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행로(行路) 35

기다리며 견디며 7

청솔고개 그래도 나는 이 상처를 다스려야 한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베풀 일은 아직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그들에게 희망과 꿈을 조금이라도 안겨 주어야 한다. 인식과 성격의 대 전환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처럼 몇 가지 명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첫째, 내 영혼의 상처를 보다 객관화․ 투명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나의 정신 방랑 편력의 역사를 재조명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의 심리 기록으로서 보존할 필요가 있다. 상처를 무조건 외면하고 무시하면 상처는 더 도지는 법, 그러니 상처를 감싸 안고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상처도 결국은 내 육신과 영혼의 어느 부분에서 발생한 것이니 외면하면 치유도 되지 않을뿐더러 결국 더욱 크게 번지는 게 아닌가? 과거 ..

기다리며 견디며 6

청솔고개 근 일주일 만에 또 필을 잡아 본다. 왠지 눈물이 날것만 같다. 아내가 아침 식사 때 내 불안한 심적 증상을 보고 가을남자(秋男), 가을 타는 남자라고 했다. 이제 나의 정신의 편력(編曆)을 일단 가지런히 정리해야 할 때다 된 것 같다. 오늘 아침도 안개가 자욱하다. 이 순간, 순간이 내 생애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정리하여 나가자. 잠 안 오고 불안한 밤이 될수록 정리해 나가자. 선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심적 나약함을 웃어도 좋다. 뛰고 걷고 명상하고 쓰고 그러면서 나의 여생을 정리하자. 이는 내 삶의 호기(好機), 전기가 될 것이다. 그 계기는 엉뚱한 데서 촉발되었다고 하자. 오랜만에 야간자습 지도했다. 뭔가 하다 보니 시간은 어떻게든지 흐르게 마련이다.[2007. 11. 9. 금] 내 정신..

기다리며 견디며 5

청솔고개 윤동주의 '서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시 구절이 자꾸만 생각난다. 동주는 조국의 광복이라는 대의(大義)를 가슴 속에 품고 있었는데 펼칠 수 없는 시대상으로 인해 받은 고통일 터. 그런데 나는 이 무슨 대의(大義)? 그래 내 심경도 내 심사의 맑음도 이와 같을진대, 오오 너무 작은 것에 의해 짓밟히고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내 여리고 가엾고 순백한 영혼이여! 그 상처의 깊음이여! 이제 33년 동안 이어졌던 내 일상의 일도 조금 그 성격과 처지와 입장을 바꾸어야 하리라. 교단(校壇)을 떠나 농단(農壇), 혹은 문단(文壇)으로……. 이맘 때 쯤, 나의 거취도 한번 생각해보고, 뒤돌아보기도 하고. 그래서 그동안 상처도 어루만져주고 스스로의 심신을 좀 달래주어야 한다. 다정하게 동..

기다리며 견디며 4

청솔고개 어제 저녁 무렵부터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추더니 아침에 다시 내린다. 또다시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진 내 심사로 대단히 민감해진다. 비가 오면 좀 누그러지기도 하련만 그대로다. 그 동안 학교의 갖가지 일 때문에 긴장된 마음이 풀어지면서 공백 상태에 또다시 엄습해오는 망념(妄念). 이제는 친해질 만도 한데. 그래. 너도 내 심신의 일부이니 나하고 다정하게 지내자. 그러니 하나의 화두(話頭)로 작용해다오. 허허! 보았지 않았느냐? 그 동안 주위에서 허망하게 떠나가서 덧없이 부서져 가루되는 온갖 육신들을. 때가 되면 나를 즐겁게 했거나 또는 괴롭히던 많은 것들이 나와 같이 스러지려니. 비는 오는데, 가을비는 마음은 더욱 스산하다. 친구들을 다정하게 대하자. 비록 공적인 거라지만 당당하자. 난 내 식대로 살..

기다리며 견디며 3

청솔고개 ㅇㅈ야 내 딸아 보고 싶다. 너의 가냘픈 모습, 내 눈에 밟혀, 이 풍진 세상에 내 던져진 네 모습 너무 애련해 어이 할 거나. 기숙사 입구에 우두커니 서서 배웅하는 너의 모습. 어둠 속에서 더욱 환해지는 너의 모습. "공부도 안 되는데 잠시라도 더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었는데……. 이까지 오시게 해 놓고. 같이 있었더라면 벌써 가셨다니 너무 아쉽습니다." 딸내미 ㅇㅈ를 두고, 꽃 두고 ㅇㅈ 두고 참한 너의 모습 두고 가려니 너무나 아쉬워, 천릿길 뭐한다고 이리 한 달음으로 달려왔던가. 참꽃은 아직 이울지 않고 아침해도 막 떠오를 때 ㅇㅈ야, 너와 같이 참꽃 핀 이 산길, 꽃길 같이 거닐었더라면. 네 청청한 모습 너와의 가벼운 안음 네 작은 몸집 어이할 거나, 어이 할 거나 이 풍진(風塵)..

