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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양(貴陽) 길을 가다 5, 귀국 통과의례 해프닝

청솔고개 2025. 1. 30. 23:44

   청솔고개

   2024.3.8.

   04:00에 일어났다. 마지막 날 아침이다. 캡슐커피 머신까지 갖춰져 있어, 갈수록 탐나 보이는 이 호텔을 떠나는 게 아깝다. 내가 일찍 잠든 사이에 아내는 깨서 떠날 짐을 다 꾸려 놓았다. 이번 여행에서 아내의 처신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좋은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아내의 성향 때문이다.

   5시 20분까지 호텔 로비에 모였다. 귀양 공항에서 07:30. 국내선으로 베이징 출발이다. 빵과 요구르트가 든 도시락을 받았다. 귀양에서 이틀 묵으면서도 결국 이 도시의 속살을 들여다보지 못한 게 아쉽다. 공항 가는 새벽길을 폰으로 잠시 담아 본다.

   탑승 절차를 마쳤다. 기다리면서 쉰다. 이럴 때 남은 얘기나 미진한 것을 서로 대화한다. 자주 친근감을 표해오던 어떤 여행객 하나가 자신이 여행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갈수록 글이 안 된다면서 글 잘 다듬는 비법을 알려달라고도 한다. 그러자 수학 과목을 가르치다가 요즘은 글짓기에 큰 관심 있어서 몰두하고 있다고 하는 여행객도 같은 질문을 해 온다. 글짓기 비법(秘法)은 없다. 난감한 요청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건 혼자서 알고 있기는 너무나 아까운 좋은 대목이 있으면 베껴 써보거나 키보드로 컴퓨터에 입력해 본다. 좋은 문장, 매력적인 문장 올리는 블로그 활동을 통해서 진행하는 방식이다.”라고 말해줬다. 내가 수행하고 있는 나름대로 읽기 치유나 쓰기 치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대부분 실천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탑승했다. 이륙을 기다리면서 창으로 내다보니 바깥은 아직 새벽 분위기다. 국내선은 새벽 7시 47분에 베이징으로 향한다. 기체가 막 떠오를 때 창밖을 내다본다. 세상은 어둠과 안개로 뭉개져 보인다. 새벽 7시 51분. 비행기는 무진장으로 펼쳐진 솜뭉치 같은 큰 사막 위를 날고 있다. 옛날 이불솜처럼 푹신해 보이는 구름장을 이처럼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 여기 뛰어내리면 우화등선(羽化登仙), 신선(神仙)이 되는 기분일까.

   기내 간식을 받는다. 국내선이지만 이런 서비스가 제공된다. 오전 10시 10분. 내릴 준비다. 또렷해 보이는 베이징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폰에 담아 본다. 오전 10시 15분. 베이징 공항 연착륙(軟着陸).

   인천공항 국제선 환승 때문에 서둘러 나왔다. 환승 장소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여행단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긴장돼 보이고 웅성거린다. 문제가 발생했다.

   인솔 조장 ㄱ아무개가 우리 조원 11명의 중국 단체 비자 서류와 본인의 여권을 담은 가방을 기내에 두고 내렸다는 것이다. 여행 중 걸음이 불편했었던 남편 ㅇ아무개와 떨어져 앉으면서 남편에게 서류와 여권을 챙기라고 일러두지 않았던 것이 문제의 사단이다.

   조장은 으레 남편이 챙겨올 것을 믿고 말하지 않았고 복잡한 기내에서 빨리 빠져나오느라 경황이 없었다. 서로 확인하지 못한 게 불찰이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한참 뒤에야 “당신, 여권과 비자는?”하고 물으니, 남편은 금시초문이다. 더군다나 조장은 그 서류를 잘 보관한다고 짐칸에 올려놓았다고 했다.

   ㅅ아무개 여행단장과 현지 가이드는 난국을 급히 수습하려고 여기저기 통화를 해 대면서 진땀을 흘린다. 그 서류가 없으면 여기서 며칠 묶일 수밖에 없다. 개인여권과 11명 중국 단체 비자 재발급을 위한 신원확인, 재발급 기간만큼 베이징에 체류해야 하며, 그 기간의 비용은 고스란히 여행자가 물어야 한다. 여권 분실 여행자 한 사람만 묶이는 게 아니라 단체 비자 발급 여행자 11명의 발이 모두 묶인다. 그 비용이 모두 1천만 원이 넘어갈 수도 있다.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내 경우다. 김해공항 도착해서 짐을 찾기 전까지 복용할 혈압, 당뇨약만을 기내 가방에 휴대하였다. 나머지 약은 기내 화물에 넣어 놓았다. 짐은 바로 김해공항에서 찾도록 해 놓았다. 묶이면 그동안 혈압, 당뇨약을 복용하지 못한다는 절박한 문제가 발생한다. 당장 며칠 복용 안 한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복용 중단으로 인해 혈압, 혈당수치 유지가 깨질 수 있다. 이런 데 예민한 나는 평소 필수 복용 약은 여분까지 손가방, 백팩, 기내 캐리어에 보관하곤 했었다. 이번은 돌아오는 일시가 확정되니 설마 별일이야 있겠느냐 하고 안일하게 여겼다. 상상력 빈곤, 예상되는 문제점 체크 못 함, 용의주도하지 못함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일행 모두 2층에 올라가 바닥에 퍼져 앉아 점심으로 나눠준 김밥을 먹으면서도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간절히 기다려 본다. 초조한 시간이 한동안 흘렀다. 낭보가 전해진다. 베이징 가이드와 ㅅ아무개 여행단장의 집요한 해결 노력 덕분이다. 우리 조장의 여권과 단체 비자 가방도 찾아왔고 나중에 확인된 또 다른 한 사람이 빠뜨린 여권도 찾았다. 여권 분실 사고 2건과 단체 비자 분실 건이 모두 해결됐다. 김해공항발 항공기 환승 시간을 얼마 앞두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해결됐다.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오고 환호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끝까지 해결하지 못했더라면 어쩔거나. 아찔했다. 매사 확인에 또 확인이 필요하다는 교훈.

