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그날의 산행일기, 창녕 화왕산

청솔고개 2022. 4. 14. 01:43

                                                                                                             청솔고개

2012. 11. 8. 목. 맑음.

   아침에 화왕산 억새 보러 간다고 해 놓고 역시 밍기적거리다가 8시가 지나서 일어났다. 제대로 산행하려면 6시엔 일어나야 하는데 많이 늦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모처럼 아내와 좋은 시간을 보내다가 오전 10시 지나서 출발했다. 가뜩이나 마음은 바쁜데 아내가 이것저것 주문하는 바람에 내가 짜증 섞인 말을 뱉었더니만 살짝 언쟁하는 해프닝을 연출한 셈이다. 게다가 잠깐의 판단 착오로 마산, 창원, 창녕 가는 구마고속도로로 진입해야 하는데 안동 가는 중앙 고속도로로 빠져버려서 난감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먼저 말을 건네서 조금은 수습되었다. 늦게 출발하고 또 진입착오로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 비로소 늦가을의 풍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구마 고속도로에서 창녕 나들목으로 가는데 고향 마을보다 남쪽 지역인 이곳은 아직 단풍이 고왔다. 좀 짙은 가을 안개 속에 어린 남녘의 풍광은 아름다웠다. 눈에 꼭꼭 넣었다. 드디어 창녕 읍내,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모처럼의 여정, 설레고 흥분되는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큰소리로 흥분해버렸으니 아쉬웠지만 이제부터라도 잘 꾸려나가야 한다.

   정오 좀 지나서 주차장에 이르렀다. 기록을 확인해 보니 주차하고 출발한 시간은 12:22:10이었다. 올 가을 마지막 단풍이 선연하다. 멀리 화왕산 꼭대기가 우람하게 버티고 있다. 표고 7백여 미터 높이 밖에 되지 않는데도 그 기상은 범상치 않다. 좀 올라가니 또 나의 발과 하체가 저려 온다. 화끈거린다. 그래도 아내와 둘만 있으니 마음이 좀 덜 쓰인다. 1코스의 마지막은 아주 가팔랐다. 그래서 이 고개를 환장 고개라 한다나. 756.6m 표지석이 있는 정상에 오르니 2시 12분이었다. 약 한 시간 50분 정도 걸렸다. 정상엔 억새 평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이미 많이 말라 버렸지만 그래도 그 꽃의 탐스러움과 포근함은 그대로 남아 있다. 간식과 점심을 몇 차례로 나눠서 먹었다. 화왕산성을 걸어보았다. 돌로 된 성의 위용이 지난 역사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이제부터는 내가 찾는 곳마다 내 생애의 마지막 풍광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 는 올 수 없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진다. 그래서 그 아쉬움을 달래본다. 떠남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산하는데 1코스를 택했다. 배바위 가까이 가서 맞은편을 내려다보니 광활하고 아득한 평원이 해거름에 나직이 펼쳐지고 있다. 좀 낯설고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 길이 많이 험했다. 내가 너무 오랜만에 산에 오른다. 올여름 폭염 속에 고추, 참깨 농사 때문에 도저히 체력을 분산할 수 없었다고 하면 그 이유가 될까? 그래서 아내도 무척 힘들어 한다. 샛노란 낙엽송 단풍이 곳곳에 수를 놓고 있다. 낙엽송의 전성기는 봄 한 때의 연초록 연둣빛 신록, 가을 한 때의 이때다. 낙엽으로 얽어지기 전 단풍이 들었을 때다. 아래로 내려오니 거의 날이 많이 저물었다. 오후 5시 23분이다. 벌써 앞이 잘 안 보인다. 귀로에 곳곳에 펼쳐진 조국산하의 멋진 늦가을 풍광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 참 아쉽다. 마음속으로 창녕에서 펼쳐지는 늦가을의 풍광을 헤아려 보는 수밖에 없다.    2022.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