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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으면 유년 시절 고향 집이 떠오르다 2

청솔고개 2025. 2. 9. 20:08

   청솔고개

 

   왕대로 얼기설기 짜 놓은 큰사랍은 무거워서 나 혼자 여닫기가 힘든다. 가는 대쪽 촘촘히 짜 놓은 작은사랍은 나 홀로 살짝 잠금 고리로 들어 옮겨본다.

   퍼런 물이끼 끼어 있는 앞마당 텅 빈 데는 바로 앞 논바닥과 높이 차이 거의 없다. 마당 물 빠짐이 더뎌서 축축하다. 마당 가 도랑에는 실지렁이도 오글오글하다.

   야트막한 황토 죽담 위 반질반질 툇마루가 놓여 있다. 그 아래는 호매이, 낫, 수굼포, 곰배, 쏘래이, 가래, 까꾸리 차곡차곡 보관해 놓은 곳이다. 두꺼운 소나무 판으로 짠 대청마루 보기에 든든하다. 걸으면 삐걱삐걱 소리가 더욱 요란하다. 대청의 실겅 콩자반 몰래 꺼내 먹으러 깨금발로 살금살금 걸어 들어간다.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어 간다. 대청 넓은 틈새에는 먼지와 때가 끼어 있다.

   큰방과 정지 사이 봉창은 작은 유리판이 끼워져 있다. 호롱불 켜서 큰방, 부엌 다 밝힌다.

   큰방에서 샛문 열면 곧바로 정짓간이다. 그 옆은 작은 솥과 큰 솥 걸려있는 부뚜막이다. 우리 살찐이가 악다밪게 누워있다.

   정지에는 큰 것 작은 것 하나씩 무쇠솥 건 아궁이 둘이 있다.

   아침저녁 하루 두 번 밥이며 반찬 지을 때 피어나는 부엌 연기로 검게 그을은 실겅 위로는 올망졸망 사기그릇이 옹기종기 차곡차곡 놓여 있다. 놋그릇은 제삿날에만 사용하기 위해 도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큰방에서 대청 건너면 엄마 아부지가 주무시는 멀방이다. 멀방 한쪽 뒷방은 쪽방이다. 시끄러운 세월 탓에 큰아버지 행방이 묘연하시다. 혼자되신 큰엄마 방이다. 팔자 고치기 전까지 기거하시던 방이다.

   멀방 뒷문 열면 안정낭과 외양간 소죽솥 아궁이도 보인다. 안 정낭 거적때기 문 열려 있으면 통시에 누가 볼일 보는지 다 보인다.

   사랑채 사랑방은 봄 한 철 분주한 잠실(蠶室)이 된다. 뽕잎 냄새, 누에 냄새, 누에 똥 냄새 댓진 냄새가 엉겨난다. 뽕잎의 새벽이슬 내음도 배어난다. 새벽 일찍 할매 따라 새들 뽕밭 뽕잎 따서 아침 먹기 전에 집에 온다. 첫잠 배기 아기누에는 뽕잎을 잘게 썰어 줘야 한다. 그런 곳. 뽕잎의 이슬 말려 줘야 아기누에는 설사 안 한다고 한다. 두런두런 할매 할배의 이런 얘기 자주 듣던 사랑방이다. 내 나이 열세 살 때 큰할배가 숨 거두신 방이다. 큰할배 별세는 나의 가족 중 최초의 죽음 체험이다. 내가 처음 겪은 잊지 못할 상실 감정이다. 어린 내 생애 큰 사건이다.

   사랑방 그 옆 방은 일꾼들 방이다. 그 또래들 몇몇 모여 새끼 꼬고 가매이도 자주 짠다. 그런 구실로 가끔은 밤 이슥도록 술, 장기, 화투 내기도 살짝살짝 즐긴다. 큰할배가 잠 들어 있다가 옆방 젊은 일꾼들이 밤새 과한 놀음한다 싶어 “어흠, 어흠” 자주 헛기침 해대신다. 그 지나침을 깨우치시려 하신다.

   그 옆은 사랑채 끝 칸이다. 벽이 다 트인 작은 마루에는 한여름철 일꾼들이 낮잠 한숨 곤히 자던 곳이다. 늘 가매이짜기틀이 놓여 구석에 놓여 있다. 가매이도 짜고 새끼도 꼰다. 비가 오면 초가집 이는 짚 용마루도 엮는다.

   큰사랍 옆에는 잿간이 우두커니 서 있다. 아궁이에 불 때고 난 뒤 재가 가득 차면 그 재 쳐서 짚소구리에 담아서 잿간에 부어 쌓는다. 소똥 개똥 오줌까지 끼얹어서 재거름을 만든다. 한여름 밤 잿거름더미에 개똥벌레 반딧불이 반짝반짝 보석처럼 붙어있다. 아궁이의 짚불이 꺼진 줄 알고 잿간 옮겨 놓았다가 잿간 지붕에 불 옮겨붙어 한바탕 “불이야!”소동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그러면 온 식구 소방대원 돼 나선다. 물동이, 바께스로 물 날라 덮어 끈다.

   우물 옆 채전 밭 앞은 도장이다. 도장 문 요롱 열기만 하면 딸랑딸랑한다. 홍시, 엿, 꿀, 콩자반 숨겨져 있어 몰래 드나들면 딸랑딸랑 요롱 소리 요란하다.

   곳간의 그 옆은 방간이다.

