, 지레짐작도 피해야 할 것이다. 아이도 완전히 기분을 회복한 것 같다.
인천 공항을 이륙하여 출발한 지 20분쯤 지났을까. 내게 느닷없이 치통이 몰려온다. 올 1월 1일부터 기내식은 개별 구매 방식으로 바뀌어졌다고 하는 승무원 설명 들으면서 주문하랴, 치통 감추랴, 감당하랴, 진땀이 막 쏟아진다. 난감하다. 계속 이러면 어쩔까 싶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당장 이 순간도 문제지만 앞으로의 한 달을 어떻게 버틸까 하는, 생각부터 먼저 든다. 아내와 아이에게 내 표정을 감추려는 것은 처음부터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이다. 결국 승무원에게 카드로 5천 원 결제로 누룽지 구입해서 일단 속을 채우고, 다시 2천 원 결제로 생수 구입해서 화장실에 가서 준비한 해열진통제를 복용했는데도 계속 심한 통증이 몰려온다.
이럴 경우는 정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냥 시간이 지나서, 이 통증만 가시기를 간절히 기원해 볼 뿐이다. 여기서 몸이 마음을 지배한다는 가설(假設) 혹은 역설(逆說)이 성립되는 것일까. 이 몸 통증이 가시면 나는 또 일상의 마음 고통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 고통이 계속되기를 간구(懇求)라도 해야 하는가. 여기에서 내 삶의 딜레마가 있다.
드디어 라오스 비엔티안 공항 도착. 손목의 워치가 자동 조절돼 저녁 10:19, 기온 24도 c를 가리킨다. 벌써 후텁지근한 느낌이 든다. 공항은 인천에 비해 아주 작은 규모다. 아이는 또 라오스에서는 왕복 항공 티켓을 예약하지 않으면 입국 비자를 따로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어디선가 본 듯, 잔뜩 신경 쓴다. 아이의 이 무결점 결벽증, 완벽을 기하려는 마음이 무척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듯하다. 옆에서 보기가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 역시 입국 절차에서 별다른 주문 없이 해결됐다. 일단 30일 여행은 무비자 혜택을 받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여관 파워가 세계 1,2위라던데, 여기서도 당연히 그 파워가 작동하는 것이다. 통관도 잘 처리되었다. 밖에 나와서 로카[LOCA] 택시 앱으로 택시를 부르려 했는데 잘 안된다. 일단 아이의 폰 인터넷이 바로 개통되지 않아서 그렇다. 그러자 아이는 또 신경 쓰기 시작한다. 제 어미가 공항 직원한테 물어보라고 종용해서 아이가 협조를 구하니 직원이 택시 운전사를 알선해 준다. 다행히 큰 캐리어까지 트렁크에 다 실린다.
비엔티안의 밤길은 아주 소박해 보인다. 그래서 더 편해지는 기분이다. 화려한 조명도 없이 수수한 시골길 같다. 화장도 요란하지 않은 수더분한 시골 색시 같은 인상이다. 그래서 더 대화하고 싶어진다.
우리 숙소, 리버사이드 호텔 602실, 아이는 702실. 호텔 이름처럼 룸의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인도차이나 반도의 젖줄이라는 메콩강이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듯, 그 흐름을 이어가는 듯 했다. 한달살이 특별 취재라도 할 터인가. 공항 도착부터 영상기록이 필요할 것 같았지만 당면 문제 해결에 고심하다가 놓친 셈이지만 이런 경우 영상보다는 그냥 한두 줄 인상기가 더 필요할 것 같다.
아내는 이미 피곤한 듯 코를 골면서 자고 있고, 나는 지금 새벽 4시 좀 지났다. 한국시간으로는 6시다. 이제 네 시간 정도 자야 할 것 같다. 자연 그대로의 이 도시의 아침을 활발하게 맞이하려면….
나는 여기서 정말 라오스 비엔티안 한 달 살아보기라는 제목으로 유튜브라도 송출해야 할까. 아니면 블로그에 올릴까. 하나 더 특별히 개설해서…. 여행의 출발은 내게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한다. 2025. 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