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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뇨(殘尿)와 씨름하다, 배뇨일지(排尿日誌) 쓰다, 또 다른 장애(障礙)의 시작

청솔고개 2025. 2. 23. 22:42

 

   2024. 7.15.
   오늘, 입원 25일째, 발병 26일째 날이다. 요즘 오줌이 원활히 누어지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다리에 힘없어 불편한 것보다는 요도에 관 넣고 오줌 누도록 하는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는 무언가라도 세세히 내 병증의 이력(履歷)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그걸 못한다고 하면 아직은 발병과 치료로 여력 없어서 그렇다고 하면 변명일까.
   침상에서 오줌줄을 오줌통과 연결해서 편리하게 배뇨하는 방식으로 오래 하면 배뇨 기능이 떨어진다고 한다. 자연 배뇨(스스로 배뇨)를 시도해 보라고 했다. 자연 배뇨 시작한 지 7일이다. 오늘 잔뇨 측정 통계를 내보니 9차례, 3,140cc로 측정된다. 엄청난 양이다. 평균보다 1,000~1,500cc가 더 많다. 수액, 주사액 등으로 증가한 것이다.
   아침에 ㅊ아무개 주치의가 가슴 부분에서 감각 없는 부위를 말해 달라고 해서 배꼽 아래라고 하니, 그런 식으로, 조금씩 아래로 신경이 회복돼 간다고 한다. '회복'이라는 이 한 단어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나에게는 구원의 말로 들렸던가.
 
   요관 배뇨(간헐적 청결도뇨, CIC)를 시작한 지 7개월이 돼 간다. 또 다른 장애의 시작이다. 평생 간다고 하면 심각하다. 이것만큼은 피하려고 해도 노화의 흐름은 거스르지 못하는 것 같다. 7개월 전 1차 자연 배뇨 시도 실패, 이어서 요관 배뇨 시행, 올 정초 요관 배뇨를 피하려고 자연배뇨 후 요관 배뇨를 통한 잔뇨 측정은 병행 엊그제 시행된 요역동학 검사 결과로 무산됐다. 그 자초지종이다.
 
   2025.2.21.
   오늘 입원한 지 꼭 8개월째 되는 날이다. 8개월의 진행 과정이 한바탕 꿈만 같다. 갑자기 하반신 마비로 쓰러져 질질 끌려 오줌 1천cc로 터질 것 같은 방광을 부여잡고 초여름 긴긴날, 긴 줄이 늘어선 응급실 앞에서 헤매던 기억이 새롭다. 이만큼이라도 회복한 게 기적이다. 내일은 우리 혼인 44돌이다. 인생사의 많은 게 스쳐 가고 거쳐 간다.
   오늘은 요역동학 검사가 예정돼 있다. 새벽부터 긴장된다.
   오전 9시 40분까지 치마 같은 검사복을 챙겨서 1층 

