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詩) 바람불고 먼지 나는 곳에도 봄날은 간다/ 그래서 바람불고 황토 먼지 흩날리는 이곳에도 봄날은 간다
청솔고개
2020. 4. 3. 19:30
바람불고 먼지 나는 곳에도 봄날은 간다
청솔고개
바람불고 먼지 나는 나의 고향
황토가 질펀하게 퍼져있고
빛나는 졸업장하나로 건너 마을 용이와 눈맞고 배맞아
떠나간 순이의 사연이 아직도 전설처럼 남아 있는 곳
바람불고 먼지 나는 그 곳에도 봄날은 간다
아직도 그곳은
사월 긴긴날 배가 접치는 궁기를 달래려 한달음에 달려가
뒷메 애장터 진분홍 참꽃 한 ⁰뽈때기 입에 우물우물
한손엔 참꽃 대궁이 꺾어서 ¹꽃방맹이 만들고
얼굴은 온통 보랏빛 꽃물로 치장하는데
바람불고 먼지나는 그곳에도 봄날은 간다
나는 생각했었지
단기 사이팔팔년 경오년 봄날
호열자는 창궐하여 거적을 싸서 아기들을
내다버린 곳 애장터
애들의 몸뚱이에서 선혈이 낭자히 흘러 이리 붉게 물들었노라고
우리들은 어린이의 울음소리가
피보다 더 낭자히 울려 퍼지는 능골 애장터를 뒤로하고
‘진달래 보이소! ²연달래 보이소’ 꽃방맹이 만들어 휘두르고 내려오는데
아아 바람불고 먼지 나는 그곳에도 봄날은 간다
늑대 한 마리 꼬리를 내리고 애장터를 어슬렁 어슬렁
지금도 잊지 못하는 그놈의 긴 주동이와 깊은 눈길
붉은 털복숭이 꼬리는 땅을 휘젓고 있는데
사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놈의 암송아지 같은 큰 몸집이 내 눈에 어른거리는 것은
그래서 바람불고 황토 먼지 흩날리는 이곳에도 봄날은 간다
온 동네 처녀, 아지매 물동이 이고 가다 미끄럽어 물동이 깨던 황토진땅에도
숯가막골 넘어가는 길목에도
쇠비산 응달에도 바람은 불고
닥밭밑과 섯갓에는 그날처럼 살찐 까투리가 참았던 기침을 토하는데
홈받에 너머 갬디미 개무덤에는 ³우네가 아득 끼어
오늘도 봄날
황토먼지 날리는 장곬에 앉아 춘삼월 저물어 가는 짐점들을 바라보며
16대 할배 진사공께서 묻혀계시는 낸비 뒷메 양지바른 켠이 빤히 바라다보이는
이곳에도
다래 따먹고 ⁴문디 될 뻔했던 소먹이 길에 소똥냄새가 구수한 이곳에도
바람불고 먼지 나는 이곳에도 봄날은 간다
여기도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로 몽환에 취하고
워더링 하이츠에 부는 바람으로
엉겅퀴, ⁵망게넝쿨,⁶복금자, ⁷뱀딸이 지천으로 퍼져있으며
그래서 바람불고 황토 먼지 흩날리는 이곳에도 봄날은 간다
이 길이었던가 저 길이었던가 우리가
그 유년을 누비고 다녔던 ⁸바뿌재⁹갓 오솔길은
바람불고 먼지 나는 이곳에도 봄날은 간다
2020. 4. 3.
[주(注)]
⁰뽈때기 : '볼때기'의 토박이 말
¹꽃방맹이 : '꽃방망이'의 토박이 말
²연달래 : '진달래' 또는 '철쭉'의 토박이 말
³우네 : '안개' 또는 '놀'의 토박이 말
⁴문디 : '문둥이'의 토박이 말
⁵망게넝쿨 : '청미래덩굴'의 토박이 말
⁶복금자 : '복분자딸기'의 토박이 말
⁷뱀딸 : '뱀딸기'의 토박이 말
⁸바뿌재 : '보자기'의 토박이 말
⁹갓 : '숲', 특히 '소나무 숲'의 토박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