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08. 8. 23. 갬. 우리 부자는 그 새벽에 묵묵히 일출을 위해 천왕봉을 진격하고 있었다. 우리 부자간에서 그때까지 가장 깊은 대화와 소통의 두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드디어 철쭉과 진달래 떨기나무로 울타리처럼 갈라진 길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암실에서 필름을 인화할 때 희석한 정착액을 풀어놓은 바트의 인화지에 흑백의 그림이 서서히 드러나는 듯한 신비함이 있었다. 때로는 고사목이 마치 유령처럼 출몰하기도 했었다. 드디어 남쪽으로 살짝 치우친 듯한 쪽에서 희뿌연 기운이 번져 오르는 듯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이 합일한 데서 솟아나는 어떤 기운과 같았다. 우리는 긴장해서 흐르는 땀과 새벽안개가 이슬로 돼서 생긴 축축함을 구분할 틈도 없이 물에 흠씬 젖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