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행로(行路)

마음의 평정, 행복 /몸의 불편함 때문에 현실을 자각하게 되고 현실에 몰입하게 됨으로써 도리어 생생한 생존의 욕구를 자각하게 된다.

청솔고개 2023. 3. 19. 22:53

마음의 평정, 행복

                                청솔고개

   어제 저녁부터 목이 살짝 불편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요 며칠 동안 두 차례 당일 장거리 운행과 한 차례 모임에 때문인 것 같다. 나는 48년 전 초임 발령 받은 그해 여름방학 때에 한 선배교사 대신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맡아서 강의한 적이 있었다. 당시 초짜교사로 있는 열정, 없는 실력 다해서 강의한다고 3주 동안 목을 혹사한 대가는 바로 급성 편도선염 발병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목을 쓰는 일로 평생의 업을 삼을 텐데, 심한 염증으로 인한 통증과 발열로 병원 치료를 하면서도 나의 그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화도 나고 크게 낙담하기도 하였다.

   내가 교직에서 맞이하는 첫 여름 방학인데 친구들 만나서 술도 한 잔 마음 놓고 마시지 못한 걸 생각하면서 나의 미련함에 스스로 치를 떨 뿐이었다. 이제는 그것이 만성으로 진행돼 평생 동안 고생하고 있다. 나는 장거리 운행이나, 각종 시험 출제에 내 몰리거나 3월초 정기 인사이동 철이 되면 자주 목이 탈이 나곤했다. 그러면 내가 몸을 과용하는구나, 근신해야 하겠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나의 몸 사용 설명서에는 편도선염 발호의 정도가 내 몸 과용(過用)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다.

   목이 욱신거리고 침조차 잘 넘기지 못할 지경이 되면 비로소 이전의 평범한 일상의 유지가 크나큰 행복임을 재확인하게 된다. 일상의 행복은 곧 평정심 유지 그 자체다. 그런데 나는 가끔 그것을 망각한다. 그러면 스스로의 불민함을 끊임없이 자책한다.

   몸의 평정이 곧 행복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또한 역설적으로 몸의 불편함 때문에 현실을 자각하게 되고 현실에 몰입하게 됨으로써 도리어 생생한 생존의 욕구를 자각하게 된다. 현실을 객관화하고 편견 없이 바라다 볼 수 있게 되는 게 바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2023.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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