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n Here 60

내 청춘이 빛나던 순간 6, ‘산악 훈련’ 3화

청솔고개 우리는 가슴을 죄면서도 승차의 안락함에 취한 나머지 거의 모두가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때 잠결에 누가 “큰일 났다. 들통난 것 같다.”라고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나도 화들짝 잠에서 깼다. 그 순간 “뛰어내려!, 걸리면 영창이다.*된다.”라고 숨죽여 말한다. 사태가 어렴풋이 파악됐다. 나도 아픈 뒤꿈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후다닥 뛰어내렸다. 상황을 파악해 보니 사태가 많이 악화해 있었다. 다른 트럭 하나도 서 있고 그 옆에 몇몇 병사들이 엎드려뻗쳐 자세로 있었다. 깜깜한 한밤이지만 우리의 행적도 고스란히 노출된 게 뻔했다. 살짝 옆으로 새려고 하는 유혹도 생겼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게 오히려 사태를 더 복잡하게 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도 다른 몇몇 동승자와 같이 순순히 나가서..

Now n Here 2025.05.25

내 청춘이 빛나던 순간 5, ‘산악 훈련’ 2화

청솔고개 훈련 제3일 아침이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엄습한다.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한다. 오늘은 기초유격이다. 교육훈련 50분 중 45분은 PT체조 훈련이다. 훈련의 기본은 체력이라고 거친 목소리로 호통치는 교관과 조교의 표정은 자못 진지하고 엄정했다. 그렇지만 교육받는 병사들은 버티다가 40분쯤 지나면 날숨 들숨이 거의 기관의 피스톤처럼 오가다가 폭발 직전에 이르는 듯해진다. 그만큼 훈련은 병사들의 몸에 남은 단 한 올의 칼로리도 다 불태우려는 듯한 기세였다. 웅덩이에 물을 채워놓고서 로프를 잡고 건너는 훈련을 했다. 어떤 병사들은 반동의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해 중간에 풍덩 빠진다. 망신이다. 나는 적어도 저런 꼴은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있는 힘을 다해..

Now n Here 2025.05.24

내 청춘이 빛나던 순간 4, ‘산악 훈련’ 1화

청솔고개 국방부 시계는 째깍째깍 잘도 돌아간다. 계절은 한여름에 접어들었다. 드디어 악명 높은 유격훈련의 시즌이 돌아왔다. 훈련은 기수별로 명령받은 대로 부대 부설 산악훈련장에서 이루어진다. 산악 훈련 일정이 결정되면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발을 부르트지 않고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데 온갖 노하우가 다 동원된다. 비누를 깎아서 군화 깔창 위에 넣는다든지, 아니면 솔잎을 넣는다든지 하는 것이다. 가장 큰 공포는 설악산 장수대에 있는 사단 산악훈련장까지 15시간 이상 걸어야 하는데 그 철야 행군에 발바닥이 까져서 극심한 통증을 겪는 일이다. 이때만큼은 부대 전체는 선임 후임 구분하지 않고 출정하는 대원을 위해 최선의 배려를 한다는 분위기로 넘쳐흐른다. 이런 미덕, 동지애, 혹은 전우애라고 하는 감정에 그..

Now n Here 2025.05.23

내 청춘이 빛나던 순간 3, ‘이[蝨] 떼 창궐 소동'

청솔고개 쫄병으로 자대 배치 이후 첫 겨울을 힘겹게 보냈다. 야전 부대의 겨울나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처구니없이 ‘이[蝨] 소동’이었다. 당시 이가 창궐하여 모포 솔기에는 굼실굼실할 정도였다. 병사들은 아주 어린 시절 한때 각자의 가정에서 목격하였다가 생활환경의 개선으로 사라진 기생충으로 기억되던 존재였다. 내 어린 시절에도 우리 어머니가 우리 5남매를 키우면서 겨울마다 내복에 붙은 이를 컴컴한 등잔불 밑에서 잡아서 두 손톱을 포개서 으깨던 기억이 있다. 비릿한 피 냄새가 풍기던 기억도 있다. 그 후 위생 상태가 좋아지고 더구나 연탄을 때기 시작하면서 박멸돼 자취를 감추었던 이 떼를 군에 들어와서 구경할 줄이야 꿈엔들 생각이나 했으랴. 이투성이 모포를 당장 어찌하는 수는 없었다. ..

Now n Here 2025.05.21

내 청춘이 빛나던 순간 2, ‘삥땅 첫 휴가’

청솔고개 고대하던 첫 휴가 명령이 떨어졌다. 군복도 새것으로 준비하고 군화도 반질반질 닦아서 걸어두었다. 1977년 4월 1일, 부대장에게 휴가 신고를 마친 후 첫 휴가를 출발했다. 봄풀이 파릇파릇하였다. 내 마음은 이미 고향 앞으로 가 있었다. 그간의 지독한 향수병 치유에 대한 기대로 마음은 더욱 부풀어 올랐었다. 소양호 도선장에 도착해서 배표를 사서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예상치 못한 돌발사태가 생겼다. 도선장 초소를 지키고 있던 헌병 하나가 나를 불러세웠다. 휴가병 복장 점검한다는 것이다. 아래위를 죽 훑어보더니 비표인지 뭔가가 잘못됐다나. 복장 위반으로 군 풍기 적발을 해야겠다고 한다. 이미 두 번째 휴가로 동행하던 선임병이 나보고 드디어 우려하던 올 게 온 것 같은데 이제 어떡할 거냐고 ..

