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오늘 비로소 실내에서 지팡이로 걷는 걸 주치의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통행 구간은 5211병실에서 병동 중앙 티브이 보는 휴게소까지로 한정했다. 그것도 반드시 보호자와의 동반 조건에서. 이 얼마나 엄청난 진보인가. 입원 당시에는 휠체어로 옮겨 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고까지 생각했었는데. 친구 김아무개, 선배 김아무개, 우리 집 둘째와 통화했다. 내 사연을 모두 인내심을 가지고 받아준다. 고맙다.
옆 병상에서는 자그마한 일이 생겼다. 간병하는 형이 자주 술에 절여서 동생을 잘 돌보지 않는다고 동생이 제 어머니에게 고했기 때문이다. 이런 형 동생 사이의 불화로 형은 간병을 안 한다고 짐 싸서 나가 버리고 대신 그 모친이 간병하러 왔다. 보호자의 둘째 아들인 환자에는 삼남 1녀, 어린아이가 딸려 있다고 했다. 그래서 환자의 부인은 간병에 엄두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헐레벌떡 도착한 그 모친의 긴 한숨 소리로 병실 바닥이 꺼지는 것 같다. 난감한 표정으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맞은편 남쪽 병상이 비어 있다. 그 자리는 어제 코로나 확진으로 1인실로 격리 조처된 40대 후반 환자의 것이다. 그는 깡마른 수수깡처럼 매가리 없이 보였다. 그래서 키가 더 훌쩍 커 보였다. 그래도 딸이 둘 딸린 가장이라고 했다. 여기서 목격하는 일들은 모두 새롭고 경이롭다.
재활병원에도 어둠이 내리고 한낮의 불볕이 식어가는 저녁이다. 입원 47일째다. 예정한 치료 시간표대로 나날이 진행하는 치료에도 이력이 생긴다. 내 인생 여정에서 이 순간의 의미,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문해 본다. 47일 만에 아내의 부축을 받으면서 조심스레 걸어서 건물 바깥 운동장 트랙을 밟아 본다. 감동 느끼기보다는 첫 외출, 첫 바깥 발디딤이라서 무척 긴장만 된다. 오늘도 둘이나 넘어졌다고 간호사들이 만나는 사람마다 겁을 준다. 그 바람에 긴장도가 더한 것 같다.
아내와 같이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아본다. 우레탄으로 잘 조성된 트랙이지만 밟는 순간 넘어질 것 같은 극심한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땀이 온몸을 적신다. 진한 땀 냄새 맛보러 깜장 산 모기들이 소리 없이 달려든다. 이 시간은 땀이니 모기 쏘임 같은 것은 내게 아무런 자극도 아니다. 아내의 이끌림에 조심스레 벤치에 앉는다. 일찍 나온 낮달을 본다. 한여름의 잔광(殘光)이 구름에 번져 있다. 이 정경을 헤세가 보았으면 어떻게 그렸을까? 심취하고 열광했을 것이다. 한여름 저녁의 낭만이 풍풍 넘쳐나는 것 같다. 아내와 같이 앉아보는 벤치, 함께 보는 초저녁 구름과 하얗게 바래 보인 달, 악을 쓰듯 울어대는 매미 소리는 틀림없이 오래 기억될 것이다. 우리가 43년 긴 세월을 어떻게 동반하면서 여기까지 왔나 하면서. 덧없어 보이고 화나 있는 나날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담겨있다.
저녁 식사 후 병동 중앙에 있는 휴게소에 휠체를 타고 가보았다. 난간의 책상과 의자에 의지하여 아이가 보내온 휴대용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근 50일 만에 키보드 사용해서 폰에 글을 입력해 본다. 읍 지역인데 밤에 자세히 보니 주변에는 아파트도 있고 차 불빛도 제법 번쩍거린다. 지난번 병원에서부터 지금까지 스쳐온 많은 인간 군상을 떠올려본다. 세상에서 가장 약자들, 그 약자들의 보호자들을 목도했다. '**마비'라는 병세가 이런 것인 줄, 신경과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된 줄은 정말 몰랐다.
불현듯 48년 전 여름이 떠 오른다. 그 연유는 다음과 같다.
