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82

어머니의 노래 5

청솔고개 2014. 12. 6. 아침에 노트북에서 모임에서 찍은 사진을 모임카페에 탑재하려고 사진 정리하다가 보니 어머니 사진이 보였다. 작년과 올 여름날 묘원, 시내 일대 꽃밭에 같이 모시고 갔던 때 찍은 거다. 사진 속에 어머니는 무척 평화스럽고 편안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이 짜릿하고 아프다. 그러면서 올 가을엔 따스한 날에 휠체어 태워드리면서 한 번도 바깥나들이도 못시켜 드렸었지 하는 회한도 생긴다. 이게 어쩌면 또 더 큰 회한으로 남을지 모르겠다. 그땐 우선 어머니께서 휠체어 타시는 게 너무 힘들어하시고 또 가끔은 소변 흔적도 보이곤 하기 때문에 불안해 하서였다. 이제 어머니 모시고 따스한 어느 날 바람 쐬러 나갈 그 한 순간이라도 내게 허여될지 생각하니 이제는 정말 모..

마음의 밭 2022.05.20

그날의 산행일기, 지리산 천왕봉 일출 2

청솔고개 2008. 8. 23. 갬. 우리 부자는 그 새벽에 묵묵히 일출을 위해 천왕봉을 진격하고 있었다. 우리 부자간에서 그때까지 가장 깊은 대화와 소통의 두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드디어 철쭉과 진달래 떨기나무로 울타리처럼 갈라진 길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암실에서 필름을 인화할 때 희석한 정착액을 풀어놓은 바트의 인화지에 흑백의 그림이 서서히 드러나는 듯한 신비함이 있었다. 때로는 고사목이 마치 유령처럼 출몰하기도 했었다. 드디어 남쪽으로 살짝 치우친 듯한 쪽에서 희뿌연 기운이 번져 오르는 듯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이 합일한 데서 솟아나는 어떤 기운과 같았다. 우리는 긴장해서 흐르는 땀과 새벽안개가 이슬로 돼서 생긴 축축함을 구분할 틈도 없이 물에 흠씬 젖어버렸다. ..

마음의 밭 2022.04.21

그날의 산행일기, 지리산 천왕봉 일출 1

청솔고개 2008. 8. 23. 새벽, 짙은 안개. 2박 3일 우리 부자의 지리산 종주 마지막 날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은 있어도 산에서 폭우 만나면 한여름에도 얼어 죽는다는 말은 일찍이 실감하지 못하였던 터라 어제 하루는 우리에게 거의 미증유의 신체험이었던 것이다. 저체온 증의 위험성을 난생처음 호되게 당한 터라 그냥 세석평전대피소에서 눅눅한 몸의 기운을 그대로 느끼면서 최대한의 이완을 통해서 심신의 충전을 기했다. 오늘이 바로 우리 산행의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었다. 엊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도 내일 한반도 최고봉에서의 일출을 과연 만날 수 있을까, 그런 행운이 우리가 안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 기대감으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 1 시에 일어났다. ..

마음의 밭 2022.04.20

그날의 산행일기,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 4

청솔고개 2007. 10. 14. 일. 맑음. 새벽 6시 전에 희운각대피소를 가까스로 출발했다. 아직 능선길이 어두워서 잘 안 보인다. 우리도 헤드랜턴을 켰다. 좀 있으니 동해 속초 앞 먼 바다 수평선에서 희끄무레한 기운이 솟아나고 있었다. 은근히 일출을 기대했었는데 먼 바다의 짙은 구름으로 무산되어버렸다. 아쉽다. 오늘 이 코스는 평균 400~500미터 급 너덧 개 야산의 등산과 하산을 계속하는 것과 같은 난이도다. 숨을 몰아 오르고 내리기를 거듭한다. 대부분 바윗길이어서 쇠말뚝으로 난간을 설치해 놓은 곳이 많다.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너덧 시간 계속하니 비로소 뒤로는 희운각대피소 3.4킬로미터, 앞으로는 마등령 1.7킬로미터라는 이정표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 이정표 너머에는 천하의 울산바위 서쪽 면이 ..

마음의 밭 2022.04.19

그날의 산행일기,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 3

청솔고개 2007. 10. 14. 일. 새벽, 맑음. 그날 밤 희운각 대피소는 피난처 그대로였다. 웅성거리는 소리, 코고는 소리, 수시로 들락거리는 소리로 어제 새벽 2시부터 거의 20여 시간 운전하고 산행한 피곤함은 간 곳 없고 나의 눈망울은 여기 대피소에서 쳐다보는 밤하늘의 별들처럼 초롱초롱해지기만 했다. 잠이 하도 안 와서 화장실에 가는 겸 밖에 한두 번 나와 보았다. 그제야 대피소 주변도 평온을 되찾았다. 곳곳이 텐트가 어지러이 설치돼 있고 출입구 통로니 바닥이니 할 것 없이 난데없는 피난민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 차가운 밤공기를 심호흡해 보았다. 저 아래를 내려다보니 멀리 뿌연 기운이 퍼져 오르고 있었다. 설마 여기서 동해안 오징어잡이 배 집어등 불빛은 아닐 테고 그러면 소공원이나 ..

