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나는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4주를 보냈다. 사단 정예 병력의 일원으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한 단계다. 때마침 김장철이라서 전반 2주는 김장 사역으로 보냈다. 군내에서 월동을 위해 김장을 그렇게 많이 하는 게 신기하였다.
후반 2주는 병 기본 훈련과 사격 능력 측정 위주로 보냈다. 훈련은 사단의 명성만큼 철저했다. 선착순 구보는 일상이었으며 사격 수준 미달로 인한 기합에 헉헉대는 등 고강도 훈련을 받다 보니 4주가 지났다. 기억에 남는 것은 BOQ 공사에 하수도 터파기 사역병으로 몇 차례 차출된 일이었다. 처음으로 삽과 곡괭이를 들고 노가다 노릇을 해보았다. 모든 이벤트가 육군 이등병으로서 겪는 비애라기보다 매 순간 새로운 체험으로 다가온다. 생애 언제 다시 이런 일을 해볼까, 하면서 받아들이기를 애썼다.
신병교육대에서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은 다른 데 있었다. 사단 배출대란 이름은 이에 따른 역할을 말해준다. 사단에서 전역을 명 받은 모든 제대병이 1박2일 사회복귀 및 보안교육을 받고 사회로 무사히 나가게 해주는 역할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예비군복을 입고 보란 듯이 팔자걸음으로 어슬렁거리는 전역병들을 마주치게 된다. 고참 병장들과 신출 이등병의 공존. 이등병 교육생들은 맞닥뜨리기에 참담한 상황이다. 제대병들은 “지금 내가 당신네들이라면 단박에 저 소양강에 빠져 죽어버리고 싶어질 것….”이라고 이등병을 향해서 말하고 있는 듯하였다. 예비군 모자를 뒷주머니에 구겨 넣다시피 하고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여유를 부리는 제대병들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 저러한 여류를 만끽할 것인가, 하는 생각만 해도 절망한다. 속으로 저들처럼 3년 후에 우리한테도 과연 그러한 시간이 허여될 수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2주가 다 끝날 무렵 어느 날이었다. 점심 무렵 말끔한 근무복에 공용가방 매고 곱상한 외모를 한 상병 하나가 “대기병 ㅊ 아무개 이병!”하고 나를 불렀다. 자대(自隊) 배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곧 대한 육군의 일원으로서 최초의 임무가 부여될 것이다.
처음으로 그 박 아무개 상병 만나게 됐다. 그는 사단 통신지원대에서 나를 인수하러 온 기간병이었다. 친절하고 자상해 보였다. 박 상병은 내 이력을 좀 알고 있는 듯했다. 몇 마디 대화만 나누었다. 그도 중등 수학교사로 교직 생활을 하다가 한참 늦게 군에 입대했다고 했다. 나도 같은 처지라 은근한 친밀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는 벌써 결혼까지 하였다고 했다. 나이도 나보다 몇 살 더 많아서 대부분 나보다 나이 어리거나 비슷한 다른 선임병에 비해 대하기도 자연스러웠다. 여러모로 내게는 인생 선배다.
나는 M60 군용트럭을 타고 통신지원대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들판은 가을걷이가 끝나 쓸쓸하고 휑뎅그렁해 보였다. 논 밭둑의 풀과 부대 주변의 수목에는 잎들이 다 지고, 잎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11월 초순인데 초겨울이었다. 부대는 사단 사령부 아래 왼쪽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진입로는 비포장 오르막 산길로 되어 있었다. 도로를 보수한 흔적이 있긴 했지만 팬 곳도 많았다. 건물 주위는 통신 벙커로 배치돼 있었다. 연병장에서는 대형 단말기를 세우는 통신 주특기 훈련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막사 출입구와 유리창은 두꺼운 비닐로 덮어져 있었고 틈새는 엮어진 짚으로 메워져 있었다. 곧 닥칠 혹독한 추위를 예감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렸는가. 6월 21일 입대이니 5개월이 흘렀다. 초여름에 입대해서 늦가을을 맞는다. 통신학교의 출신들은 이동할 때마다 한 둘씩 찢어지더니 여기까지 동행은 심 아무개 이병뿐이었다. 대단한 인연이다. 대기병인 우리 둘은 정식 보직을 기다리는 입장이다. 국비를 들여 10주 교육을 받은, 국가 인재인 나는 당연히 사진반 배치를 그때까지는 조금도 의심치 않았었다.
게오르기우의 소설《25시》에서 ‘25시’의 의미를 작품 속의 한 인물이 이렇게 말했다. “하루의 24시간이 모두 끝나고도 영원히 다음 날 아침이 오지 않고 아무도 구원해 줄 수 없는 최후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하며 현재의 시간을 뜻한다.”고.
내가 국가체제와 국방 조직의 유지를 위해서, 그 행위가 합법적이라 하더라도 어디로 “팔려 가는지”도 모르는 나의 암울한 처지는 “나의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시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아득함' 그 자체였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 징집돼 고향에서 입영열차를 타고 육군 제2훈련소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사용된 ‘ㅊ아무개 장정, ㅊ아무개 훈련병, ㅊ아무개 이병’의 호칭이 지금까지의 도정과 앞으로의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하는 나의 처지를 말해준다. 나의 '25시’는 이미 진행 중이었다. 202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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