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빈집에서 5, “더 이상 역류(逆流)하지 못하는 세월이라 쓸쓸하고 외롭기만 하다. 적막강산(寂寞江山)이다. ” 청솔고개 나는 암만 생각해도 아버지의 아흔 셋 한 생애의 자취와 기록이 당신의 부재로 인해 한꺼번에 세월의 뒤안길에 파묻히거나 태워져 흙이나 재로 영멸(永滅)된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일 수가 없다. 우리의 최근현대사는 이렇듯 이름 없이 왔다가 이름 없이 떠난 수많은 민초들이 이룩한 피와 한의 퇴적물이다. 그들의 육신이 지수화풍으로 회귀했다고 그 정신 자료마저 영멸의 취급을 받아야 한다면 너무나 허탈하다. 이제 이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진다. 비가 온다. 더욱 세차게 온다. 화단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놓아진 장독 뚜껑 위에 빗물이 고였다가 옆으로 퍼져서 바로 떨어지는 모습을 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