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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춘보고서 4, 창고 업무, 공용외출

청솔고개 내가 맡은 보직은 통신지원대, 본부 소속 통신 공병 수리 부속 계로 창고 근무였다. 중등 국어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느닷없이 전공과는 동떨어진 창고 근무라니, 전혀 내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제는 찬밥, 더운밥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박 아무개 상병은 함께 업무를 처리하면서 내게 일을 잘 가르쳐 주었다.퀀셋 막사의 창고 바닥은 흙바닥이었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기도 했다. 사람이 기거하기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전까지 방치돼 있었던 창고 내부를 정리하여 팔레트를 깔고 큰 물품은 쌓아놓았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창고 안의 물품의 재고 조사였다. 이전에는 물품 재고 카드 하나 없이 그냥 주먹구구로 처리한 듯하였다. 손가락보다 더 작은 진공관, 퓨즈 등은 칸막이 선반을 ..

Now n Here 2025.04.21

나의 청춘보고서 3, 대기병, 취사반 사역병,부조리 상황극

청솔고개 내무반 대기 후 기본적인 면담이 있었다. 첫날은 이렇게 어영부영 보냈다. 다음 날 나는 다시 인사계 상사와 나의 보직에 대해 면담하였다. 교사 출신이고 하니, 행정반 교육계 일을 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교육장교가 넌지시 의향을 타진해 왔다. 드디어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일개 사단에 티·오가 서넛밖에 안 되는 희소 주특기는 십중팔구 제대로 찾아 먹지 못한다는 제2훈련소부터의 풍설이 낭설이 아님을 확인하는가 싶다. 나는 그 부당함을 항의했다. 통신학교에서 10주 이상 국비를 들여서 양성한 특수 보직 자원을 부대의 편의를 위해 일방적으로 다른 직(職)으로 보(補)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나의 주장이 전입 이등병치고는 당돌하다고 부대의 인사 행정장교는 불편한 기색을 ..

Now n Here 2025.04.20

나의 청춘보고서 2, 나의 '25시’

청솔고개 나는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4주를 보냈다. 사단 정예 병력의 일원으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한 단계다. 때마침 김장철이라서 전반 2주는 김장 사역으로 보냈다. 군내에서 월동을 위해 김장을 그렇게 많이 하는 게 신기하였다. 후반 2주는 병 기본 훈련과 사격 능력 측정 위주로 보냈다. 훈련은 사단의 명성만큼 철저했다. 선착순 구보는 일상이었으며 사격 수준 미달로 인한 기합에 헉헉대는 등 고강도 훈련을 받다 보니 4주가 지났다. 기억에 남는 것은 BOQ 공사에 하수도 터파기 사역병으로 몇 차례 차출된 일이었다. 처음으로 삽과 곡괭이를 들고 노가다 노릇을 해보았다. 모든 이벤트가 육군 이등병으로서 겪는 비애라기보다 매 순간 새로운 체험으로 다가온다. 생애 언제 다시 이런 일을 해볼까, 하면서 받아..

Now n Here 2025.04.19

나의 청춘 보고서 1, 충지(充指), 제3보충대, "소양강 처녀", 사단 신병교육대

청솔고개 앞의 글에서 지난여름, 가을, 겨울을 재활 병원에서 보내고 있으니 불현듯 48년 전 여름이 떠 오른다고 했었다. 내 생애에서 그 시절, 내 스물다섯은 치열했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가슴앓이 트라우마가 있었던 나는 의도적으로 그 시절을 스스로의 담금질로 보냈던 것 같다. 다섯이나 사망했다는 그해 여름 폭염 훈련의 순간순간 나의 끈기, 견딜심, 연단이라는 독기를 품었기 때문이다. 그해 한여름 육군 제2훈련소 병 기본 훈련 6주에 이어 10주 후반기 주특기 교육을 마치고 나니 10월 말이 다됐다. 후반기 육군통신학교 교육을 마치고 배출되는 시점이 다가오니 어디에 배치되느냐 하는 것이 교육생 모두 초미의 관심사였다. 각자 이동할 짐을 싸고 나서 배치 부대 발표를 기다리는 시..

Now n Here 2025.04.10

“나는 아직 걸음마 연습 중입니다.”

청솔고개   ***모임 친구들, 이번의 과분한 도움과 배려에 정말 감사합니다. 방금 회장님으로부터 나를 위한 위로금도 송금받았습니다.    나도 아직은 내 나이를 착각하고 있었는데, 마음은 아직 청춘이라는 식으로... 여기 오래 머물러 보니 비로소 내가 정말 고령층에 속한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천차만별(千差萬別), 천태만상(千態萬象)의 장애 양태를 목격하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돌이 되면 거의 걸음마를 배워서 뒤뚱뒤뚱하게나마 걷는데, 나는 아직 걸음마 연습 중입니다. 돌받이가 처음 한 발짝을 뗐을 때, 그 순간 온 가족이 용을 쓰고 박수 치고 환호작약합니다. 요즘은 그것을 영상으로도 남겨 놓더군요. 나는 그런 돌받이로 커가는 기분입니다. 나는 아직 100일 조금 지난 ..

