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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이 빛나던 순간 5, ‘산악 훈련’ 2화

청솔고개 2025. 5. 24. 18:16

   청솔고개

   훈련 제3일 아침이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엄습한다.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한다. 오늘은 기초유격이다. 교육훈련 50분 중 45분은 PT체조 훈련이다. 훈련의 기본은 체력이라고 거친 목소리로 호통치는 교관과 조교의 표정은 자못 진지하고 엄정했다. 그렇지만 교육받는 병사들은 버티다가 40분쯤 지나면 날숨 들숨이 거의 기관의 피스톤처럼 오가다가 폭발 직전에 이르는 듯해진다. 그만큼 훈련은 병사들의 몸에 남은 단 한 올의 칼로리도 다 불태우려는 듯한 기세였다.

   웅덩이에 물을 채워놓고서 로프를 잡고 건너는 훈련을 했다. 어떤 병사들은 반동의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해 중간에 풍덩 빠진다. 망신이다. 나는 적어도 저런 꼴은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있는 힘을 다해서 풀쩍 건넜다. 맞은편 도달 지점에는 각목을 흙에 박아서 착지하는 그곳을 표해 놓았다. 거기에 닿는 순간 오른발이 찌릿하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오른쪽 뒤꿈치가 불편하다. 약간 절뚝거려진다. 중간에 풍덩 할까 봐 너무 긴장한 나머지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잘못된 것 같다. 제대로 훈련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낭패다. 주변에 이런 불편감으로 호소하니 의무대에 가 보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또 어떤 선임은 어중간하게 진료받다가는 후송당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음 기에 다시 재입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고생만 더하게 된다는 설도 있었다. 한 번 오는 데도 이렇게 죽을 지경인데 여기를 한 해에 두 번 오게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는 말이 있다. 우선은 회피할 수 있지만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부상을 적극적으로 호소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 나는 고심에 빠졌다. 여러모로 보아 그러기는 싫었다. 정면 승부하기로 했다. 이른바 사나이 기백 운운하면서. 나는 어찌하든지 버텨보기로 했다.

   산악[유격] 훈련은 단계별로 철저히 진행됐다. 앵커를 사용하는 등반 하강 훈련, 외줄타기 등은 어찌어찌해서 발뒤꿈치가 아파도 버틸 수 있었다. 높은 긴장도가 있어야 하는 훈련이기 때문에 그런 통증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사흘짼가 나흘째에 우리 사단만의 특화된 산악행군 훈련에서 나는 그만 난관에 봉착했다. 그 훈련은 종일 장수대와 한계령 능선을 걷는 것이다.  비록 단독 군장차림으로  하는 산악행군이었지만 나는 등산은 너무나 좋아하니 훈련 자체는 대 환영이었다. 다만 걸으면 통증이 지속적으로 유발하는 상황에서는 출발부터 심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처음에는 어찌어찌하여 따라갔다. 서너 시간 지난 중반 이후는 발꿈치의 통증이 심해져 왔다. 남설악의 속살을 들여다본다는 즐거움에도 통증은 견딜 수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강도 높은 훈련 산악행군 자체를 소화하는 데도 들숨날숨인데 발뒤꿈치의 통증까지 더해졌으니 그 상황은 참상 수준이었다. 총 맞은 부상병처럼 절뚝거리며 그날의 산악행군 훈련을 마쳤다. 텐트에 돌아와서 나의 모습을 지켜본 동료들은 지금이라도 의무대에 가서 진단과 치료받으라고 권유하였다.

   나는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 내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종군기자 시절의 헤밍웨이와 중국 내전, 스페인 내란, 동파키스탄 독립운동 참전 시절의 앙드레 말로였다. 그들의 행동주의다. 행동하는 지성이다. 다른 말로는 참여문학이다. 이들은 그 상황을 목숨 담보로 자신들의 실존을 시험하는 장으로 삼은 것이다. 작가적인 결기 아닌가. 따라서 나도 감히 그들의 흉내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이 상황을 버틸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이후의 훈련에서 자체의 강도에다 나만의 통증이 보태져서 내가 추구하고 시도했던 실존실험장으로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5일 간의 길고 긴 산악 훈련이 끝나고 귀대하는 날이 다가왔다. 역시 왔던 길을 그대로 걸어가는 코스였다. 순간적으로 힘든 것은 견딜만한데 통증을 동반한 15시간 이상의 보행에는 큰 두려움이 생겼다. 출발했다. 절뚝절뚝하면서 2시간쯤 걸어왔을 때이다. 모두 많이 지치기 시작했다.

   설악산 장수대 산악훈련장에서 인제군 원통리로 가다가 중간쯤 되는 지점이었다. 거기서 군용트럭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불현듯 저 트럭에 올라타면 내 발꿈치의 통증 하나 없이 1시간 못 돼서 부대에 도착할 텐데 하는 강렬한 끌림이 생겨났다.

   내가 이렇게 스스로 양가감정으로 고심하고 있는데 그 트럭을 몰고 가는 운전병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부대 사단장님 가족이 동해안 휴양지에 이번 여름휴가 때 사용했던 야영 장비를 실은 것이다. 많이 지친 친구들도 보이는데 같이 타고 가면 될 것 같다.”라고 했다. 내가 묻고 싶은 걸 그대로 답해준다. 게다가 뒤의 적재함에도 야영 장비 몇 개만 실려있고 나머지는 텅 비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걷다가 지친 동료들은 누가 먼저 하자는 말도 없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우르르 그 적재함에 뛰어 올랐다. 텐트의 지주대도 보이고 텐트도 쌓아져 있었다. 우리는 순간의 유혹에 빠져 양심의 거리낌과 심한 통증을 거래한 것이다. 물론 혼자서는 도저히 시도할 수 없는 행위였지만 군중심리에 편승하여 일을 저질러 버렸다. 군 복무규율에는 오롯이 끝까지 걸어서 귀대해야 한다, 편법을 사용해서 훈련에 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해 놓은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터였다.      2025.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