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나의 50대 후반은 20대에 이어서 내 생애 두 번째 커다란 마음의 어려움을 맞이하게 된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기는 내 생애의 절반이상을 살아온 데 비해서는 실제 이루어지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고 그냥 흘려버리는 듯하였다. 나의 시간에 대한 공허감이 커지다보니 극도의 우울 감으로 진행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다 내가 평생 관여하던 업무적 성취에 대한 불만족, 실망도 한 몫 했다. 또한 발달 단계로 보아 남성의 갱년기가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총체적으로 세월이 너무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견딜 수 없었다. 그 돌파구가 바로 산행이었다.
그러한 정신적인 어려움의 극복 방안을 산행에서 찾기 시작했다.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틈만 나면 아내와의 산행 동행에 거의 목을 매다시피 했다. 그것은 단순한 종용이라기보다 강요에 가까웠다. 스스로 산행을 통해서 더욱 강렬한 자극을 갈망했던 것이다. 4시간보다는 6시간을, 8시간보다는 10시간의 산행 시간을 요망하게 되었다. 이러다보니 동행하던 산꾼 친구들이 내게 “종주(縱走)**”라는 닉네임까지 붙여주었다. 일단 능선 따라 길게 산행해야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나는 그 1년 전, 그러니 2006년 여름에 동행 산꾼들에게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를 강하게 제안하였다. 이 코스 종주는 산꾼의 의지만 가지고는 성사되기 어려운 것이다. 종주 코스에는 희운각 대피소에서의 일박(一泊)이 필수인데 이게 희망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닌 것이었다. 대피소의 인원 제한으로 산행 시작 15일 전 아침 10시에 바로 인터넷으로 선착순 신청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해 가을, 15일 전에 우리 산꾼들이 각기 숙소예약을 신청했었는데도 한 건도 체결되지 않았다. 대실망이었다.
다시 1년이 흘렀다. 공룡능선 중주를 다른 산꾼들은 벌써 잊어버리거나 다 포기한 듯하였다. 나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다시 희운각 대피소 1박 예약을 신청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번 실패를 경험삼아서 충분한 사전준비를 해서 그런지, 아니면 운이 좋아서 그런지 예약에 성공했다. 그것도 아내와 두 자리, 10.13(토)~14(일), 설악산 단풍의 최절정기였다. 뛸 듯이 기뻤다. 대피소 관리인에게 전화를 하니 10.13. 17:00까지는 도착 완료해야 입실이 가능하며 그 이후 늦게 도착하면 현장에서 신청한 다른 산꾼들에게 자리가 넘어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 정도야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드디어 종주 디데이가 닥쳐왔다.
2012. 10. 13. 토. 낮, 맑음.
새벽 2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오후 5시까지는 희운각 대피소까지 도착하기 위해서 서둘렀다. 7번 국도를 타고 일로일로 북으로 내달렸다. 아침식사는 차 안에서 빵으로 해결했다. 동해를 지나가는데 해가 떴다. 속초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바삐 서둘러 외설악 국립공원 입구에 근처에 주차하고 소공원, 신흥사, 비선대 지나 금강굴을 오른쪽으로 쳐다보며 양폭 대피소까지 초읽기 몰린 것처럼 답파했다. 이 대피소에는 벌써 많은 산꾼들이 붐비고 있었다.
가을의 천불동은 바위와 물에 칠색의 단풍 옷을 입혀 놓은 기품 있는 귀공자의 이미지였다. 우리는 그 속살을 헤집고 맘껏 그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여기서 한숨 돌리고 쉬었다가 오늘의 목적지인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하니 오후 4시 30분쯤 됐다. 가까스로 오늘 저녁 숙박 자격의 탈락의 위기는 벗어날 수 있었다. 천불동 계곡은 이 가을에만 두 번째 탐방이다. 언젠가 한 번 가을에 왔을 때는 그해 여름의 태풍으로 철 사다리나 난간이 다 유실돼서 아주 흉한 몰골이었게 생각이 난다. 천불동의 겨울과 봄의 얼굴을 꼭 한번 보고 싶었다. 2022.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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