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큰집에 갔다. 이제 동생도 이사해서 정말 빈집이다. 침묵과 먼지의 냄새가 조용히 풍겨온다.
이제 이 집 주인은 벌써 수년째 찾아오는 어미 제비 한 쌍이다. 벌써 새끼들이 노란 주둥이를 벌리고 먹이 달라고 떼쓴다. 다섯 마리다. 그 지지배배 소리만 빈집을 울린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의 생애가 어리고 우리 오 남매가 자란 곳이다. 그래서 그때 끊임없이 복작거리던 시절이 떠오른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사시다가 여기서 가셨다. 어머니, 아버지는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치셨다. 입원하고 계시면서 참 많이 오고 싶어 하셨던 큰집이다. 그리 그리워하시던 집에 한 번 와 보시지도 못한 채. 이제 마지막을 지키고 있던 첫째 동생마저 둥지를 마련해서 떠나갔으니 그야말로 빈집이다. 동생들과 같이 부대끼면서 보낸 나날들이 전설처럼 남아 있다.
그렇다. 삶이란 이처럼 매순간 순간 어느 먼 곳, 또는 영원한 곳으로 떠나기 위한 준비다. 그러기 위해서 버리고 비우기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헤어지는 연습도 많이 해야 한다는 걸 이 나이에야 알았다. 나는 그러지 못했었다. 그래서 더 힘이 드는 것 같다. 버림과 비움, 나눔과 베풂을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이를 실천하려니 참 어렵다.
아버지의 육군하사 명예제대증서가 먼지를 뒤집어 쓴 바인더 북에 꽂혀져 있다. 그 다음 장에는 1951년 국민 학교 교사 초임 발령장이 들어 있다. 1951년도 부산 국군 야전병원 천막 막사 앞에서 찍은, 왼쪽 팔목을 처매서 어깨로 건 사진도 있다. 명함 크기의 반 장 사진이다. 우리들을 하나씩 안고 찍은 사진이 빛 바래있다.
어찌할 거나. 이런 모두의 모든 사연과 역사와 추억을 어떻게 감당할 거나. 이제는! 2023.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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