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24. 8. 9.
지금, 여기는 경기도 양평군 소재의 한 재활병원 5층 복도 서쪽 끝.
산야 대지에는 한여름의 막바지 기운이 서리는 듯, 문득 내 불안의 시절. 나는 청춘 시절 그해 여름이 떠올라…. 제2훈련소 훈련 마치고 막 배출되던 시점, 48년 전의 그 시절이 생각나….
2024. 8.10.
여기 회복기 재활치료를 위해 옮겨온 후 첫 토요일을 맞았다. 모든 게 아직은 낯설다. 어제 운동치료 평가에서도 넓적다리관절 이하 감각 신경의 손상으로 이를 되찾는 데는 운동신경보다 더 늦을 수 있다고 한다. 담당 의사의 말과 일치한다. 내가 걸어봐도 알겠다. 몸통의 한없는 꿀렁거림을.
복도 북쪽 끝에 나와서 혼자 몰래라도 걸어볼까 하다가 숨어서 하는 그런 짓은 하지 말자면서 스스로 조급함을 다독여 본다. 대신, 멀리 산경(山景)을 조용히 바라다본다. 혼자 보는 게 좋다. 아내도 동행하지 않은 이 시간만큼이라도 또 다른 이유로 어지러운 마음을 정화하고 가벼운 명상에라도 잠기었으면 한다. 비록 산모기의 극성으로 팔에 가려움이 덮치더라도. 지도를 찾아보니, 용문산 1157.1미터, 장군봉 1055미터로 나와 있다. 그러면 가장 높은 산이 용문산이란 말인가. 천 미터급이 둘이나 있다. 결코 바라만 볼 뿐, 다시는 디디고 밟고 가서 확인할 수 없을 터, 그런 생각만 하면 가슴이 더욱 먹먹해 온다. 산세가 제법이다. 골의 숲도 검게 깊다. 내 생애 이 시간에 여기를 조우(遭遇)할 줄 어찌 짐작이라도 하였으리오.
내 발이 이토록 부자유스러우면 자연히 만남도 뜸해지는 법.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다시는 1년 전 그 모습대로는 못 돌아갈 터, 이제는 충분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내 마음을 다지고 또 다져본다.
내 블로그에서 20여 년 전 미 동부 여행기를 읽어보았다. 내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삼스럽다.
어제 오후 아내에게 속으로 품은 내 유치한 감정은 저녁 시간 통로 끝 극성 보호자가 설치해 놓은 캠핑 탁자에서 마주 앉아 나눈 간식 파티에서 다 해소되었음에도 내 마음은 또다시 어지러워진다.
하필 내게 이런 일이! 하기에 앞서 운명이라는 걸 이제야 전적으로 내 장애처럼 수용해야 함을 절감한다. 오늘이 발병 52일째, 이제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아무리 강한 척해도 몸통과 하지 마비에는 기분 나쁘고 절망적인 그 꿀렁거림과 흐물흐물 해지는 데는 대책이 없다. 이전 수술부의 불편함도 앞날을 더욱 암울하게 한다.
그렇게 기록에 병적으로 집착하던 나도 이 미증유의 육체적, 물리적 허물어짐에는 그냥 낫씽이다. 백약이 무효라는 생각이 앞선다. 이즈음 내가 매사에 아내한테 불필요하게 예민해짐도 장애로 인한 심리적 손상인가.
아내는 피로에 지쳐 잠시 눈을 붙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최대한 분리의 시간과 독자적인 휴식이 절실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아내의 지나치게 명랑 쾌활함도 그 내면의 상실감을 가리려고 하는 비정상적 반응 같다는 나의 반응이 외려 비정상적인가. 아내가 오죽했으면 그렇게 쿨 한 척, 센 척했을까도 싶다. 아내와의 43년 +@, 고맙고 애련하다. 발병 그 당시 내가 또래보다 한 10년, 20년 일찍 주저앉았다고 치자는 나의 담대한 인식이 너무나 순진한 건 아닌지?
송파에서 양평으로 실려 오던 그날의 그 쓸쓸함과 비현실적인 인식이 생생하다. 여기서 또 언제까지 주저앉아 있어야 하는가? 기약 없다. 애초 한두 달 잡은 그것은 또한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벌써 한 달 하고도 21일 지났다. 더 혹독한 환자들을 보고 비교 만족하는 그것도 한계가 있을 것 같고, 날이 갈수록 희망 고문의 일수만 보태어가는 건 아닌지.
어젠가 오늘인가 요상한 꿈을 꿨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민망한 꿈도 꿔진다. 본능의 충실한 표출, 아니면 내 정신세계의 혼란함의 방증인가.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은 남자 간호사가 복도에서, 끝에서 나를 볼 때마다 “보호자는 어디 있을까요?” 한다. 간호사들은 그게 인사다.
그냥 이대로 나가서 혼자 자박자박 발자국 옮기면서 여생을 혼자 보내는 그것도 이제는 의미가 있을 그것 같다. 주변의 과도한 케어도 이제 간섭으로 간주해, 나도 모르게 짜증 투의 말씨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특히 아내와 옆에 너무 가까이하는 체한 몇몇 보호자들이 그렇다. 2025.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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