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n Here

“우리 모두 장애인입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오직 신만이 비장애인입니다”

청솔고개 2025. 2. 18. 16:00

 

   청솔고개
 
   영원한 안식을 취하기 전에/아픈 통증까지도 사랑하라
   저녁이 따스하게 감싸주지 않는/힘겹고 뜨겁기만 한 낮은 없다
   무자비하고 사납고 소란스러웠던 날도/어머니 같은 밤이 감싸안아 주리라
   ‘헤세의 시 「절대 잊지 말라」중에서’
 
   헤르만 헤세의 수필집 ‘삶을 견뎌내기’에 실린 한 편의 시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볼 때, 품격 있고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로 평가되는 헤세도 삶은 향유(享有)하는 것보다 그냥 견디는 것, 버티는 것으로 보고 있다. 헤세의 생애가 그러하거늘 보통 사람들의 한 생애(生涯)는 어떠할 것인가. 삶은 지난(至難)한 역정(歷程)이다.
   나는 2024. 6. 20. 저녁 한 친구와 식사하고 차 한잔하려는데 하지에 힘이 완전히 빠지고 몸의 중심이 무너져 걷지 못하는 증세가 왔다. 발병 다음 날 저녁 9시에 입원했다. 흉수 2,3번의 농양증 진단으로 그 아래는 완전마비다. 다음 날 새벽에 긴급 수술한 후 만 8개월 동안 재활치료와 염증 치료 중이다. 이제 지팡이를 들고서 살살 걷게 됐다.
   그동안 병원 생활에 묶여 한 번도 집에 다녀오지 못했다. 마비와 수술 후의 몸의 통증, 마음의 불편, 불안이 이어지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은 담담해지고 알아차림을 통한 초월적인 그 무엇을 닮아가는 것 같다. 체념(諦念)에서 체관(諦觀)의 경지(境地)로. 나의 심경을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로 드러내 본다.
 
   다음은 친구 ㅇ아무개에게 보낸 최초의 병증 보고서다.
 
   "정확한 병명은 '척추의 경막 내외농양증'이라네.
   병원균으로 밝혀진 대장균이 체내 돌아다니다가 여기서 농양을 만들었는데 그 흉수2,3번 사이 농양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어서 앞으로 6주 동안 강력한 항생제 치료가 남아 있다. 내 생각으로는 지난 4월 말부터 눈뿌리 빠지는 듯한 통증, 볼 붓기, 이빨뿌리의 농양으로 이빨 2개 발치, 심한 가슴 근육과 등 통증 등으로 불면의 밤이 계속되는 것이 그 전조 증세로 판단된다. 이점은 의사도 수긍하더라. 이제 재활치료가 10일 지났는데 워커 잡고 보조받아 80미터쯤 걸어진다.
   그래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대변은 휠체어 타고 스스로 5, 6차례 봤는데 소변은 잘 안돼서 요관으로 해결한다. 앞으로 이게 큰 문제가 될 것 같다. 어제는 신경외과에서 재활의학과로 옮겼다. 재활의학과에 병상이 없다면서 자칫하면 그냥 퇴원할 뻔했는데 운 좋게 전과했다. 여기 담당 의사는 휠체어나 지팡이 사용 가능한 재활치료 기간이 지금부터 최소 6주 정도로 보는데 그건 매우 불확실하다.
   늘 걱정과 관심, 고맙고...이상 1차 보고서 끝!
   [2024.7.28. 오후]
 
   다음은 나와는 각별한 관계에 있는 모임 단체카톡방에 띄운 나의 편지다.
   
   친구들, 어제 그 좋은 가을날에, 그보다 더욱 좋은 우리 친구들과 함께하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회장에게 제 소식은 미리 전했습니다만, 좋은 모임 앞두고 나 때문에 괜히 번거롭게 하지나 않을까 해서 제 형편을 지금 전하게 됐습니다.
   내가 진단받은 병명은 '경막 외 및 경막하 농양증'이란 것입니다. 대장균의 일종이 그 부분에 침범해 일으킨 염증 고름 덩어리가 그 부분의 척수를 압박해서 척수신경 손상이 생긴 것입니다. 나는 흉수2,3번에 생긴 농양 덩어리로 그 이하 흉부, 복부 등 몸통과 그 이하 둔부, 하지가 모두 마비가 와서 현재 재활치료 받고 있습니다.
지난 6.21.서울**병원 입원, 6.22.새벽3시에 4시간 수술 후 수술 후 회복 치료, 염증 치료와 재활치료를 받다가 지난 8.7.에 여기 **회복기 재활병원으로 옮겨서 전문 재활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 병원에서 기본 재활 기간은 기본 6개월이라니 아무래도 내년 2월 7일은 돼 봐야 퇴원 여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실내에서 지팡이 짚고 걸음마 연습하는 정도입니다. 고강도의 재활치료를 받아도 손상된 신경은 근본적으로 재생될 수 없다 하니 다른 여러 방식으로, 근력 강화, 균형, 조절 치료 등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의 나에 대한 걱정과 격려의 말씀, 전화에 감사합니다. 재활치료의 근본 한계로 몸통의 균형감각과 걸음 회복이 쉽지는 않군요. 그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2024. 11. 7]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는 직립 보행하는 인간의 특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인간은 직립보행의 존재다. 앞으로 나는 암만해도 직립(直立)에도, 보행(步行)에도 불완전한 인간이 될 것이다.
   나는 이 병원 입원한 지 6개월 즈음하여 장애 진단 심사 서류를 원무과에서 발급받아 주소지 관할 행정복지센터에 접수하라고 안내받았다. 한 달 후 나는 그 서류를 등기로 주소지 행정복지센터에 보냈다. 언젠가는 나도 어떤 형태라도 장애 판정을 받을 것이다.
   장애(障礙)를 다시 생각해본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어려서는 발달 과정에 있어서 불완전한 존재이고 커서는 각종 사고나 병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은 크고 작은 상실과 결함을 겪는다. 장애의 기준은 뭔가. 아직도 소아마비나 편마비로 파행(跛行)해야만 장애 상태라고 알고 있다. 깨지지 않는 고정관념이다. 그렇지 않다. 안경을 껴도, 이빨 보철 하나 해도 장애다. 장애에 대한 인식의 대전제는 우리는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망정, 크고 작은 장애 상태라는 것이다. 장애 정도에 따라 복지카드를 받고 국가에서 보조금쪼로 장애 수당 받으면 중증에 해당하는 것이다.
   지난날에는 태생적인 선천적 장애가 주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사고나 병으로 인한 후천 장애가 대부분이다. 우리 모두 잠재적 중증 장애인 후보다. 따라서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차별해 대우하는 것은 인권을 무시하는 것이고, 언젠가는 내게도 닥칠지 모르는 장애라는 돌발사태를 만나 더 큰 상처를 자초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잠재적 장애인이다.  아니 장애인 그 자체다. 완전하다고 방심하고 자만하는 사이에 당신의 운명은 질병과 사고의 바다에 던져질지도 모른다. 신이 존재한다면 오직 신만이 비장애인이다,
   2025. 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