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24.3.6.
여정 3일째. 절반에 접어든다. 절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일행에 늦지 않으려고 애써 본다. 필요하지만 구속이다.
어제 밤늦게까지 있다가 새벽에 겨우 일어났다. 아침 식사 후 호텔에서 짐을 정리하고 창밖을 내다보니 많이 흐려져 있다. 이 호텔 객실 28층에 묵었다. 호텔을 중심으로 여기도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주변에 막 솟아오르는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다. 옆의 축구장이 아주 넓어 보인다.
아침 9시, 만봉호로 향했다. 묵은 호텔은 ‘富强 梦乐大酒店[夢樂大酒店]’이다. 버스에서 찍은 사진으로 확인된다. 옆에는 삼성전자 매장 간판도 보인다. 가이드는 타자마자 또 여권 분실 방지에 대해서 강한 어조로 경고한다.
도심을 벗어나서 1시간 지났다. 다양한 원뿔형의 봉우리들을 장난감처럼 세워서 펼쳐놓은 듯 솟아 있다. 그 사이로 푸른 계곡물도 보인다. 드디어 만봉호 호숫물이 눈에 들어온다. 10시 반에 만봉호 선착장 주차장에 도착했다.
가이드가 유람선 승선권을 끊으러 가는 사이에 선착장 입구 대기 장소에서 기다렸다. 한 시간이 더 걸렸다. 오늘 유달리 더 많은 탐방객이 몰려온 듯하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배를 타면 더 추워질 것 같다. 근처 매점에서 크기가 우리 것의 반밖에 안 돼 보이는 땅콩을 사는 바람에, 덤으로 뜨뜻한 찻물이 서비스된다. 몇 잔이고 마셔댔다. 속이 좀 더워진다. 아내는 좀 추워 보인다. 이런 날은 두터운 것을 준비하라고 몇 차례나 권해도 괜찮다고 한다. 내 것을 입으라고 해도 여전히 괜찮다고 한다.
11시 30분이 지나서 배는 출발했다. 호면은 잔잔하다. 멀리 일만봉(一萬峯)이 연봉(連峯)으로 돼 거대한 인공 담수호와 잘 어울린다. 날은 흐려있지만, 다행히 비는 안 온다. 2층 갑판으로 올라가 본다. 안전을 위해 2호차 여행객이 먼저 오르고 난 뒤 다시 1호차 여행객과 교대한다는 것이다. 1층 고물[船尾] 끝의 중국의 국기 오성홍기(五星紅旗)가 힘차게 펄럭인다. 배경으로 몇 장 폰에 담아 보았다. 호수 가장자리에는 물이 찼던 흔적이 허옇게 남아 있는 게 우리나라 인공 담수호 보는 것 같다. 귀로에는 배가 속력을 올린다. 오성홍기가 펄럭이면서 엔진 소음에 묻혀 사람 말소리도 구분이 안 된다. 다시 선실로 들어왔다. 일행은 애주가 친구 ㅎ아무개가 챙겨온 술을 한 잔씩하고 취흥이 도도해지고 있었다. 나를 위해서는 술 반 잔은 남겨 놓는 주도는 지킨다. 그게 고맙다. 선실 안은 온통 여행객들의 대화로 시끌벅적하다.
그새 40여 분 지나 내렸다. 우리가 타고 온 만봉호 2호를 배경으로 우리 내외가 셀카로 한 장 담고 부탁해서 한 장 더 남겼다. 소중한 기록이 될 것 같다. 만봉호는 중국 5대 담수호 중의 하나로 우리나라처럼 계곡을 막아 만든 인공호수다. 귀주, 운남, 서천성 접경지역에 위치하며, 수심이 200m가 넘는다. 처음에는 뭔지도 몰랐는데 인공호수라고 하니 풍광에 대비한 호수 자체에의 흥미가 좀 감해진다.
