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기나긴 여정의 마지막 기록이군요. 맨 끝의 페이지군요. 닛시, 단 몇 분밖에 남지 않은 올해. 나의 추억과 꿈속에서 흐른 한 세월의 장은 영원히 다시 내 마음 속에 되살아나지 않으려나 봅니다. 시간의 흐름을 이토록 실감나게 하는 때는 나의 생애 중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5분이 남았군요. 1972년의 5분……. 닛시, 그러나 내가 흐르는 시간, 흘러가도록 내버려지는 이 시간을 이렇게 안타까이 아쉬워하고 붙잡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고적함, 고독, 쓸쓸함, 외로움으로 점철된 1년이었지만 후회는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이마와 얼굴에 땀이 흐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닛시,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을 것 같군요. 새로운 태양은 서서히 흐르는 시간을 가로막고 떠오르려 하는군요. 영원히 꿈속에 남으리. 72년, 꿈결의 72년이여, 안녕! 닛시, 후회하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안녕을 바라면서 내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십시오.
지금 나는 1972년과 1973년의 교차점을 맞고 있습니다. “띵”하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종소리와 함께 순간을 딛고 한해는 뒤로하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지난 1년은 수난이 많았던 한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틀에 박힌 반성은 하지 않겠습니다. 반성, 그것은 너무나 딱딱한 얘기입니다. 한마디로 후회 없는 1년이었습니다. 비록 그것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나 무질서하고 무의미한 1년이라 하더라도 내게는 꽉 찬 한해였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인생의 여러 단면을 몸소 겪어 보았습니다.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절망하여 보기도 하면서, 만 20년 동안의 열정을 쌓아 올렸던 것입니다. 지금 제야(除夜)의 종소리는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시간의 단락(短絡)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드릴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일부러 만들어서 제공한 것입니다. 저절로 있어도 서서히 다가오는 것……. 그러니 떠들지는 맙시다. 시간이 저절로 다가오는 것에 놀라지 않도록…….
내게 올해는 좀 더 꿈이 많은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닛시! 이 가련한 삶에게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1972. 12. 31(일)의 내 생애 기움] 2022.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