   처음 여행객 모집하면서 여행단의 규모를 들었을 때, 나는 좀 어이없어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총 80여 명 참가로 관광버스 두 대 규모. 애초 40명 규모로 진행했는데 추가 참가자의 요구를 박절하게 거절 못 했다고. 규모를 확대해 버린 일관성 없는 추진에서부터 문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참가자 수에서 그 문제점은 충분히 예상되었었다. 첫날 여행 출발지에서부터 출발이 30분 정도 늦어졌다. 한 사람이 여권을 안 갖고 나와서 다시 챙겨온다고 늦어진 것이다.

   관광 후 집결지 인원 확인, 버스 탑승 인원 확인 등 인원 파악에도 크고 작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한 사람이 오지 않아서 지연 출발은 예사였는데, 그때마다 여행객들은 겉으로는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불편했을 것이다. 이 단체의 성격이 산악회이다 보니 서로 다 잘 아는 사이라 어쩌겠는가. 결국 이런 아찔했을 법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예부터 여행은 그래서 혼자 떠나라고 권고한다. 둘 이상 떠나면 그 어울림을 통한 즐거움이나 도움은 따르겠지만 그만큼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아니 그 이상 더 큰 불편함이 따를지 모른다. 우리는 여행과 유흥을 혼동한다. 여행을 통해 여행 자체가 가져다주는 유익함과 일반적인 유흥의 즐거움을 함께 취하려 하기 때문이다. 흔히 “혼자 여행 어떻게 가나, 심심해서, 동행자가 있어야지.”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동행자는 정말 제 입에 맞는 동행자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우리 또래 부부가 꿈에 부풀어 해외여행 떠났다가 도중에 싸우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면서 그 불쾌한 기억에 부부 동반 여행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친구도 보았다.

   진정한 여행은 성찰과 감동이어야 한다. 구경거리는 도처에 널렸다. 유흥거리도 널렸다. 굳이 여행지에 안 나가도 된다. 집 앞에도 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라는 시쳇말이 있다. 여행은 개고생하러 가는 것이다. 여행에서 안락함을 찾으려거든 거실 소파에 누워서 대형 고화질 티브이의 여행 채널에 묻히면 된다. 그 고생을 통해 뭔가를 얻어내든지 느끼든지 해야 한다. 성찰, 감동, 공감 같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생애를 다른 말로 여정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매 순간 인생의 여정, 어느 도상(途上)에 있다.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구도자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자나 인생 여행자에게도 필요한 경구(驚句)이다. 내 갈 길을 남에게 구하지 말라, 빈 옆자리를 채우려 하지 말라. 혼자 떠나라고 하는 뜻이다.

   오후 2시 46분에 김해공항으로 향해서 이륙했다. 맑아진 베이징 상공과 그 아래 풍광이 창을 통해 한눈에 들어온다. 지평선 가까이 펼쳐져 있는 야산의 검푸른 숲들이 먹물을 풀어놓은 것처럼 선명하다. 창가 자리 행운으로 눈 호강한다.

   김해 비행장에 다가간다. 몰운대라고 기록된 낙동강 하구를 선회해서 착륙한다. 오후 5시 27분. 역광에 부서져 찬연하게 물드는 낙동강 하류의 을숙도가 보인다. 우리의 산하대지가 장엄하고 신비롭다. 왼쪽 날개의 감속 장치가 펼쳐지면서 드디어 무사 안착, 연착륙이다. 대장정이 쉼표를 찍는다. 일상 회귀다. 현실 복귀다. 이 마침표는 아쉽고 생활의 울적함도 감수해야 한다. 아내도 나와 공감한다. 탈도 많았고 말도 많았던 1, 2호차 여행객이 곳곳이 흩어져 내린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손을 흔들며 헤어진다. 우리네 삶이 이러할진대, 각자 인생의 경유지도, 종점도 다르고 다를 것이다.

   집에 들어오니 여독(旅毒)이라는 여행 몸살을 앓을 것 같은 예감이다. 몸의 피로보다 마음의 허함 때문이다. 여행 몸살이 며칠 갈지 모르겠다. 감수해야 한다.      2025.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