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765

(詩)내 청춘의 꽃도 그러했다

청솔고개 참꽃 피는 시간은 해 넘어가는 시간보다 빠르다올라갈 때 못 보던 꽃잎이 내려올 때 생생히 보인다참꽃 피는 시간은이리도 속절없다내 청춘의 꽃도 그러했다 벚꽃 지는 시간은해 넘어가는 시간보다 빠르다쳐다볼 때 못 보던 꽃비가 내려다볼 때 훨훨 내린다벚꽃 지는 시간은 이리도 속절없다 내 청춘의 꽃도 그러했다 꽃잎이 떨어져 흐르는 시간은흘러가는 물보다 빠르다고개 들어 새파란 하늘길 한번 바라보다가고개 숙여 바람길 한번 보았더니꽃잎이 흘러서 떠가는 시간은 이리도 속절없다내 청춘의 꽃잎도 그러했다 [2026.3.20. 춘분 날에]2026. 4. 4.

나의 노래 2026.04.04

참 아름다운 시절 6. 겨울바다(1)

청솔고개 내게 평생토록 갈망하던 게 하나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한번 살아보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겨울 바다를 닷새째 바라보고 있습니다. 통영의 한 호텔의 창문을 통해서입니다. 이 호텔은 북향이라 종일 햇살 한 점 없습니다. 창 너머 바다는 어디에선가 날아오는 햇살이 넘실거리는 파도의 빛깔에 반사되어 더불어 투명합니다. 나는 전 생애에서 이런 겨울 바다를 찾아 헤맸었습니다.이 겨울 바다는 문득 50여 년 전의 한 이야기를 떠올려줍니다. 나의 20대, ‘겨울 밤바다, 그 등대의 등대지기, 겨울 나목(裸木), 마른강물’은 내 순수의 표상이었습니다. 나는 그 순수를 얼마나 천착(穿鑿)하면서 살아왔던지요. 적어도 20대가 끝나갈 때까지는요. 헐벗고 그 빈한(貧寒)함이 나의 표상(表象)이어야 한다는..

창작과 상상력 2026.03.14

참 아름다운 시절 5. 고향 처녀

청솔고개 그해 여름의 여행은 나의 가을을 지배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온통 그 여행의 후유증에 휩싸였다고나 할까요. 그 뱃전에 친구 하나와 그 처녀와의 다정한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히는 것입니다. 나는 뭔가 새로운 불안에 사로잡혔습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내 마음을 복기해 보았습니다. 다시 들여다보니 내가 처음부터 그 처녀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이 확실한 것 같았습니다. 고향 처녀를 다시 만났습니다. 사진을 전한다는 이유에서였지요. 우리 집도 카메라가 없었고 다른 여행 멤버도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어머니 고종사촌 되는 분한테 어렵게 빌린 카메라로 촬영하였던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최고급 캐논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 대체로 잘 나왔습니다. 선명한 흑백 화질이었습니다. 한 장씩 뺀 사진을 준비해서 그..

창작과 상상력 2025.10.19

참 아름다운 시절 4, 청춘의 가슴 ‘해변으로 가요’, ‘바닷가의 추억’,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별’

청솔고개 1973년이었습니다. 그해 팔월 하순 늦여름이었습니다. 여행 3일째입니다. 지리산 쌍계사에서 남해 상주 해수욕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하루에 몇 번 안 다니는 시외버스는 초만원이었습니다. 우리처럼 여름 바다를 찾아 떠나는 젊은이들이 버스에 가득 찼습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여행객의 일원이 되어 있다는 게 뿌듯했습니다. 더군다나 두 처녀의 동행으로 묘한 설렘과 자랑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비포장도로라서 버스는 많이 털털거렸습니다. 터질듯한 배낭과 여러 야영 채비를 잔뜩 지고 들고 하면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낑낑댔습니다.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바다에는 오후에 도착했습니다. 수평선 너머 흰 구름장이 너울거렸습니다. 살짝 철 늦은 바다라서 그런지 야영객이 그리 많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텐트를 치고 ..

창작과 상상력 2025.10.15

참 아름다운 시절 3, 불면의 밤 , “쌍계사의 초승달과 밤을 지새우다”

청솔고개 둘째 날에는 지리산 불일폭포에서 종일 보냈습니다. 온 폭포를 전세 낸 것처럼 독차지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반바지나 수영복 차림. 우리는 하루 동안 천상계에서 하강한 선남선녀(善男善女) 아닌 선남선녀(仙男仙女)의 현신이라도 된 듯. 폭포 아래 소(沼)에 몸을 담그고 종일 풍덩풍덩. 몸이 차가워져서 덜덜 떨릴 때까지 지치지도 않고 놉니다. 그러다가 숲 사이로 비쳐 드는 햇살에 몸을 말리곤 합니다. 몸이 좀 데워지면 이번에는 폭포 물줄기 안쪽으로 들어가 온몸을 수십 미터 물줄기에 맡깁니다. 몸은 가느다란 싸리 매에 맞는 것 같이 따갑습니다. 각자가 맞은편 산골짜기를 향해 뭐라고 큰소리칩니다. 노래도 아니고 비명도 아닌, 마치 타잔이 밀림의 줄을 탈 때 소리였습니다. 모두 선(善)한 악동(惡童) ..

