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행로(行路) 35

남겨졌으면 하는 것들 1

청솔고개   이즈음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나의 존재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그러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득해지기도 한다. 그건 상상조차도 안 된다.   나의 사후, 내 삶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기록과 생전에 사용했던 물품일 것이다. 어떤 시인은 그의 시에서 “두고 갈 게 없구나……”하고 비탄해 했는데, 나는 솔직히 아직은 내게 소중했던 것은 대대손손 고스란히 남겨졌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다. 내 존재가 나를 알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잊힘과 묻힘’이 되는 것은 그대로 인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이것은 ‘두고 갈 게’ 많고 적음의 문제는 아니다.   작년 8월에 향년 아흔셋으로 가신 아버지가 남긴 많은 자료와 물품을 떠올려 본다. 갖가지 자격증, 근정훈장을 비롯한 상..

우중 산행, 단상 5

청솔고개 마음이 어지러우면 나도 모르게 산행이다. 가는 길 양옆에는 오래된 절터에 풀이 자부룩하다. 그 풀밭의 풍요로움을 생각하니 문득 어린 시절 소먹이 시절이 떠오른다. 우리 집 우공(牛公) ‘아리랑스리랑’과 그 어린 것을 여기에 풀어 놓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싶다. 아침 8시도 안 돼 내리는 햇살의 두께를 보니 이미 초가을에 접어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멀리 숲의 머리에는 엷은 안개가 서리고 있다. 황화코스모스가 막 피어나기 시작한 남천 물줄기 여울목 위로도 가을 안개가 피어나고 있다. 마치 늦봄 먼 들녘에서 보릿단 태우는 연기처럼 보인다. 그 보릿단 태우는 냄새는 마침내 한여름 대지가 앓고 있는 열병(熱病)의 종언을 시사한다. 또한 내 어린 날 홍역에서 해열(解熱)될 때, 내 이마에서 느끼는 서..

우중 산행, 단상 4

우중 산행, 단상 4 청솔고개 10시 좀 지나니 세차게 내리던 비가 약한 이슬비로 바뀌었다. 나는 황급히 산행 준비해서 옥룡암 입구로 향했다. 들머리에는 ‘기상악화로 출입금지’라는 경고문구와 더불어 차단해 놓았다. 오늘은 옆으로 돌아서 올라가보기로 했다. 옥포저수지 옆길로 해서 올라갔다. 여기도 두 군데 출입금지라 안내해 놓았지만 오늘은 좀 지나가기로 했다. 첫 번째 여울을 만났다. 계곡 물 건너려고 해보니 물살이 제법 세다. 떠내려 갈 걱정은 조금도 없겠지만 무리하게 건너다가는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등산화가 많이 젖을 것 같기도 하다. 혹은 다칠 수도 있다 싶어서 건너기가 좀 꺼려진다. 다시 능선 오솔길로 되돌아가서 두 번째 물 건너는 데 이르렀다. 거기도 마찬가지다. 다시 능선 길로 해서 되돌아왔다. ..

우중 산행, 단상 3

청솔고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행은 우중산행이다. 문득 ‘비가 와도 떠납니다.’하는 지난 날 답사 모임의 캐치프레이즈가 생각난다. 천년의 바람 소리 대신 빗소리가 스며드는 대숲을 출발한다. 바다, 못, 강, 계곡의 깊은 물에 몸을 담가 본 적이 족히 20년은 더 된 듯하다. 아내의 햇빛 알레르기가 심해져서 신혼 초 캠핑이나 해수욕 두어 번 갔었고 나중에 아이들 꼬맹일 때 물놀이 가끔 가 본 기억밖에 없다. 오늘 이 비 맞고 떠나면 그 길은 바로 나의 물놀이 터이다. 바로 천연 물맞이다. 자연에 가장 잘 몰입할 수 있는 내 나름대로의 방식이다. 이 오솔길을 걸으면서 자연스레 빛을 차단하고 수중 코스로 잠수하는 것이다. 그건 마치 계곡이나 바다 속을 유영하는 기분이 든다. 누가 나의 이 짓을 보면 참 엉뚱하..

우중 산행, 단상 2

청솔고개 지금 우중(雨中)인데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사람들을 몇 만났다.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인가. 심경인가. 들머리에서 이미 산행 마치고 내려오는 노부부, 쉼터에 머물 때 힘차게 능선 오솔길로 치달아 오르는 노란조끼 중년 남자 둘, 40대 커플도 내려온다. 오늘은 큰맘 내서 일천바위 바로 아래 제1군 바위까지 가 보았다. 동녘의 들을 참 오랜만에 내려다본다. 벼가 자라고 있는 논에도 멀리서 비가 묻어오고 있다. 바위 옆으로 50대 남자가 가벼운 차림으로 열심히 오르고 있다. 비가 많이 올 것 같은데 이 50대는 도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궁금하다. 다시 제1 쉼터다. 바람에 휩쓸리는 빗줄기가 마치 안개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아니, 그것은 만물의 정령(精靈)이다. 그 기운이 하늘로 뻗치는 것 같다..