기다리며 견디며 2

청솔고개 이번에 첫째가 방학을 맞이해서 서울에서 친정 나들이 왔다. 아이들은 외가 다니러 온 것이다. 외손자, 외손녀가 그새 많이 컸다. 내가 어릴 때 외갓집에 대한 기억이라곤 엄마 손 잡고 십 여리 되는 자갈길을 나비 쫓으며 벌 피하며 아장아장 갔었던 게 모두이다. 또 하나, 외갓집 죽담에 세워놓은 벌통의 토종벌에 몇 번 쏘여서 정신이 혼미했었던 것, 외갓집 앞 시냇가에서 키우던 내 키 만한 거위에 쫓겨서 혼비백산한 것 외는 별로 없었다. 대체로 무서웠던 기억이다. 엄마는 오남매 중 셋째로 고명딸이셨다. 그래서 연로하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의 기억이 별로 없었다. 두 분의 사랑과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 녀석들이 오면 좋은 추억 쌓으려고 나름대로 애를 많이 쓴다. 이번에 친정 온 첫째 딸을 보니..

기다리며 견디며 1

청솔고개 평생을 두고 마치 사계절의 기온처럼, 혹은 하루 기온의 일교차처럼 널뛰듯하면서 내 마음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이야기다. 내가 고3시절에는 졸업을 하면서 일단 대학입시에 도전해 보자. 가부간 뭔가 결정될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리기로 하자. 견디자. 이후, 나의 군 입대와 제대, 혼인, 첫아이의 출생, 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이어서 중고 입학과 졸업, 취업 등 나를 포함한 모두들의 생애 역사가 끊임없이 써지게 된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첫째가 대학 4학년 때 가을로 회상된다. 그 때 내 심경은 첫째의 졸업과 취업까지만 기다리고 견디자고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다짐하고 스스로 단속했었다. 첫째는 졸업식 때는 상을 탈 정도로 무사히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고 이어서 임용고시에도 합격하..

오십 년 전 바로 그날의 기록 ‘제야(除夜)’/ 5분이 남았군요. 1972년의 5분…….

청솔고개 기나긴 여정의 마지막 기록이군요. 맨 끝의 페이지군요. 닛시, 단 몇 분밖에 남지 않은 올해. 나의 추억과 꿈속에서 흐른 한 세월의 장은 영원히 다시 내 마음 속에 되살아나지 않으려나 봅니다. 시간의 흐름을 이토록 실감나게 하는 때는 나의 생애 중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5분이 남았군요. 1972년의 5분……. 닛시, 그러나 내가 흐르는 시간, 흘러가도록 내버려지는 이 시간을 이렇게 안타까이 아쉬워하고 붙잡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고적함, 고독, 쓸쓸함, 외로움으로 점철된 1년이었지만 후회는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이마와 얼굴에 땀이 흐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닛시,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을 것 같군요. 새로운 태양은 서서히 흐르는 시간을 가로막고 떠오르려 하는군요. 영원히 꿈속..

어떤 삶, 야생(野生)을 꿈꾸며 3

청솔고개 최근에는 50대 이상의 남성들에게는 특히 자연인, 자유인에 대한 열망이 하나의 신드롬을 형성할 정도라고 한다. 그 만큼 우리들의 생활은 도시 과밀화, 무한경쟁, 생존에 내몰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초과밀화된 수도권에서의 숱한 사건 사고가 그 반증이다. 물질적 풍요는 유지될지언정 이에 대한 지나친 욕망의 반작용은 너무나 심각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최근에 우리가 선진국에 들었다고는 하지만 지구촌에서 우리의 행복지수는 한참 아래를 가리키는 것이다. 거의 3년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팬데믹 상황 때문에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이런 키워드를 가진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자연, 야생, 정글, 탐험, 오지, 자유, 극한, 도보 여행, 트레킹, ..

어떤 삶, 야생(野生)을 꿈꾸며 2

청솔고개 그런데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축구경기 관전에 대한 나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골인에만 몰두하던, 골라 먹는 듯한 관전 포인트에서 드리블(dribble), 헤딩, 파이팅, 포효, 몸싸움, 세러머니(ceremony) 등 90분 혹은 120분 동안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축구 경기에서의 어떤 무엇이 나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가, 빠져들고 열광하게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선수들의 야생성(野生性)이라는 점을 발견하였다. 그들의 몸놀림은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나 치타와 같았다. 그들은 손을 쓸 수 없는 대신 강한 턱, 날카로운 이빨, 빠른 네 다리를 가졌다. 축구선수들은 두 손 두 팔이 다 묶인 대신 두 발과 머리 몸통을 써서 마치 아프리카 맹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