창작과 상상력 2025.10.11

참 아름다운 시절 2, 금파와 은파, “강물처럼 흐르다, 달빛이 파도에 부서지다”

청솔고개 두 물이 모이는 데 놓은 크고 긴 다리를 건너봅니다. 저 멀리 수평선인지 지평선인지 그 아래에 금빛 물결이 반짝입니다. 아침 햇살에 남한강의 물결은 금빛으로 퍼지고 있군요. 나는 체감합니다. 노래합니다. 우리의 생애도 저렇게 부서지는 햇살 같으리니. 흐르고 흘러가다가 바람을 만나고 햇살을 만나면 잔잔하게 부서지나니. 부서지면서 금빛 찬란한 파동을 선사한다고요. 어릴 적 동요가 떠오릅니다. 희한하게도 노랫말이 다 기억되는군요. “아침 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 바다 노 저어 가요/ 희망에 찬 아침 바다 노 저어 가요/ 저녁 바다 갈매기는 행복을 싣고/ 고기잡이배들은 고기를 싣고/ 넓고 넓은 바다를 노 저어 와요/ 넓고 넓은 바다를 노..

창작과 상상력 2025.10.07

강 가에서 다슬기의 노래를 듣다

청솔고개 집에서 출발할 때는 날이 개 있었는데 목적지에 이르러 가니 안개가 스멀스멀 산 위로 피어오른다. 한낮인데도 사위가 어두워진다. 아내가 무척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이렇게 어두우면 사고디가 잘 안 보일 텐데…." 한다. 오직 다슬기 일념이다. 다슬기가 노래하는 곳에 도달한다. 거짓말같이 날은 말갛게 개 있다. 아내는 신바람이 난다. 아내는 개울로 들어간다. 나는 오랜만에 강가에 앉아 있다. 혼자다.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어떤 소설 제목 "가재가 노래하는 곳(델리아 오언스의 장편소설)"이 떠오른다. 아내는 다슬기 잡는 걸 너무 좋아한다. 나는 이 강가에서 ‘다슬기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다. 헤세의 싯다르타에서의 '이 강에 머물리라'라는 화두를 떠올린다. 그는 물속에서 반짝이는 ..

Now n Here 2025.10.04

‘말은 살아있다’

청솔고개 생각과 느낌이 전제되어서 언어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언어가 먼저 있어서 생각과 느낌을 규정한다고 현대 언어학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언어는 생각의 감옥, 생각과 느낌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남루한 옷을 입으면 아무데나 주저앉게 되지만 깨끗한 옷을 입으면 티끌 하나에도 신경쓴다. 언어는 우리가 입은 옷과 같다. 노인(老人)이란 말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노인'에는 늙었다는 뜻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늙음’은 ‘낡음’으로 인식된다. ‘늙음’에는 노숙(老熟), “원만하게 잘 익음”의 뜻보다 ‘노약자(老弱者), 약한 존재, 사회의 변화에 미욱한 존재’라는 고정관념이 잡고 있다. 함부로 노인이라고 호칭(呼稱), 지칭(指稱)하면 곤란하다. 젊은이들은 노인을 ‘어르신’으로 호칭하고, ‘..

Now n Here 2025.09.29

참 아름다운 시절 1 , ”추억 소환“

청솔고개 추억만큼 아름답고 달콤한 것이 뭐 또 있을까? 첫사랑? 그것도 그 자체가 달콤해서라기보다 추억할 수 있으므로, 추억해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고희(古稀)를 훨씬 지난 나이가 되니 나도 모르게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롯의 아내에게 하늘이 내린 명은 절대로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일종의 경구(警句)다. 그러면 지난날에 사로잡혀서 앞날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퇴영적(退嬰的)이 된다고 다그치는 잠언(箴言)이다. 나는 지금은 앞으로 나아갈 일이 별로 없으니,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추억을 먹고 산다. 나는 한 나이라도 더 젊은 시절에는, 늙어서 파먹고 살 만한 추억이라도 많이 만들어놓아야 한다고 스스로 자주 다짐하곤 했었다. 군 시절에, 특히 보초 근무 때부터 이미 나는 추억을 우려먹..

창작과 상상력 2025.09.28

내 청춘이 빛나던 순간 10 ‘상고대와 더불어 핵겨울을 견디다’

청솔고개 전방 중동부 지역 군 생활에서 추위로 가장 고통당했던 것은 의외로 야간 경계근무 때다. 보통은 2시간씩 야간 보초를 선다. 한번은 연이어 며칠 동안 영하 15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진 적이 있었다. 이런 혹한기에는 보초 근무 방식이 확 바뀐다. 2시간이 너무 길어서 동상 등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한 시간씩 나눠서 두 차례 식 근무하도록 상부에서 지침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언뜻 대단히 병사들을 배려한 지시 같았지만 실은 이 조처는 야전부대 현장의 실정은 모르는 탁상공론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된다. 하룻저녁에 보초를 두 번 나간다는 것은 아주 가혹한 근무 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경계근무를 서려면 내무반의 불침번이 해당 근무자를 보통 근무 교대 시간 30분 전에 ..

회상 2025.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