12시 30분쯤 만봉림으로 출발했다. 가이드의 만봉림 안내보다 다시는 올 수 없을 것 같은 만봉호가 자꾸 뒤돌아 보인다. 날이 점차 갠다. 햇살이 비친다. 이제까지 묻혔던 풍광이 더욱 선명히 되살아나는 것 같다. 기분이 좋아진다.
1시 10분쯤 만봉림으로 출발했다. 점심은 나중에 먹기로 했다. 만봉림 입구 주차장에서 전동차로 갈아타고 산길을 오른다. 들머리부터 우리나라 진안의 마이산 같은 봉우리들이 셀 수도 없이 펼쳐져 있다. 시선 압도한다. 여기서 멀지 않은, 구이린에서 지난날 보았던 형상과는 같은 듯 다른 모습이다. 경이로운 것은 그 아래 펼쳐진 싱그러운 푸른 초원이다. 보리밭 같아 보인다. 아주 정갈하고 맑은 모습이다. 유채꽃이 진 후 모습이라는 걸 알았다. 팔괘(八卦) 모양의 달팽이 속 형상은 물 빠짐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고 중국다운 발상이라고 느껴진다. 한참 가다가 정차해서 전망대 뷰포인트에 올랐다. 몸을 고정하고 더 멀리 바라보니 확실하고 세밀한 아름다움의 실체가 드러난다. 도보여행이 최상의 여행 방식이라고 하는 것 같다. 두 번째 전망대는 더 높다. 여기서는 이 골짜기의 모습, 산, 강, 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전동차는 그 밭 옆으로 난 길로 들어간다. 유채꽃이 다 졌다. 푸른 잎과 줄기는 그 열매를 여물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서 입구에서 가이드가 몇 봉인지 알아맞혀 보라고 했던 대순봉을 자세히 보게 된다. 칠 봉인지 팔 봉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근처 식당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다음은 [네이버 지식백과]에서의 만봉림 안내를 발췌한 것이다
만봉림 [완펑린, 万峰林]
중국 구이저우성[贵州省] 첸시난저우[黔西南州]에 위치한 풍경구.
싱이시[兴义市] 남동부에 위치한 풍경구로 시펑린[西峰林]과 둥펑린[东峰林]으로 나뉜다. 숲의 형태에 따라 례천펑린[列峰林], 바오젠펑린[宝剑峰林], 췬룽펑린[群龙峰林], 뤄한펑린[罗汉峰林], 뎨마오펑린[叠帽峰林] 등 5개 유형으로 구분한다. 각각의 유형이 독립적인 경관을 조성하는데, 특히 샤우툰진[下五屯镇] 경내의 시펑린[西峰林]의 경관이 뛰어나다.
이어서 마령하대협곡(馬嶺河大峽谷)으로 향한다.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3시 30분. 여기서부터 커다란 이 여행에 대한 시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발바닥 감각이 무디어지는 나로서는 아주 큰 도전이라고 생각된다. 내 여정에서 시금석(試金石)이 될 것이다. 더 나가니 바로 길옆에 폭포가 굉음을 지른다. 우기이면 수량이 엄청날 것 같다. 아내가 나보고 약간 비껴보면 무지개가 서려 보인다고 하며 잘 보라고 한다. 정말 무지개가 나타난다. 동영상으로 담아 놓았다. 마지막 장면에 더욱 선명한 무지개가 비쳐 보인다.
숱한 방문객이 걸어서 반질반질하도록 닳아진 잔도(棧道) 계단 오르락내리락하기를 수없이 하니 드디어 포효(咆哮)하는 굉음과 함께 엄청난 수량의 폭포가 우리를 맞이한다. 이제 나는 내 올 길을 다 온 듯하다 싶다. 이런 난 코스 걷기는 척추 수술 후 처음이다.
더 이상 경치 욕심을 내지 않음이 지혜롭다. 벤치에 앉아 바로 앞에서 폭음에 집중한다. 잠시 명상에 잠겨 본다. 오로지 경치 욕심에 빠져들어 전진만 하다가는 이미 스쳐 지난 값진 풍광을 놓쳐 버리기 일쑤다. 앞도 보고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아야 한다. 멀리도 보아야 한다. 발밑도 관찰해야 한다. 대상을 나의 눈과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폰이나 카메라의 뷰 파인더로 보기를 더 욕심내지는 않았는지. 10분쯤 느긋이 앉아서 폭포음에 잠겨 드는 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억지로라도 이런 시간을 가져야 한다.
