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읽기의 감동
『의사 지바고(DOCTOR ZHIVAGO)』‘문학의 힘과 역사의 힘’ (4/4)/시베리아 벌목장(伐木場)과, 『닥터 지바고』 라라의 테마 로케 현장인 스페인 마드리드 교외 꽈라다하라 평원도 함께
청솔고개
2020. 6. 8. 01:55
『의사 지바고(DOCTOR ZHIVAGO)』 ‘문학의 힘과 역사의 힘’ (4/4)
청솔고개
이 소설은 파스테르나크의 시의 주요 주제(主題)를 확대하여 발전시키고 있다. 시로서는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것, 작자가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체험하고 생각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형식으로서의 서사시(敍事詩)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소설을 꿈꾸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보고 이해한 모든 훌륭한 것들을 폭약 속에서와 같이 분출(噴出)할 수 있는 소설”하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이 방대한 서사시는 서정시적 요소와 서사시적 서술(敍述)이라는 두 가지의 스타일의 혼용 이외에도 다층(多層)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다. 이 작품은 명백하게 자전적이며 작가자신의 경험(우랄에서의 체류와 부인 아닌 한 여인에 대한 사랑)에 기초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인텔리겐치아의 연대기(年代記)지만 그 속에는 사회 각계각층에서의 60여명의 출신에 이르는 인물이 파노라마처럼 출현한다. 모든 사람들이 복잡하고 상징적인 플롯의 일부분을 형성하지만 각 개인의 운명의 상호관련은 이 소설의 중요한 주제를 이룬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주인공들은 역사 무대의 배우로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우연의 광대한 우주에서 애증(愛憎)의 법칙이 따른 인간으로서 등장한다. 이야기의 중심은 지바고와 라라에 있지만, 작품의 주인공은 시대 그 차체이며 모든 등장인물들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다음향(多音響)적 소설’로 볼 수 있다.
소설 작품 속에서 사랑의 테마는 주요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서 사랑은 인간 대 인간의 사랑, 지바고의 예술 창조에 대한 사랑, 희생으로서의 사랑이라는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랑의 테마는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과 현격(懸隔)한 대조를 이루며, 작품에 종교적인 색채를 띠게 한다. 또한 작품 속에 짙게 배어있는 ‘고독(孤獨)’의 색채는 작품의 깊이를 심오(深奧)하게 해 준다. 사랑과 고독의 테마는 러시아 혁명이 가져다 준 좌절감. 환멸감과 묘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연속적인 장면, 대화, 묘사, 그리고 회상으로 엮어진 이 복잡한 소설은 ‘유리 지바고’의 시를 포함하여 전부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암시적이며 사실적이고 상징적이며 동시에 인상적이며, 단편적이지만 매우 훌륭하게 통합(統合)된 이 소설은 독특한 형식을 갖고 있고 드라마와 서정주의, 언어적 단순성과 감각적 복잡성, 시적 환상과 철학적 심오함이 결합되어 난해(難解)하기 그지없다
시대의 양심으로 등장하는 지바고는 시대를 역행(逆行)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는 혁명에 의해 야기된 사회, 경제적 변화를 받아들인다. 그가 겪는 시대와의 불화(不和)는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우선 철학적이고 도덕적이다. 먼저 지바고는 명령과 집행(執行)이 진실로 인간을 변형시킬 수 있다고 믿는 혁명 지도자들의 환상(幻想)에 공감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그는 폭력(暴力)을 거부하는 데, 특히 폭력이 당파적인 웅변이나 추상적인 공식으로 합리화될 때 그 폭력을 단연코 거부한다. 지바고는 오직 선(善)을 통해서만 최고의 선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약 인간 속에 내재해 있는 야수(野獸)성이 공포와 난폭한 힘을 통해 제어(制御)될 수 있다면, 우리들의 이상은 회초리를 휘두르는 서커스단의 조련사(調練師)이지 예수그리스도는 아닐 것이다”