우중 산행, 단상 1

청솔고개 오솔길을 올라간다. 태풍전야의 바람에 풋밤송이가 벌써 많이 떨어져 있다. 구르고 있다. 어언 가을 소식인가. 능선을 따라 오르막에 올라도 별로 덥지 않다. 서늘하고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벌써 헤세가 사랑한 가을인가. 첫 쉼터에 이르렀다. 계곡 너머 비탈에는 송림이 짙어져서 오히려 검은색이다. 자산(玆山)이다. 문득 나는 이 한 시간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우 앤 히어, 이 순간, 이 곳이 행복하면 행복한 거다. 마음 평화다. 이 순간이 이어져서 평생을 이룬다. 나의 행복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여기 쉼터, 지금 흩뿌리는 빗소리가 정겹다. 귀한 시간, 소중한 장소다. 두 번째 쉼터에 앉는다. 문득 나의 저림도, 떨림도, 뒤뚱거림도, 더덩덩거림도 모두 내것, 끌어안고 나와 함께 가..

마음의 평정, 행복 /몸의 불편함 때문에 현실을 자각하게 되고 현실에 몰입하게 됨으로써 도리어 생생한 생존의 욕구를 자각하게 된다.

마음의 평정, 행복                                청솔고개   어제 저녁부터 목이 살짝 불편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요 며칠 동안 두 차례 당일 장거리 운행과 한 차례 모임에 때문인 것 같다. 나는 48년 전 초임 발령 받은 그해 여름방학 때에 한 선배교사 대신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맡아서 강의한 적이 있었다. 당시 초짜교사로 있는 열정, 없는 실력 다해서 강의한다고 3주 동안 목을 혹사한 대가는 바로 급성 편도선염 발병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목을 쓰는 일로 평생의 업을 삼을 텐데, 심한 염증으로 인한 통증과 발열로 병원 치료를 하면서도 나의 그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화도 나고 크게 낙담하기도 하였다.    내가 교직에서 맞이하는 첫 여름 방학인데 친구들 만나서 술도 ..

기다리며 견디며 10

청솔고개 이제 가엾고 지친 내 영혼을 위무해가야 한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지치도록 하고 있는가. 나의 시 구절, “가슴 속에 저벅이는 소금기 같은” 내 영혼, 늦가을의 휑한 바람이 내 소금기 저벅이는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나는 그래서 가장 편안한 잠자리와 같은 죽음도 생각해 본다.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허나 나는 할 일이 많이 있다. 모든 거와 결별하기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몇 차례 교정을 거닐어 본다. 그러면 솟구치는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 내려가는 것 같다. 치밀어 오르는 이 불쾌한 기분, 머릿속에 언젠가 맑은 하늘처럼 사라질 것인가. 그런데 내 56세 생애 중 머리가 저 파아란 늦가을 창공처럼 말끔했던 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함께 가는 것이다. 몸의 상처도 마음의 상처도 함께 가는..

기다리며 견디며 9

청솔고개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본다. 그러나 정신이 너무 초롱같다. 아침에 강가에선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거니 지금은 눈을 감고 잠을 청하기 힘들다. 상념이 많다……. 여행을 시작하며 비행기에 오르던 때가 떠오른다. 강하게, 용감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체험도 온몸으로 부딪쳐보리라. 자신감 있게 도전해 보리라. 그리고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 가리라. 무주에서 스키 난코스 도전.[2007. 11. 19.월] 1. 나는 위대한 영혼의 작가가 되어야 한다. 남은 최후의 사명은 가난한 영혼의 구원자가 되는 것 2. 소소한 일에 얽매지 말자, 내 꼴이 우습다. 얼마나 졸장부인가. 떨쳐 일어나자. 큰일, 위대한 일을 위해 [2007. 11. 20.화 오후] 나날이 엄습하는 이 미몽. 억제하려고 해도 더욱 순간순간..

기다리며 견디며 8

청솔고개 나는 계속 이렇게 독백해 본다. 이 때 비로소 나는 나의 성격이 주는 비극성에 직면했고 결국 중3시기는 집중력 결핍으로 그냥 허송하는 듯이 보내버렸었지. 나는 서서히 신흥종교에 빠져 들기 시작했고 고2때 본격적 활동을 하게 되었지. 그 때도 내 마음은 그냥 집중적으로 그 분위기에 빠져 위로 받았지. 학교 수업 시간에도 숱한 망념과 망상, 편집적인 강박감에 습관적으로 빠져 들었지. 그래도 고2 학생회 전도부장을 맡으면서 점차 집중할 수 있는 데를 찾게 되었고 서서히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대학에 합격한 후 나는 많은 정신적인 안정을 찾았지. 특히 야학의 봉사활동은 나에게 많은 새로운 집념, 집중의 타깃 구실을 해 주었지. 육체적인 질병과 고통이 오히려 내겐 정신적인 약이 되었지. 대학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