마음의 밭 2022.04.18

그날의 산행일기,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 2

청솔고개 2012. 10. 13. 토. 저녁, 맑음.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예약 확인을 하고 개인용 모포를 지급받았다. 마치 군대의 보급품을 받는 기분이었다. 숙소는 물론 내무반인 셈이고. 우리는 낮에 속초 시장에서 점심 먹을 때 떡집에서 구입한 찹쌀떡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이런 산행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는 짐의 최소화다. 버너니, 코펠 같은 것은 철제라서 무게가 만만찮은 걸 여러 번 겪었기 때문에 휴대하지 않았다. 식사 후 좀 쉬었다. 대피소의 밤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기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내일 새벽 공룡능선 종주를 앞두고 있어서 휴식과 충전을 위해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서 미리 잠을 청해 보았다. 표고차500미터 코스를 거의 10시간 정도를 걸어야 ..

마음의 밭 2022.04.17

그날의 산행일기,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 1

청솔고개 나의 50대 후반은 20대에 이어서 내 생애 두 번째 커다란 마음의 어려움을 맞이하게 된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기는 내 생애의 절반이상을 살아온 데 비해서는 실제 이루어지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고 그냥 흘려버리는 듯하였다. 나의 시간에 대한 공허감이 커지다보니 극도의 우울 감으로 진행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다 내가 평생 관여하던 업무적 성취에 대한 불만족, 실망도 한 몫 했다. 또한 발달 단계로 보아 남성의 갱년기가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총체적으로 세월이 너무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견딜 수 없었다. 그 돌파구가 바로 산행이었다. 그러한 정신적인 어려움의 극복 방안을 산행에서 찾기 시작했다.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

마음의 밭 2022.04.16

그날의 산행일기, 울주 간월산

청솔고개 2012. 11. 18. 일. 맑음. 아내와 같이 바로 간월산을 향했다. 산내입구 송선 못 건너 단석산의 낙엽송 군락지 단풍은 자못 현란하고 이국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참 좋아한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더 아름답고 곱다. 산내에서 언양 길은 늦가을로 가득 차 있었다. 문복산 단풍도 새로웠다. “언젠가 우리 친구 내외와 같이 오른 적이 있지. 2007년일 거야.”하고 아내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12시 조금 지나 배내 고개에 차를 주차하고 966미터 배내봉을 거쳐 간월산 정상까지의 산길은 늦가을 아름다운 능선 그대로다. 정상에 도착하니 오후 2시 좀 지난다. 이 시간 여기의 햇살은 참 따스했다. 간지러울 정도로 따끈따끈하여 땀이 잘 마를 것 같았다. 아래 간월재에는 억새 군락도 탐스럽다. 졸릴 듯..

마음의 밭 2022.04.15

그날의 산행일기, 창녕 화왕산

청솔고개 2012. 11. 8. 목. 맑음. 아침에 화왕산 억새 보러 간다고 해 놓고 역시 밍기적거리다가 8시가 지나서 일어났다. 제대로 산행하려면 6시엔 일어나야 하는데 많이 늦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모처럼 아내와 좋은 시간을 보내다가 오전 10시 지나서 출발했다. 가뜩이나 마음은 바쁜데 아내가 이것저것 주문하는 바람에 내가 짜증 섞인 말을 뱉었더니만 살짝 언쟁하는 해프닝을 연출한 셈이다. 게다가 잠깐의 판단 착오로 마산, 창원, 창녕 가는 구마고속도로로 진입해야 하는데 안동 가는 중앙 고속도로로 빠져버려서 난감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먼저 말을 건네서 조금은 수습되었다. 늦게 출발하고 또 진입착오로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 비로소 늦가을의 풍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구마 ..

마음의 밭 2022.04.14

그날의 산행일기, 삼척 청옥산 3/ 두 고개 넘어가니 이제 철쭉도 꽃망울 터뜨리고 초봄에나 얼굴 선보이는 자주색 꽃 노란색 꽃들이 앙증맞게 우리를 맞이한다

그날의 산행일기, 삼척 청옥산 3, "정상에 오르니 오후 1시 20분 가까이 되었다. 청옥산 1403.7m, 그래, 이렇게 드디어 올라왔구나! " 청솔고개 2012. 5. 20. 일. 맑음. 오월 하순 이 봄 가는 게 아쉽고 애잔한데 아내는 또 언제부턴가 허리를 구부리고 뭔가를 뜯고 있다. 또 취나물, 나물 몇 종류, 아니 한 두 종류 아는 걸 너무나 대견해 하고 가다 쉬면서 가다가 쉬면서 나물을 뜯는다. 아내의 나물 뜯기 집착은 아낼 가장 여성다운 모습으로 바라보게 해 준다. 냇가에서 사고디 줍는 거하고 나물 뜯는 거는 아내가 정말 집착한다. 너무 좋아한다. 한 고개 넘어가면서 쉬기도 하고 뜯기도 한다. 쉬엄쉬엄 가다보니 쑥, 다래순도 보인다. 처음에는 나도 그냥보고 있다가 결국에는 같이 거들지 않을 ..

마음의 밭 2022.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