모일 시간, 4시 20분이 다 돼 간다. 뒤돌아서 간다. 약속 장소에서 도착해서 쉬고 있는데 한 탐방객이 들것에 실려 나가는 모습을 본다. 무리한 경치 욕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상 관조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새 탐방객 한 팀이 어디를 바삐 다녀오는 것 같다. 더 멀리 구마폭포를 다녀왔다고 한다. 규모가 더 크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보다는 가슴과 눈으로 대상을 관조하는 명상 한 자락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셔틀 전동차로 주차장에 모여서 버스에 올랐다. 아주 멀리 있는 안순으로 향해야 한다. 검색하니 3시간 30분 걸린다고 돼 있다. 안순 출발 시간은 5시 30분을 훨씬 지난다. 큰길로 나와서 높은 다리를 건너는데 맞은편 아래가 마령하대협곡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그런데 이렇게 먼데서, 위에서 보니 이 계곡은 아주 자그마하게 보일 뿐이다. 남아 있는 저녁 햇살에 빛나는 유채꽃밭이랑, 다랑논을 차창으로 휙휙 스쳐 지나간다. 진정한 여행자라면 몇 날이 걸리더라도 걷거나 자전거로 이런 고개를 넘어야 한다.
이 고개 넘어 멀리, 말라붙어 보이는 겨울 풀밭이 황량하게 펼쳐지고 있다. 황원(荒原)을 건너고 있는 기분이다. 황원에는 저녁 햇살이 비껴있다. 곳곳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마을 아래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회색 지붕에다 흰 벽을 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그 사이로 맑아 보이는 개울물이 졸졸 흐르고 그 옆으로는 차밭이 형성돼 있는 듯하다. 가까이에서 휙휙 지나가는 가로수는 매화나 살구꽃 같다. 그 사이로 수양버들잎으로 보이는 연두색들이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이 황원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시간은 저녁 8시를 지나고 있다. 더욱 황량해진 계곡에 회색의 납작 조개 같은 게 끊임없이 덮여있다. 자세히 보니 거대한 태양광 발전소 패널이다. 대자연의 웅혼함에서 풍기는 생명력은 그대로 멸절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지역, 구이저우성의 속살은 어쨌든 더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윈난성 동티베트의 광활한 자연에 이어져 있어서 충분히 닮은 듯하다.
안순[安順]에 도착해서 식사를 먼저하고 이번 여정에서 가장 늦게 호텔에 들었다. 유채꽃, 대협곡, 황원에 취하고 반주에 취하다 보니 매우 피곤하다.
다음은 어느 신문 기사에서 인용한 마령하대협곡에 대한 설명을 발췌한 것이다.
마령하대협곡
마령하(馬嶺河)는 오몽산맥(烏蒙山脈)의 백과령(白果嶺)에서 시작된 물이다. 중국 귀주성 흥의에서 동쪽으로 약 1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령하 대협곡은 평균 기온 15~18도로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크지 않으며 사계절 봄과 같아 여행 또는 휴식하기에 좋은 곳이다. 또한 마령하 협곡은 수 만 년 전 조산운동을 통해 지각이 변동되면서 생겨지게 되었고 ‘만 개의 봉우리, 천 개의 섬, 백 개의 폭포, 기이한 협곡’으로 불리는 마령하 협곡의 길이는 약 74㎞이며, 폭은 50~150미터이고, 높이는 200미터 가량 된다. 그래서 험준한 마령하 협곡은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마령하 협곡의 관광은 협곡 절벽을 파서 만든 꼬불꼬불한 길과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보는 것이 장관이다. 또한 하늘높이 솟아 오른 절벽사이 아득히 높은 허공에 다리가 하나 걸려있다. 2025.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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