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모임 친구들, 이번의 과분한 도움과 배려에 정말 감사합니다. 방금 회장님으로부터 나를 위한 위로금도 송금받았습니다.
나도 아직은 내 나이를 착각하고 있었는데, 마음은 아직 청춘이라는 식으로... 여기 오래 머물러 보니 비로소 내가 정말 고령층에 속한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천차만별(千差萬別), 천태만상(千態萬象)의 장애 양태를 목격하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돌이 되면 거의 걸음마를 배워서 뒤뚱뒤뚱하게나마 걷는데, 나는 아직 걸음마 연습 중입니다. 돌받이가 처음 한 발짝을 뗐을 때, 그 순간 온 가족이 용을 쓰고 박수 치고 환호작약합니다. 요즘은 그것을 영상으로도 남겨 놓더군요. 나는 그런 돌받이로 커가는 기분입니다. 나는 아직 100일 조금 지난 나이라서 더욱 치열한 걸음마 연습이 필요합니다. 친구들의 성원에 힘입어 최소한 내 돌날에는 아장아장 걷도록 애쓰겠습니다. 그 영상도 남겨 놓고요...
여러분들의 진심 어린 성원을 갚아나가는 것을 나의 인생 과제라 여기고 열심히 일어서겠습니다. 열심히 걸어보겠습니다.
척수손상 중 경수 손상 등급 ASIA 중 A등급 환자는 목 이하는 완전마비입니다. 1년이든 2년이든 재활을 통해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희망의 끈'을 잡았다고 합니다. 이후 남의 도움으로라도 휠체어에 옮겨 앉을 수만 있으면 '기적'이라고 합니다. 같은 병실에 8개월 된 경수 손상 환자는 아직 휠체어에 옮겨 앉지 못합니다. 이동할 때마다 리프트라고 하는 전신 장애환자 이동하는 기구로 휠체어로 옮겨 태웁니다. 처음에는 10분은 족히 걸립니다.
참혹한 사고 현장에서 골든 타임 내로 응급 처치해서 목숨을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치료와 재활을 통해서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그 개체가 ‘생명값’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신체적 조건이 회복돼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들은 평생 의식만 남아 있고 육신의 기능은 상실된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그 자체로서의 삶의 의미를 되찾으려면 필생, 필사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증, 수용 등 수용의 5단계 중 내게는 맨 먼저 부정 단계가 오더군요. 명치 이하 마비로 질질 끌려가는 현실은 '현실감 부재'이고요. 비현실적인 풍경 그 자체. 그 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 같은 것이 나의 뇌리에 한참 동안 떠올려집디다. 그러나 결국은 타협과 수용의 단계로까지 다다르게 되더군요. 이는 2022년 1월 18일 8시간 30분 동안 이미 요추3,4,5번 유합술 받고 4개월 동안 보조기를 차고 지팡이로 생활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어서 아울러 주문이나 자기암시처럼 "내게 하필 왜? 이런 일이..." 라기보다 "드디어 내게도 올 게 왔다. 다만 좀 일찍 온 것뿐이다. 나보다 10년 뒤에 올 친구도 있고, 운 좋으면 20년, 아니면 30년 뒤에는 결국 나처럼 주저앉을 것이다."라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타협하고 이어서 받아들임(수용)이 되더군요.
이러다 보니 분노 단계, 우울증 단계는 좀 극복된 것 같습니다만 또 사회에 복귀하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장애인으로서 병원 내 환경과 사회 환경은 천양지차(天壤之差)라고 하고. 그래서 퇴원을 앞둔 환자는 1박2일 정도 집에 가보게 하는 휴가를 줘서, 사회 환경과 가정환경을 직접 겪어보고 보완할 것을 알아보도록 하고요...지루한 나의 푸념 끝까지 들어줘서 더욱 감사합니다. [2024.11.10.]
2025.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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