Now n Here 2025.05.13

내 청춘이 빛나던 순간 1,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청솔고개 별은 밤하늘이 어두워져야 빛이 나는 법이다. 암울하다고 여겨질 때 더욱 빛났었던 내 청춘의 순간들이었음을 지금에야 깨닫는다. 입대 첫해 겨울나기 과정은 내 생애 특이한 체험이었다. 특히 전방 부대에서는 월동 준비를 교육 훈련 및 작전 이상으로 중요시했었다. “겨울을 잘 버텨야 한다.” 이는 군 전력의 유지와 직결되는 것이다. 폭설과 동파, 이로 인한 각종 안전사고 예방으로 월동기의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11월 중순이다. 행정반 선임병들이 이번 주말에는 월동 준비하러 부대 뒷산에 오른다고 했다. 1차 월동 준비는 화목 채취다. 선임병의 인솔로 천2백 미터 가까이 되는 사명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산꼭대기서 사방을 둘러보니 남북으로 펼쳐진 새파란 물결이 겨울 햇살에 반짝이고..

Now n Here 2025.05.12

나의 청춘보고서 4, 창고 업무, 공용외출

청솔고개 내가 맡은 보직은 사단 통신지원대, 본부 소속 통신 공병 수리 부속 계로, 창고 근무였다. 고교 국어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일에서, 느닷없이 전공과는 동떨어진 창고 근무라니, 내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제는 찬밥, 더운밥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박 아무개 상병은 함께 업무를 같이 처리하면서 내게 잘 가르쳐 주었다.퀀셋 막사의 창고 바닥은 흙바닥이었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기도 했다. 사람이 기거하기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전까지 방치돼 있었던 창고 내부를 정리하여 팔레트를 깔고 큰 물품은 쌓아놓았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창고 안의 물품의 재고 조사였다. 이전에는 물품 재고 카드 하나 없이 그냥 주먹구구로 처리한 듯하였다. 손가락보다 더 작은 진공관, 퓨즈 등은 칸막이 선반을..

Now n Here 2025.04.21

나의 청춘보고서 3, 대기병, 취사반 사역병,부조리 상황극

청솔고개 내무반 대기 후 첫 면담이 있었다. 첫날은 이렇게 어영부영 보냈다. 다음 날 나는 다시 인사계 상사와 나의 보직에 대해 면담하였다. 교사 출신이고 하니, 행정반 교육계 일을 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교육장교가 넌지시 의향을 타진해 왔다. 드디어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일개 사단에 티·오가 서넛밖에 안 되는 희소 주특기는 십중팔구 제대로 찾아 먹지 못한다는 제2훈련소부터의 풍설이 낭설이 아님을 확인하는가 싶다. 나는 그 부당함을 항의했다. 통신학교에서 10주 이상 국비를 들여서 양성한 특수 보직 자원을 부대의 편의를 위해 일방적으로 다른 직(職)으로 보(補)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나의 주장이 전입 이등병치고는 당돌하다고 부대의 인사 행정장교는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Now n Here 2025.04.20

나의 청춘보고서 2, 나의 '25시’

청솔고개 나는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4주를 보냈다. 사단 정예 병력의 일원으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한 단계다. 때마침 김장철이라서 전반 2주는 김장 사역으로 보냈다. 군내에서 월동을 위해 김장을 그렇게 많이 하는 게 신기하였다. 후반 2주는 병 기본 훈련과 사격 능력 측정 위주로 보냈다. 훈련은 사단의 명성만큼 철저했다. 선착순 구보는 일상이었으며 사격 수준 미달로 인한 기합에 헉헉대는 등 고강도 훈련을 받다 보니 4주가 지났다. 기억에 남는 것은 BOQ 공사에 하수도 터파기 사역병으로 몇 차례 차출된 일이었다. 처음으로 삽과 곡괭이를 들고 노가다 노릇을 해보았다. 모든 이벤트가 육군 이등병으로서 겪는 비애라기보다 매 순간 새로운 체험으로 다가온다. 생애 언제 다시 이런 일을 해볼까, 하면서 받아..

Now n Here 2025.04.19

나의 청춘 보고서 1, 충지(充指), 제3보충대, "소양강 처녀", 사단 신병교육대

청솔고개 앞의 글에서 지난여름, 가을, 겨울을 재활 병원에서 보내고 있으니 불현듯 48년 전 여름이 떠 오른다고 했었다. 내 생애에서 그 시절, 내 스물다섯은 치열했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가슴앓이 트라우마가 있었던 나는 의도적으로 그 시절을 스스로의 담금질로 보냈던 것 같다. 다섯이나 사망했다는 그해 여름 폭염 훈련의 순간순간 나의 끈기, 견딜심, 연단이라는 독기를 품었기 때문이다. 그해 한여름 육군 제2훈련소 병 기본 훈련 6주에 이어 10주 후반기 주특기 교육을 마치고 나니 10월 말이 다됐다. 후반기 육군통신학교 교육을 마치고 배출되는 시점이 다가오니 어디에 배치되느냐 하는 것이 교육생 모두 초미의 관심사였다. 각자 이동할 짐을 싸고 나서 배치 부대 발표를 기다리는 시..

Now n Here 2025.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