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왕봉 일출 2

그날의 산행일기, 지리산 천왕봉 일출 2

청솔고개 2008. 8. 23. 갬. 우리 부자는 그 새벽에 묵묵히 일출을 위해 천왕봉을 진격하고 있었다. 우리 부자간에서 그때까지 가장 깊은 대화와 소통의 두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드디어 철쭉과 진달래 떨기나무로 울타리처럼 갈라진 길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암실에서 필름을 인화할 때 희석한 정착액을 풀어놓은 바트의 인화지에 흑백의 그림이 서서히 드러나는 듯한 신비함이 있었다. 때로는 고사목이 마치 유령처럼 출몰하기도 했었다. 드디어 남쪽으로 살짝 치우친 듯한 쪽에서 희뿌연 기운이 번져 오르는 듯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이 합일한 데서 솟아나는 어떤 기운과 같았다. 우리는 긴장해서 흐르는 땀과 새벽안개가 이슬로 돼서 생긴 축축함을 구분할 틈도 없이 물에 흠씬 젖어버렸다. ..

마음의 밭 2022.04.21

그날의 산행일기, 지리산 천왕봉 일출 1

청솔고개 2008. 8. 23. 새벽, 짙은 안개. 2박 3일 우리 부자의 지리산 종주 마지막 날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은 있어도 산에서 폭우 만나면 한여름에도 얼어 죽는다는 말은 일찍이 실감하지 못하였던 터라 어제 하루는 우리에게 거의 미증유의 신체험이었던 것이다. 저체온 증의 위험성을 난생처음 호되게 당한 터라 그냥 세석평전대피소에서 눅눅한 몸의 기운을 그대로 느끼면서 최대한의 이완을 통해서 심신의 충전을 기했다. 오늘이 바로 우리 산행의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었다. 엊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도 내일 한반도 최고봉에서의 일출을 과연 만날 수 있을까, 그런 행운이 우리가 안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 기대감으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 1 시에 일어났다. ..

마음의 밭 2022.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