Now n Here 2025.03.24

운동장 트랙에서 비로소 첫 발걸음을 떼다, 48년 전 그해 여름을 떠올리다

청솔고개   오늘 비로소 실내에서 지팡이로 걷는 걸 주치의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통행 구간은 5211병실에서 병동 중앙 티브이 보는 휴게소까지로 한정했다. 그것도 반드시 보호자와의 동반 조건에서. 이 얼마나 엄청난 진보인가. 입원 당시에는 휠체어로 옮겨 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고까지 생각했었는데. 친구 김아무개, 선배 김아무개, 우리 집 둘째와 통화했다. 내 사연을 모두 인내심을 가지고 받아준다. 고맙다.   옆 병상에서는 자그마한 일이 생겼다. 간병하는 형이 자주 술에 절여서 동생을 잘 돌보지 않는다고 동생이 제 어머니에게 고했기 때문이다. 이런 형 동생 사이의 불화로 형은 간병을 안 한다고 짐 싸서 나가 버리고 대신 그 모친이 간병하러 왔다. 보호자의 둘째 아들인 환자에는 삼남 1녀, 어린아이가 딸..

Now n Here 2025.03.22

잔뇨(殘尿)와 씨름하다, 배뇨일지(排尿日誌) 쓰다, 또 다른 장애(障礙)의 시작

2024. 7.15.   오늘, 입원 25일째, 발병 26일째 날이다. 요즘 오줌이 원활히 누어지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다리에 힘없어 불편한 것보다는 요도에 관 넣고 오줌 누도록 하는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는 무언가라도 세세히 내 병증의 이력(履歷)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그걸 못한다고 하면 아직은 발병과 치료로 여력 없어서 그렇다고 하면 변명일까.   침상에서 오줌줄을 오줌통과 연결해서 편리하게 배뇨하는 방식으로 오래 하면 배뇨 기능이 떨어진다고 한다. 자연 배뇨(스스로 배뇨)를 시도해 보라고 했다. 자연 배뇨 시작한 지 7일이다. 오늘 잔뇨 측정 통계를 내보니 9차례, 3,140cc로 측정된다. 엄청난 양이다. 평균보다 1,000~1,500cc가 더 많다. 수액, 주사액 등..

Now n Here 2025.02.23

“우리 모두 장애인입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오직 신만이 비장애인입니다”

청솔고개    영원한 안식을 취하기 전에/아픈 통증까지도 사랑하라    저녁이 따스하게 감싸주지 않는/힘겹고 뜨겁기만 한 낮은 없다   무자비하고 사납고 소란스러웠던 날도/어머니 같은 밤이 감싸안아 주리라   ‘헤세의 시 「절대 잊지 말라」중에서’    헤르만 헤세의 수필집 ‘삶을 견뎌내기’에 실린 한 편의 시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볼 때, 품격 있고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로 평가되는 헤세도 삶은 향유(享有)하는 것보다 그냥 견디는 것, 버티는 것으로 보고 있다. 헤세의 생애가 그러하거늘 보통 사람들의 한 생애(生涯)는 어떠할 것인가. 삶은 지난(至難)한 역정(歷程)이다.   나는 2024. 6. 20. 저녁 한 친구와 식사하고 차 한잔하려는데 하지에 힘이 완전히 빠지고 몸의 중심이 무너져 걷지 못하는 ..

Now n Here 2025.02.18

“잘 넘어지는 법을 가르쳐 드립니다”

청솔고개   30년도 더 전이다. 직장 동료 하나가 스키 타기에 막 빠져드는 중이었다. 그는 스키 전도사를 자처했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스키 타기의 매력을 틈만 나면 호소하곤 했었다. 지금껏 내가 시도 보았던 스포츠, 예컨대, 테니스, 축구 등은 체력과 체격 조건이 맞지 않아 몇 차례 시도해 봤지만, 도중에 포기했었는데 내게 이런 제안은 무척 신선하고 매력적이라고 느꼈었다.    나는 속으로 '옳다구나, 이것이다. 이젠 스키다. 이건 체력보다 담력이 더 필요할 터. 이것만큼은 내가 반드시 마스터하리라' 하고 다짐했다. 그 스키 전도사는 스키장에서 대표적으로 스키 포기족의 행태를 이렇게 전했다. “스키장 아래에서 몇 번 연습한 후 바로 리프트 겨우 타고 올라가서 활강하려니 밑에서 보던 것과는 너무나..

Now n Here 2025.02.13

눈 감으면 유년 시절 고향 집이 떠오르다 2

청솔고개    왕대로 얼기설기 짜 놓은 큰사랍은 무거워서 나 혼자 여닫기가 힘든다. 가는 대쪽 촘촘히 짜 놓은 작은사랍은 나 홀로 살짝 잠금 고리로 들어 옮겨본다.    퍼런 물이끼 끼어 있는 앞마당 텅 빈 데는 바로 앞 논바닥과 높이 차이 거의 없다. 마당 물 빠짐이 더뎌서 축축하다. 마당 가 도랑에는 실지렁이도 오글오글하다.    야트막한 황토 죽담 위 반질반질 툇마루가 놓여 있다. 그 아래는 호매이, 낫, 수굼포, 곰배, 쏘래이, 가래, 까꾸리 차곡차곡 보관해 놓은 곳이다. 두꺼운 소나무 판으로 짠 대청마루 보기에 든든하다. 걸으면 삐걱삐걱 소리가 더욱 요란하다. 대청의 실겅 콩자반 몰래 꺼내 먹으러 깨금발로 살금살금 걸어 들어간다.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어 간다. 대청 넓은 틈새에는 먼지와 때가..

Now n Here 2025.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