지바고가 코뮤니즘을 반대하고 있는 주요한 이유는, 그것이 인간과 우주 사이의 연계(連繫)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강압과 억제, 공포와 획일(劃一)화가 지배하는 사회의 그늘에서 시달리고 있는 인텔리겐치아의 항의와 내적 생활의 추구, 자유에의 동경, 개성의 존중 등이야말로 작품 속에 흐르는 작가 의식인 것이다. 삶의 이교(異敎)적인 환희(歡喜)와 자연에 대한 범신론(汎神論)적 사랑을 기독교적인 개념의 형성과 형제애에 결합하고 있는 파스테르나크의 전체 철학은 공산주의자들의 도그마와 현격하게 대치된다. 파스테르나크는 문학을 대중의 교육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을 부정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자연, 사랑, 삶, 고독-을 자유스런 형식 속에 계속 표현했다. 코뮤니스트들은 그를 ‘시대에 맞지 않고 민중과 유리된 퇴폐(頹廢)적인 형식주의(形式主義)자’로 비방했지만 그들 역시 그의 재능과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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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지바고』 와 이 소설의 저자는 아주 직접적으로 러시아 문학의 전통(傳統)을 이어받고 러시아의 현실 속에서 도덕적인 열정과 깊은 책임감을 갖고 있다. 이 소설의 철학적, 종교적, 신화적인 모티브는 러시아 문학과 사상으로 짜인 형형색색(形形色色)의 교직물(交織物)의 일부분을 이룬다. 항거(抗拒)할 수 없는 역사의 발전 법칙에 직면한 개인의 문제는 푸시킨의 시에 나타난 우울하고 항의적인 음조로 파르테르나크에 의해 다시 탐색되고 있다. 푸시킨과 같이 파스테르나크는 그의 주인공을 파멸시키는 역사적인 힘의 불가피성을 인지한다.
또한 『의사 지바고』 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각 작품의 구조를 결정하고 작품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러시아 사회의 현실을 포괄하는 격렬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와 파스테르나크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을 근본적으로 무력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과 평화』속에서의 개인의 무력감은 그것이 개인에 의해 몰이해되고 부정될 때만 비극적이지만 『의사 지바고』 속에서의 그것은 무조건적으로 비극적이다.
『의사 지바고』 에서 인간은 개인적 유일(唯一)성 속에 투영되어 있으며, 인간의 삶은 역사적인 사건들의 도해(圖解)가 아닌 감동, 본능, 사상, 그리고 영적(靈的)인 추구로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건들의 실재 속의 특이하고 경이로운 모험으로 해석하고 있다.
『의사 지바고』 전편(全篇)에 흐르고 있는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색조(色調)는 전체적으로 반혁명(反革命)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무언가 미래에 대한 빛을 느끼게 하는 것은 작가 자신의 생명과 삶에 대한 한없는 신뢰와 애착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말하고 있듯이 ‘자유에 대한 예감(豫感)은 전후 시대의 전체에 감돌고 있는, 그 유일한 역사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러시아 여행을 할 기회가 있으면 지바고를 만나러 바리키노로,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나러 페테르부르크를 꼭 찾아가고 싶다. 그리고 시베리아 벌목장(伐木場)과, 『닥터 지바고』 라라의 테마 로케 현장인 스페인 마드리드 교외 꽈라다하라 평원도 함께. [위의 글은 1986. 여름에 기록한 것임]
[참고한 자료]
-보리스파스테르나크: 『의사 지바고』(安正孝 譯, 고려원, 1978.)
-보리스파스테르나크: 『의사 지바고』(박형규 옮김, 학원세계문학, 1985.)
-버트램. D.울프 : 『詩人과 革命家』(임영일, 이강은 옮김, 한겨레, 1985.)
-<世界映畵音樂全集>(省音社,1979.)
2020.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