   요역동학 검사실에 갔다. 치마로 된 검사복을 갈아입고 검사에서 주의 사항과 부작용을 들었다. 가벼운 음악과 흐르는 물소리를 들려준다. 긴장을 완화하고 요의를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먼저 스스로 배뇨를 해보라고 해서 시도해 봤는데 전혀 안 나온다. 극도의 긴장 때문이다. “병실에서도 침상에서는 안 된다. 반드시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손을 씻으면 요의가 급증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수도꼭지를 열어놓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 요의가 급증할 때도 있다. 여기는 검사 담당자와 주치의가 지켜보니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의사한테 말했다. 수긍한다.
   다음은 항문과 요도에 관을 끼운다. 모든 검사는 모니터를 통해서 볼 수 있고 자료는 저장된다. 이어서 생리식염수를 넣는다. 아울러 방광에 물이 찬다는 느낌, 오줌이 조금 마렵다는 느낌, 오줌이 꽉 차서 급하다는 느낌이 있으면 바로 알려달라고 한다. 검사 담당자와 주치의 사이의 대화를 들으니 내 자연 배뇨는 50cc라고 말한다. 방광에 주입된 생리식염수가 얼마나 배출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검사 담당자는 수시로 “어험”하고 기침을 두 번 해보라고 한다. 수시로 혈압을 체크한다. 5번이나 혈압을 측정한다.
   주치의는 옆방에 있으면서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검사 담당자와 함께 모니터를 보면서 뭔가를 주고받는다. 모니터 그래프에 좋지 않은 데이터가 확인된 것 같다. 뭔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점은 나도 직감할 수 있다. 1차로 검사한 ㅇㅅ병원에서의 검사 방식과는 다르다고 했더니 그런 방식도 있다고 한다.
   다음은 방광 조영 검사다. 투시촬영실로 옮겨서 방광 촬영을 해야 한다. 자리 뜨지 말라는 당부를 잊었는지 아내가 입구에 없다. 보호자를 찾기 위해서 큰소리로 이름을 부른다. 민망한 일이다. 응급상황이 있을 수도 있으니, 자리를 지켜달라고 했는데 아내가 없다. 좀 있다가 아내가 온다. 내가 가볍게 아내를 타박한다. 조영제를 넣어서 방광을 촬영하는 검사를 시작한다. 어험 어험 하는 큰기침을 해보라고 한다. 30분 정도 걸렸다.
   교수와 담당자는 촬영 결과 화면을 가리키면서 내 방광 벽이 많이 두꺼워졌다고 한다. 이어서 이렇게 설명한다. “척수손상 환자에게는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불필요한 요의를 수시로 전달하는 신경 작용이 작동 때문이다. 요의로 착각되는 그 현상 때문에 방광 벽이 불필요하고 과도한 운동을 하게 된다. 벽이 두꺼워지고 쭈그러져서 삼각형에 가까워졌다. 계속 진행되면, 방광 용량의 축소, 형태 왜곡, 오줌 역류, 콩팥 손상이 온다. 그 결과 신부전증으로 이행, 최악의 경우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이를 완화하려면 방광을 이완하는 약을 먹어 불필요한 오줌 신호를 없애야 한다. 이제부터는 지난날 애썼던 자연 배뇨는 전혀 의미가 없고 바로 4시간마다 알람 해 놓고 요관배뇨만 해야 한다. 앞으로 약을 먹으면 요의가 점점 둔화해 방광 벽 두꺼워짐과 쭈그러듦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
   난감하다. 나는 오늘 아침까지도 급히 내 배뇨 일지 통계 처리해서 자연배뇨 결정을 위한 자료로 사용하려고 했는데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 퇴원하면 전문비뇨기과에서 종합 검진해서 결정할 일이다. 상심이 많이 된다. 자연 배뇨는커녕 방광 벽 쭈그려 짐 경고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아내도 이런 기분을 알고 자꾸 위로하려고 한다. 어쩔거나, 일단은 수용할 수밖에….
   오전은 몸과 마음이 다 지쳐서 그냥 쉬었다. 평일과 주말, 공휴일을 구분해서 치료 일정, 생활 리듬에 맞춰 4시간 배뇨 타임을 조정해서 알람으로 설정해 놓았다.
   
   요관배뇨(尿管排尿), 이른바 간헐적 청결 도뇨(CIC) 실행 과정은 나로 봐서는 가장 경건한 의식이다. 일종의 제의(祭儀)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손소독제, 물휴지, 바닥에 깔 휴지, 처리 후 닦을 휴지, 카테터, 오줌통, 사용 후 처리할 비닐봉지를 세팅해 놓는다. 카테터를 딱딱한 그곳에 붙이고 꺼낼 수 있도록 벗겨 놓는다. 요도에 카테터가 잘 들어갈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잘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천천히 불편감이 엎도록 밀어 넣는다. 처음에는 잘 들어가지만, 마지막 살짝 굽은 부분에 삽입할 때는 꺾이는 느낌이 있어 좀 심한 불편감, 통증까지 생긴다. 이때쯤 오줌통으로 향한 카테터의 끝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잘 막아주어야 한다. 어설프게 하다가 요압에 의해 오줌이 함부로 분사된다. 그런 사고를 몇 번 겪고 난 뒤 아주 조심한다. 충분히 오줌이 나왔다고 느껴지면 카테터 끝을 살짝 들어 방광에 남아 있는 오줌을 충분히 통에 다 빠지도록 한다. 이 과정을 어설프게 하면 오줌이 환자복 바지에 흘러내려 젖어버린다. 몇 차례 이런 일이 생겨서 바로 바지를 갈아입은 적도 몇 번 있었다. 오줌이 다 빠지면 통의 마개를 반드시 막고 눈높이가 같은 평평한 곳에 놓고 오줌량을 측정한다. 배뇨 일지에 시간과 양을 기록한다.
   이런 과정을 4시간 알람 맞춰놓고 하루에 평균 6회 해야 한다. 하루 주요 일정은 이 활동과 조율돼서 짜야 한다. 주야 관계없이 4시간마다 도뇨 횟수 6회가 기준이 돼야 한다. 이 과정이 심한 장애 현상이다.
   나는 이 의식을 반복하면서 나의 요도에 경의를 표한다. 평생 나를 위해 많이 애썼다. 노화로 관과 손의 도움을 받아 남은 임무를 완수한다. 삶을 영위할 마지막 날까지 나와 함께 고생할 것이다.         2025.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