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양(貴陽) 길을 가다 4, 황과수 폭포
청솔고개
2024.3.7.
이른 아침 식사 후 떠나기가 아쉬워 호텔 창밖으로 내다본다. 멀리 안순 교외의 산야가 새벽안개 속에 잠들고 있다.
8시 15분에 호텔을 출발했다. 도심을 조금 벗어나니 유채밭이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오롯이 평화경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해서 황과수 폭포로 향한다. 가이드가 오늘 탐방에 대해 안내한다. 아침 기온이 차가운지 차
창에 입김이 서려 바깥 풍경이 안 보인다. 안개가 심하다.
9시 30분에 황과수 폭포 탐방로 입구에 도착했다. 몇 차례 검색과 얼굴 인식까지 한 후 전동 셔틀버스로 이동한다. 날씨가 쌀쌀하다. 차가운 기운에 못 견딜 것 같다. 첫 코스는 두파당(陡坡塘) 폭포다. ‘험한 고개와 비탈이 만든 못’이라는 뜻이다. 데크로 꾸며진 도로를 따라 폭포까지 갔다. 멀리서 보니 숱한 독을 엎어놓은 데에 새하얀 비단 자락을 걸쳐 놓은 듯하다. 수량이 넉넉한 우기에는 그 부드러움이 더해질 것 같다. 폭포수에 휘감기는 바위의 결이 너무 부드러워 ‘험한 비탈’ 풀이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그 명성보다는 소박한 아름다움이다.
다음은 천성교(天星橋) 코스다. 예전 어떤 부자가 자기의 개인 정원을 개방해서 알려진 곳이다. 데크, 돌계단, 좁고, 낮으며 짧은 굴로 이어지는 길을 지나니 비좁은 입구로 된 석회암 동굴이 나온다. 나오면서 확인해 보니 천성동(天星洞)이었다. 동굴 안 길은 매우 미끄럽고 경사가 심해서 걷기가 힘든다.
앞으로만 가다 보니, 우리 내외, ㅎ아무개 친구, ㅇ아무개 친구 외에는 일행이 안 보인다. 조금 전부터 ㅇ아무개 친구의 발걸음이 둔해진다. 왼쪽 다리가 계단에 걸리면서 기우뚱거린다. 엉겁결에 같이 가던 ㅎ아무개 친구가 부축한다. 두세 번 몸이 기우뚱하는 걸 어두운 동굴에서라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친구의 기우뚱거림이 동굴 안의 과습과 심한 경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모두 예민해지는 데다가 ㅇ아무개 친구가 낀 안경의 뿌여짐 때문에 현혹돼서 그러하리라고 여겼다. ㅇ아무개 친구의 자세와 걸음걸이가 갈수록 불안정해진다. 모두들 출구를 찾지 못해 당황한다. 일단 차분해지기로 했다. 동굴 안의 비현실적이고 기묘한 형상을 드러내기 위한 휘황한 조명도, 물상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안에서 고립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혼자의 불안감은 아니다. 삼국지의 제갈량 둔갑(遁甲) 술수에 말려드는 느낌이다. 그 순간 한바탕 싸한 바람이 확 불어 든다. 앞이 뻥 뚫리고 훤하다. 바로 출구다. 이제 안심이다.
갈수록 ㅇ아무개 친구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된다. 왼쪽 어깨가 10센티미터는 더 처져있다. 게다가 왼편 다리의 힘도 빠져 보인다. 큰 걱정이다. 동굴 밖에 나오자 보다 못한 아내가 부축 임무를 교대한다. 아내는 ㅇ아무개 친구의 허리끈을 바투 잡고 왼쪽과 뒤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지지한다. 더 나가니 ㅇ아무개 친구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천성교 다리가 보인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건지, 아니면 깎아서 조성한 것인지 살펴볼 겨를도 없다. 일단 그 부인 자기 남편을 부축해보았으나 키 차이가 너무 나서 결국 다시 아내가 부축한다. 찬 바람 쐬면서 ㅇ아무개 친구는 약간 회복하는 듯했지만,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자세가 더 흐트러져 보인다. 부축하지 않으면 뒤로 자빠져서 크게 상할 것 같다. 아내는 끝까지 그 친구를 부축한다. 그런 아내의 도움이 가상하기는 하지만 미끄러운 길에 자칫하면 함께 낙상이라도 할까, 걱정이다. 손가락과 어깨 통증으로 시달리고 있는 아내가 언제까지 감당할지 모르겠다. 이러기를 한참, 은목걸이 폭포가 나타난다. 물의 양이 적은 건기라서 그 이름만큼이 그 아름다움을 받쳐주지 못한다. 은목걸이라기보다 넓게 크게 퍼진 하얀 거미줄이나 희디흰 비단 사포 같다. 계단을 끝없이 오른 뒤, 천신만고 끝에 곤돌라를 탔다. 가이드가 곤돌라를 잠시 세우고 불편한 ㅇ아무개 친구를 태웠다가 내려준다. 이제 안심이다.
