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행로(行路)

우중 산행, 단상 2

청솔고개 2023. 9. 2. 21:07

                                                                  청솔고개

   지금 우중(雨中)인데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사람들을 몇 만났다.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인가. 심경인가. 들머리에서 이미 산행 마치고 내려오는 노부부, 쉼터에 머물 때 힘차게 능선 오솔길로 치달아 오르는 노란조끼 중년 남자 둘, 40대 커플도 내려온다.

   오늘은 큰맘 내서 일천바위 바로 아래 제1군 바위까지 가 보았다. 동녘의 들을 참 오랜만에 내려다본다. 벼가 자라고 있는 논에도 멀리서 비가 묻어오고 있다. 바위 옆으로 50대 남자가 가벼운 차림으로 열심히 오르고 있다. 비가 많이 올 것 같은데 이 50대는 도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궁금하다.

   다시 제1 쉼터다. 바람에 휩쓸리는 빗줄기가 마치 안개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아니, 그것은 만물의 정령(精靈)이다. 그 기운이 하늘로 뻗치는 것 같다. 휘휘 춤을 추며 천상(天上)으로 오르는 것 같다.

   비오는 날 산행이 나는 참 좋다. 나의 10대, 그 어려운 시절부터 나는 비가 오면 내 안의 우울감이 다 가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얼굴을 스치는 빗줄기의 시원함이 더욱 좋다. 이 빗줄기가 내 가슴을 훑어 내리는 것 같다. 쌓인 감정의 찌꺼기, 나의 삼불화두(三不話頭)인 불편, 불안, 불행을 다 씻어 내리는 것 같다.

   집에 오는 걸음으로 남천 변 옆에 차를 대고 옮겨 놓을 야생초가 있는가, 살펴보았다. 다육이는 자신 없고 이제는 야생초 집안에 들여놓기다. 더욱 비가 세차게 내린다. 달맞이꽃이 한껏 자랐다. 내 키보다 더 크다. 대궁이가 한껏 굵어져 터져있다. 지금은 뿌리는 도저히 캘 수 없어서 꽃가지만 꺾어 보았다. 꽃병에 담아서 초가을을 전하고 싶다.

   집으로 오려다가 다시 큰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베란다의 노는 화분에 뭔가를 심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큰집 사철나무는 꺾꽂이 하려고 잘라냈다. 전에 아내와 같이 산에 나물 뜯으러 갔다가 캐다가 온 취나물은 반쯤 남겨두고 나머지는 뿌리를 뽑아 담았다. 잎이 아주 좁다란 정원수는 뿌리의 한 부분을 캤다. 아버지께서 심으셨는데 나무 이름이 뭔지도 모르겠다. 비는 놋날 같이 따르는데 굵은 쇠수레에 몽땅 담아서 차로 옮겼다. 어쩌다보니 일이 많이 커져버렸다. 집에 와서 오후 내내 화분을 꾸며서 심었다. 뒤처리에 시간이 바쁘다. 마음도 급하다. 그래서 허리는 뻐근하고 옆구리도 불편했지만 그 몰입의 행복함은 만끽했다. 많은 걸 떠올리고 생각해 본 하루였다.      2023.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