   장독대 옆 감로 나무는 감로수(甘露水) 맛 감로 열매가 열린다. 석류알보다 더 달고 더 붉고 더 굵다.

   웅굴담 위 한길 밑은 사철 정구지밭이다. 사철 잿가루 포슬포슬 뿌려져 있다.

   마을 웅굴 맞은편 둔덕 위 꽤똥나무 하나 있다. 그 가지 잘라 만든 새총으로 새 잡는다고 여남은 번은 더해 본 듯하다. 한 번 새 날개라도 맞춰본 기억 없다. 그래도 또 나뭇가지 잘생긴 놈 잘라서 새총 만든다. 굵은 고무줄로 묶고 부드러운 헝겊으로 댄다.

   그 위 작은 논도가리는 겨울 내내 마늘밭이다. 마을 닭들 마늘 포기 함부로 파헤쳐댄다. 울 할매가 큰소리로 내쫓는다. 잔돌 던져 후쳐낸다.

   수리조합 도랑 건너 닥밭밑 가는 길은 수리조합 물이 철철 넘친다. 사람 발길로 뭉개져 야트막한 좁은 논길은 늘 물에 잠겨 있다. 사람 발길에 송사리, 미꾸라지, 송어 화들짝 깜짝 놀라 도망간다. 나도 한 번씩 놀란다.

   닥밭밑 가는 길가는 주인 없는 닥나무 몇 그루가 휘영휘영 늘어져 있다. 내가 서너 살 먹을 무렵이다. 우리 사랑채 청마루서 닥나무 껍질 벗겨 백지 종이 떠내는 모습 한 번 꼭 본 듯하다.

   죽마고우 한 친구 집 원들 댁 건넛방은 마을 책방 구실이다. 나는 그 친구랑 그 어린 나이에 책 읽기 삼매경에 빠져본다.

   겨울이면 그 위쪽 평평한 동뫼 풀밭 언덕배기에서 방패연 날린다. 연은 높이 높이 멀리멀리 온 들판 구경 다 한다.

   동뫼 끝에는 맞도랑이 흐른다. 빨래바위에서 울 엄마는 아이 기저귀를 가져다가 빨랫방맹이로 톡탁톡탁 두드린다. 고향 집 할매할배 찾아뵙고 떠나올 때 울 할매 큰삽짝에서 큰손자 배웅한다. 내가 뒤돌아보면서 또 뒤돌아보면서 이 맞도랑 여울목 다다를 때까지다.

   수리조합 도랑 낙차를 지나는 데 우리 논 가엔 납닥감나무가 한 그루 있다. 물가 감나무는 감이 잘 안 열린다. 풋감이 잘 떨어진다.

   송곳만 한 땅뙈기라도 있으면 논 두름에는 콩, 팥 심고 좀 더 넓으면 감을 심는다. 급해서 접을 붙이지 못하면 꽤양나무로 자란다.

   동네 휴게소는 솔고개다. 포구나무에 포구가 노릇이 익으면 대나무 딱총 만들어 빡빡 소리 장난질한다.

 

   지금도 나는 꿈을 꾼다.

   나는 그만 늦잠 잤다 싶어 화들짝 잠 깬다. 멀방 뒷문을 열어본다. 사랑채 외양간 소죽솥 아궁이 앞에는 작은할배 불 땐다고 또 우두커니 앉아 계신다. 내가 ‘할배요’하고 소리쳐도 내 소리도 안 들리고 할배도 못 들으신다. 작은할배는 소죽솥 아궁이 앞에서 암말 없으시고 소죽솥 아궁이에 불만 때고 계신다. 소죽 끓이시는 작은할배보다 내가 일찍 깨어야 한다고 한다고, 내가 소죽솥에 불 때야 한다고 하며 이러다 화들짝 놀라면서 꿈에서 다시 깨어난다. 김 서리는 소죽 냄새는 구수하고 훈훈하다.

   이 꿈만큼 자주 꾸는 꿈이 있다. 뭔가 행정 착오로 다시 군대 가는 꿈이다. 무슨 일로 제대가 보류돼서 나가는 기약이 없다.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이 두 꿈이 가장 많이 꾸어지는 꿈이다.

 

   고향 집, 고향마을의 선연한 모습들.

   하도 많이 떠올려봐서, 꿈에도 떠올려봐서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으로, 꿈으로 그려 본다. 나의 남은 세월은 그림 솜씨를 좀 늘여서 연필 세밀화나 펜 세밀화로도 꼭 그려 보고 싶다.

   내 유년 시절 고향 집 주변을 담은 낡은 흑백사진 하나 없다.

   돌아가시기 3년 전 아버지는 큰집 담벼락에 여름 한 달 동안 반바지 차림에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시고 고향집과 고향 마을을 그려넣기 시작하셨다. 아버지는 내가 드린 수성 페인트로 담벼락 바탕을 깨끗이 칠한 다음, 수채화 물감으로 댁호에 따른 가가호호와 마을의 크고 작은 길도 그려 넣으셨다. 마을 전경을 그리고 난 뒤, 고향 우리 집은 따로 크게 그리셨다. 처음에는 좀 엉뚱하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도 그때의 아버지와 같은 심경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5년도 걸리지 않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그 벽화가 많은 영감과 감성을 깨우쳐 주셨다.

   병실에서 9개월째 거동이 불편해지니 더욱 간절해진다.    2025.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