셔틀 전기버스로 다음 코스인 황과수 폭포로 향한다. 잠시라도 쉬고 출발하면 기력을 회복할 것 같은데 일정이 바쁜지 바로 출발한다. 계단으로 한참 내려
간다. ㅇ아무개 친구 내외 등 몇몇은 체력 안배와 안전을 위해 바로 아래 전망대로 내려가서 폭포 보다가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 내외와 ㅎ아무개 친구 내외는 빠른 걸음으로 황과수 폭포 앞과 옆으로 최대한 가까이 다가간다. 폭포 뒤로 향한다. 그 뒤의 작은 동굴은 중국인의 감성으로 이름한 수렴동(水簾洞), ‘물방울로 지어낸 발’이라는 그 뜻보다 '폭포의 물방울이 는개처럼 분무(噴霧)하다’가 더 적절할 것 같다. 아무튼 기이하면서도 특이한 풍광을 연출한다.
폭포를 바로 앞에 두고 명상이나 묵상할 여유도 없다. 출렁다리 건너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시간이 딱 맞다. 쉬고 있는 팀들과 합류했다. ㅇ아무개 친구는 이제 많이 회복한 듯하다. 그만하니 천만다행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계단을 거쳐 3단계의 에스컬레이터로 수십 미터 위로 올라온다. 이어서 셔틀 전기버스로 주차장까지 이동한다. 드디어 안착, 후유, 10년 감수. 아찔한 느낌이 든다. 오늘 매 순간마다 뭔가 잘못되었다면 후과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오늘 불편한 친구의 모습을 보니 여행에 대한 한 상념이 떠오른다. 예부터 여행하는 사람을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이라 했다. 여행이 성립되려면 건강, 시간, 여비 마련의 여유 등 3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옛사람 중에는 여행의 욕구를 주체하지 못해, 생애 시간만 허여되면 건강, 여비 불문하고 그냥 떠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하염없이 걷는다. 걷다가 날이 떨어지면 한데서 잔다. 눈비 오면 언덕 아래나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잔다. 순례이며 또한 고행이다. 티베트인은 평생에 한 번은 삼보일배 오체투지로 영혼의 순례길을 떠난다. 성지 라싸와 성산 카일라스산을 찾는다. 영혼을 위해 육신을 던지는 여행이다. 참 여행이 아닐까 싶다.
아주 늦은 점심 식사하였다. 발 마사지 받을 사람은 2호차에 타라고 한다. 2시간 30분 동안 안순에서 귀양으로 북행한다. 북행 길은 나의 아쉬워하는 마음을 아는지 유채꽃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북쪽이라 꽃철이 더 늦어진다. 등불이 켜질 무렵이다. 차창 너머 저물녘의 어스름을 등불처럼 훤히 밝혀주는 샛노랑 꽃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다음은 [네이버 지식백과]에서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황궈수폭포[Huangguoshu Falls , 黃果樹瀑布(황과수폭포) ]
중국 구이저우성[貴州省] 서남쪽 전닝[鎭寧]의 황궈수 국가급풍경명승구에 있는 폭포. 황궈수 대폭포를 중심으로 다양한 크기의 폭포 18개로 이루어지는 세계 최대의 폭포군이다.
황궈수 대폭포를 중심으로 다양한 크기의 폭포 18개로 이루어지는 세계 최대의 폭포군이며, 아시아에서 가장 큰 폭포이다. 황궈수폭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하, 좌우, 앞뒤의 여섯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다. 황궈수대폭포[黄果树大瀑布], 시뉴탄[犀牛滩], 수이롄동[水帘洞]이 있다. 황궈수대폭포의 높이는 약 78m, 폭은 약 101m이며, 중국 폭포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수이롄동은 황궈수대폭포가 흘러내리는 절벽의 높이 약 40m 지점에 위치한 전체 길이 약 130m의 동굴로, 출구가 폭포 쪽으로 뚫려있어 폭포 뒤편에서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시뉴탄은 황궈수대폭포가 흘러내리는 연못으로, 깊이는 11m 정도다.
명나라의 여행가이자 지리학자인 서하객(徐霞客)은 “진주를 두드리고 옥을 깨뜨리듯이 물방울들이 마구 튀는데 물안개들이 하늘에 솟아나기에 참 굉장한 장관이다”라고 했다.
오후 7시에 귀양 도착. 마사지 안 받는 사람들은 검령산공원[黔灵山公園]에 내렸다. 북쪽이라서 쌀쌀하다. 시장 구경하면서 돌아다녔다. 실내라서 덜 추울 것 같아서였다. 가게에서 딸기, 오디, 파인애플 등을 구입하는데 값을 깎느라고 손짓발짓 다하다 보니 그런 코미디가 없다. 이 또한 현지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화장실을 찾아 공원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현지인들이 돌판 의자에 앉아서 마작 놀이를 하고 있다.
폰에 귀양에서의 마지막 밤 풍광을 담았다. ‘용대가[龍大哥]’ 식당에서 식사했다. 마지막 밤이다. 무척 아쉬울 것 같다.
‘복영어룡주점, HOME2’호텔에 귀양 여행의 마지막 밤을 의탁했다. 캡슐 커피 머신까지 갖춘 최고급 호텔이라 하니 떠나려니 아쉽다. 생애 한 지점에 심신을 이런 멋진 숙소에 의탁했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다. 새벽에 잠에서 깼다. 현실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과 허탈감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의 여독(旅毒)은, 권하는 김에 홀짝홀짝 들이킨 한두 잔의 술, 혹은 베이징 공습 작전 같은 강행군 일정에 지쳐서보다, 일상과 현실로 백 고우 해야 한다는 허탈함으로 해서 생기는 증상이리다. 2025.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