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새벽 병상에서 아버지와의 대화/그들에 비해 나는 네 배나 더 살고 있잖아
청솔고개
2020. 6. 18. 19:49
새벽 병상에서 아버지와의 대화
청솔고개
지금은 새벽 네 시다. 바깥은 아직도 어둠이 깔려 있다.
아버지가 병상에 억지로 일어나셔서 웅크리고 앉아 계신다. 아버지는 또 뭔가 웅얼거리신다. 컴컴한 병실에서 부자간 대면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이 역병 창궐이 언제 종식될지 몰라서 혹 이 순간이 어쩌면 부자간의 마지막 대화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또 울컥해 진다. 불현 듯 이 순간이 한없이 소중해진다.
최근 들어서 아버지의 발음이 더욱 알아들을 수 없게 어눌해지시는 것 같다. 어제는 3년 전에 갔던 호국의 길 탐방 코스와 관련해서 아버지의 횡성전투 참가 전후의 정확한 루트를 알고 싶어서 여쭈니 잘 인지하지 못하신다. 1년 전만해도 말씀 안 드려도 당신 스스로가 자세히 자랑스럽게 말씀해 주시곤 했는데. 대신 작년 이맘 때 아버지의 심장 질환이 위급해서 구급차로 서울 유명 대학 병원으로 이송돼서 입원 했던 사실만을 기억하신다.
언젠가 내가 아버지한테 “5.25한국전쟁 때 그렇게 생사를 걸고 부상을 당하기까지 조국을 위해 충성을 다했으니 참 자랑스럽겠습니다.”고 호응해 드리면, 아버지 말씀은 “6.25동란은 결과적으로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싸운 것인데 그게 뭐 큰 자랑이라고 내세우겠나? 자칫하면 친형제끼리 싸울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난 감사하지. 그 때 갓 스물 지나 좌우익 혼란에다가, 6.25동란에 학도병으로 내 몰리거나, 또 징집되어서 싸우다가 죽은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그들에 비해 나는 네 배나 더 살고 있잖아.” 이 말씀에 나는 아버지의 6.25한국 전쟁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솔직히 좀 놀랐다. 지금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6.25직후에 마포교도소에서 복역 중 희생된 걸로 추정되는 아버지의 형, 그러니 나의 백부님을 두고 하시는 말씀 같기도 하다.
3일 전 아침이었다. 아버지가 꿈 얘기를 하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밤이었는데 누가 새빨간 꽃다발 쉰 개를 하나하나씩 가지런히 놓아주는 작은 방안 복판에 당신이 있어 보이더라고 하신다. 처음에는 내가 잘 못 알아듣고 꽃을 뿌리더냐고 여쭈었더니 그냥 꽃다발 하나씩 정성스럽게 놓고 사라졌다고 하신다. 꽃다발을 둔 사람은 마흔에서 쉰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표정이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고 하신다. 그 순간 당신의 마음도 한없이 평온하게 느껴졌다고 하신다. 그 꽃은 어떤 꽃 같으셨냐고, 혹 장미꽃은 아니었는지 여쭈니 그냥 빨간 색이라고만 하신다. 그 남자가 꼭 너 같기도 하더라고 하신다.
그 꿈을 꾸고 난 새벽에는 아버지의 마음이 참으로 편안하다고 하시던 게 생각난다. 참 좋은 꿈같았고, 기분이 매우 좋아보였고 표정도 더 없이 안온해 보였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또 고개가 숙여지면서 또 잠을 드셨다. 매우 평온해 보이셨다.
이제 대 여섯 시간 후면 아버지와 또 이별이다. 인생사 봉별(逢別)이 아무리 다반사(茶飯事)라 하지만, 특별히 부자간은 더욱 각별한 것 같다. 봉별에서 오는 그리움인가 슬픔인가…….
좀 전에 아버지가 처음엔 달필로 시작해서 엊그제는 마치 초등학생 필체 같이 삐뚤빼뚤 쓴 일기 내용을 살펴보았다. 거기엔 아버지는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 넘쳐나고 있다. 자유로움은 기록의 전편을 꿰뚫고 있는 최선의 가치였다. 구석구석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호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가 평생을 추구하시던 그 자유를 이제 어떻게 확보할 수 있으실까? 오로지 아버지의 혼자의 마음 다스림으로 해나가야 하실 텐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면서 나는 아버지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마음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몸의 자유를 먼저 확보해 놓아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런 상황을 자주 접하면서 22년 후 나의 모습을 또 대비해 본다.
또한 자유와 더불어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어제 아내가 어느 방송국 시니어 대상 프로그램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73세 친정 모친이 병원에서 중병 진단 확정 후 병원 치료를 결사 거부하고 당신이 스스로 단식 강행으로 3일만의 별세를 자초했다고 한다. 딸은 그때 이를 억지로라도 막지 못해서 지금도 커다란 한스러움과 자책으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과연 우리의 주변 일상의 환경에서 위의 73세노인 같은 죽음의 선택은 가능할까? 무엇이 죽음에 대한 가장 현명한 대처 방식일까? 본인의 선택권이 최우선일까? 의료진의 법적 처분이 더 우선일까? 아니면 가족의 선택이 우선일까?
스스로의 힘으로 다리, 팔, 양손으로 일상생활을 영위 못하면……. 더해서 대소변을 자기 힘으로 처리 못하고 양손으로 식사 행위가 안 되면……. 그 때는? 이러면 사람이 아닌 웅크린 짐승 급으로 강등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실제 짐승도 그 생명권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현재 추세인데……. 최근 반려견에 대한 사회 통념과 인식의 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날이 붐하니 밝아 온다. 또 하루의 햇살이 번져나고 있다. 숲 속의 이름 모를 나무들도 그 기운을 왕성히 호흡하고 있다. 생명을 호흡하고 있다. 2020. 6.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