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이즈음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나의 존재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그러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득해지기도 한다. 그건 상상조차도 안 된다.
나의 사후, 내 삶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기록과 생전에 사용했던 물품일 것이다. 어떤 시인은 그의 시에서 “두고 갈 게 없구나……”하고 비탄해 했는데, 나는 솔직히 아직은 내게 소중했던 것은 대대손손 고스란히 남겨졌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다. 내 존재가 나를 알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잊힘과 묻힘’이 되는 것은 그대로 인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이것은 ‘두고 갈 게’ 많고 적음의 문제는 아니다.
작년 8월에 향년 아흔셋으로 가신 아버지가 남긴 많은 자료와 물품을 떠올려 본다. 갖가지 자격증, 근정훈장을 비롯한 상장과 상패, 곳곳이 차곡차곡 정리해 둔 평생의 우편물, 일기를 비롯한 개인의 기록물, 사진, 필름, 교직관련 각종 자료 등 참 많다. 실로 한 생애의 흔적이 이렇구나 하고 실감이 난다. 그 끼침과 남김이 엄청나다.
아버지는 생전에 이 많은 자료들을 당신의 사후에 어떻게 처분해 달라고 한 번도 구체적으로 부탁하지 않으셨다. 지금에야 나도 생전에 그걸 여쭤보았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아버지의 의향대로만 처리하면 아무 거리낄 것이 없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이 내게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그 모든 것을 볼 때마다 아버지의 외로움과 답답해하심이 그대로 내게 전해지는 것 같다. 내게 아버지에 대한 미칠듯한 간절함과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솔직히 어머니에 대한 이런 기분은 거의 없다. 어머니 가시고 난 뒤 7년 동안 가족 중 누구보다도 내가 아버지와 밀접하게 생활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 같다. 서로 공유한 기간만큼, 그 관계의 밀접도 만큼 강렬함이 남아지는 것 같다. 2023.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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