운동치료 시간에 치료사가 나보고 누운 상태에서 엉덩이를 위로 쳐들고 한 다리씩 번갈아 들었다 올리게 하는 동작을 반복하게 한다. 이 운동은 군에서 수시로 받았던, 그 악명 높은 피티체조를 떠올리게 한다. 48년 전, 내 청년 시절, 훈련병으로서 7~8월 6주에 걸친, 한여름 제2훈련소에서의 강훈련, 그다음 해 일병 때는 8월 말, 늦여름 설악산 장수대 산악훈련장에서 유격(산악) 훈련 때 받았던 피티체조가 바로 그런 것이다. 대체로 50분 교육 시간에 40분은 자행되었다. 오직 강훈련만을 통해서 강군을 이룰 수 있다. 강훈련만이 스트레칭 효과와 몸의 유연성 유지를 기할 수 있고 훈련 중의 안전사고와 부상을 미리 방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 시간에 교관이나 조교가 뭔가 심기가 틀어져 있으면 분풀이성 훈련 대상으로 찍혀 극단의 훈련 일정에 걸려들기도 하였었다. 훈련 중에는 심신이 미약한 일부의 병사들은 입에 게거품을 물거나 눈물 콧물까지 찍어내는 상황도 연출됐었다. 나도 극한 훈련 순간에는 숨이 턱에 차기까지 했었다. 그 시절이 내게 찬연한 청춘 시절이었고 아름다운 계절이었음을 지금에야 실감한다.
‘그해, 6.17. 휴직 후 6.21. 입대’와 ‘올해 6.21. 입원’의 대칭, ‘그해 8. 11. 제2훈련소 전반기 6주 교육 수료 후 육군통신학교 사진반 후반기 교육 명령’과 ‘올해 8.7. ㅇㅅ병원에서 ㄱㄹㄱㅌ재활병원으로 전원 조처’의 대칭이 암만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 다만 육군통신학교 후반기 교육 수료 후 자대 배치의 정확한 그날은 다시 확인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그해 10월 후반은 지나서 졸업했을 것 같다. 그럼, 여기서는 언제 졸업(퇴원)할 것인가.
그해 육군 제2훈련소 한여름 폭염 강훈으로 인해 5명이 사망했다는 풍문이 후반기 교육 때 전해졌다.
그해 육군통신학교 입교 직후, 8.18 판문점 미루나무 도끼만행사건으로 남북이 전쟁 발발의 일촉즉발 사태를 맞이했었다. 북한 병사가 미루나무를 정리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한 사건이었다. 갑자기 비장하고 장중한 중대장과 내무반장의 표정과 언동은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할 수 있었다. 다만 전시라 해도 교육병은 즉각 전투에는 투입되지 않는다고 했다. 최대한 교육 훈련 보장도 전시 전투력에 최대한 쓰임에서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은 북한 김일성의 유감 표명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렇게 그해 가을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육군통신학교 교정의 늦가을은 플라타너스 지는 소리로 인해 마치 대학 캠퍼스와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제일 기다리는 시간은 체육 수업이다. 병영이지만 학교의 느낌을 가장 잘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타너스와 체육 수업, 그것으로 인해 그해 가을은 선연히 기억된다.
나는 띠동갑보다 최소한 3년이나 늦게 입대했다. 입소를 위해 고향에서 열차를 타고 새벽 2시에 훈련소에 도착했다. 지급된 더플백을 매고 유령의 집 같은 컴컴한 육군 제2 훈련소 막사에 들어가던 기분이나, 고향 1차 병원에서 구급차로 5시간 동안 달려와서 ㅇㅅ병원 응급실 입원 판정을 기다릴 때의 기분은 같은 맥락에서 많이 닮아있다. 생사의 상념이 순간순간 교차하던 점에서 그렇다. 48년 시차를 두고 나는 이렇게 변했다. 고령에서 초고령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내 한 생애를 더듬어 보니, 이렇듯 감당하기 힘 드는 일도 많았다.
여기서 50일 다 돼 가는데 아직 샤워 한번 못했다. 그래도 잘 살아지고, 잠도 잘 온다. 사람은 환경에 이렇듯 간교하게 적응해 나가는 존재인가 보다. 내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겠다. 이제 휴대용 키보드도 있으니 나를 위해 과연 무엇을 기록해야 할까. 비록 그 기록이, 아무리 처절하고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육신이 허무적멸로 화하면 아버지의 그 기록처럼 사장되어 버린다고 하더라도 기록의 그 순간의 의미는 충분히 존재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일상이나 여행에서 사진을 찍었다가 비록 한 번도 다시 들춰보지 않은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찍을 당시의 기분은 그대로 의미가 있듯이 말이다.[2024. 8. 16]
2025.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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