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큰집을 찾았다. 치우다가 보니 자그마한 나무궤짝이 나뒹굴어져 있어서 뭔가 들쳐봤더니 어머니가 생전에 쓰시던 재봉틀[미싱]이다. 이를 보는 순간 세월이 갑자기 4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어머니가 다소곳이 앉으셔서 우리 오남매의 내복을 박음질을 하시던 그 모습이 바로 옆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다시 가슴이 미어져오고 눈시울이 촉촉해지며 콧잔등이 찡해온다. 아, 어머니, 그 옆에서 다시 불러도 대답조차 없으신 내 어머니! “이제 당신 계신 곳을 나도 불원간 찾아가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하고 속으로 되뇌어 본다.
엊그제 옥상에 올라가서 차곳독을 들춰보았더니 대소쿠리, 바디, 작은 산대기, 망태기 등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차곡차곡 채워져 있었다. 만지면 풀풀 날리는 세월의 먼지가 오히려 정겹다.
47년 고향집이 철거되고 그 터는 마을 회관으로 부지로 남겨진 후 고향을 그리워하시던 아버지께서 이후 이따금, “그 때 우기더라도 외말 그 집을 남겨뒀어야 하는 건데…….” 하시며 끝을 흐리던 그 심경이 이제야 알 것만 같다. 이것이 이렇게 소중히 간직돼 있는 것으로 아버지의 고향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충분히 헤아릴 것 같다.
5년 전인가 여름철에 아버지께서 갑자기 나한테 물감을 사달라고 하시더니 그 물감으로 타일이 안 붙여져 있는 시멘트 담벼락에 고향 마을 정경을 벽화삼아 그리시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나는 그때 아버지 보고 “날씨가 엄청나게 덥고 근력도 매우 쇠하신데 제발 이런 일에 너무 빠지시다가 쓰러지십니다.”고 만류하곤 했던 게 생각난다. 얼마나 어린 시절과 그 때의 고향 마을이 그리워지셨으면 혼신의 힘을 다해 필생의 역작인 듯 그 벽화 완성에 몰두하셨던가 하는 게 이제야 새삼 알겠다. 이제 나도 그러한 경지로 곧 진입할 듯도 하다.
평생 그리움과 보고픔에 몸부림치시다가 가신 아버지가 오늘따라 너무 보고 싶다.
오늘 어린 제비 새끼들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진 것 같다. 폰으로 그 모습을 자세히 담아 보았다. 새끼가 네 마리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모두 다섯 마리다. 주변의 무슨 기척이라도 나면 어미가 먹이를 물고 오는 줄 알고 노란 주둥이를 일제히 벌리고 호소하는 그 목소리가 애처럽기까지 하다.
오늘은 일찍이 너무 많이 떨어지는 뜰의 나무 잔잎에 지저분해진 마당도 쓸었다. 오늘도 어쩌다 보니 2시 다 돼서 집에 왔다. 아침부터 생각해 놓았던 결국 낚시 가는 일은 접었다. 2023.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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