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그해의 농막일기 26 최종회(올해 농막의 종막, 내년 영농 계획, 전체 평가, 2012. 11. 9.~2012. 11. 11.)

청솔고개 2022. 4. 10. 17:15

청솔고개

2012. 11. 9. 금. 맑음.

   12시 40분에 동생이 병원 로비에 들어섰다. 병원진료를 마치고 김밥 2인분, 잔치국수 1인분 시켜서 먹고 같이 농막으로 나갔다. 가을이 정말 짙어 간다. 가을 들녘을 바라보니 고향 산천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정답게 다가온다. 농막에 도착해서 동생하고 이것저것 얘기 나누었다.

 

2012. 11. 11. 일. 흐림.

   엊저녁 날씨가 흐리고 빗방울이 후드득 후드득 하더니 아침에 깨 보니 역시 흐린 가을 날씨다. 12시 지나서 큰집에 갔다. 오리 고기 한 마리 반으로 부모님 점심을 차려 드리고 이어서 농막에 나갔다. 부모님께 우리가 내년에는 올해 같은 본격적인 농사일은 같이 못하고 작은 데 채전 밭처럼 가꾸면 가끔 나가서 거들어 줄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 드렸다. 우리 형제자매 모두 평범한 가정 꾸리고 내왕하는 것은 이제 이승에서는 성사될 수 없는 일 같다. 회한(悔恨) 같은 것이 갈바람처럼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오늘 아침 영상 산 프로그램에서 7남매 내외가 가지산, 간월산-신불산-영축산 등반하는 볼 때도 우리도 내외 짝 맞춰 모두 같이 산에 가면 열 명은 되는데 말이다.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러고 보니 ‘아! 이승에서 살아가면서 후회 안 되는 게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엄습한다. 너무 많은 욕심을 꿈꾸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까 차 타자 말자 어머니의 말씀 “작년에는 단풍 구경도 니가 시켜 주더니만은…….”이 떠오른다. 내가 이걸 생각하고 식사 기다리면서 아버지를 향해서 농담쪼로 “아버지는 어머니 단풍 구경 시켜 드렸는데 어머니께서 잊어버리신 거지요?”하고 너스레를 떨어보았다. 어머니는 정말 이 아들에게 그런 걸 기억하고 기대하신 것 같다. 식당으로 차를 몰고 들어오자 어머니는 “고만 이리로 들어와 버리나. 단풍 구경 안 가고.” 하시는 게 아닌가. 그래서 송선지까지 드라이브하면서 가을 단풍을 즐기도록 하셨다. 어머니께서 중간에 자꾸 비 온다고 돌아가자 하시지만 그게 마음에 없는 말씀이란 거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송선지 못 둑에 차를 세워 놓고 맞은편 산 낙엽송 군락지 단풍을 바라본다. 샛노란 낙엽송 잎이 검푸른 소나무 사이에 선명하게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아름답다.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정말 좋아하시고 감탄한다. 다만 카메라 가져와서 이 장면을 한 컷 해 놓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비가 약간 후드득 거리지만 불타는 낙엽송의 아름다움을 숨길 수는 없는 법. 아 참 잘했다. 스스로에 대한 대견한 마음에 모든 우울한 마음이 가신다. 흥겹고 즐겁다. 이제 또 한 해가 가고 내년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어떻게 되실지 모르는 일, 또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물에…….”를 들으실 수 있을는지 모르는 일 아닌가.

<이로써 그동안 10년 전 당시 기록으로 남겨 놓았던 데서 농막 일에 관한 것을 중심으로 다시 정리해 보았다. 내 30대에 교과서에 실렸던 글 하나가 생각난다. 길가다가 들녘에서 농민들이 일을 하다가 쉬면서 잠시 참을 먹을 때의 그 정경에 매료된 도시인은 전원의 농민들의 삶을 그 한 단면으로만 파악하게 된다는 것이다. 거머리 물려가면서, 산모기에 뜯겨가면서 진흙범벅으로 된 다 타버린 농민들의 모습에서 너무나 쉽게 낭만, 친환경, 자연 친화라는 콘셉트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찌든 도시 생활의 도피처로 농어산촌을 선택하는 우(愚)를 범하기 쉽다는 것이다. 농업현장도 엄연한 생활 현장이며 결코 도시인의 머릿속에서만 그려지는 자유, 꿈, 자연의 달콤한 이미지로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관리한 농업 규모는 전체 700여 평 중 600평에 고추 2,500포기, 그 만한 넓이의 참깨, 복판에 고구마 한 이랑, 100평은 채전밭으로 일궈서 각종 채소 심기, 50평은 두 동의 비닐하우스가 깔고 앉은 건평, 그 한 동은 농막, 나머지 한 동은 각종 농기구 등 보관하는 곳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농지에서 그 기간 동안 매출500여만 원정도 매출이 기록됐다. 물론 인건비, 재료비 등 부대비용 모두 포함한 것이다. 2월 말에서 11월 초까지 3인이 종사했으니 1인당 매출액은 160만 원 정도. 인건비 제외하면 수익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 현재 농업의 경제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농촌의 현실은 이렇게 엄정한 것이다. 8개월 여 종사한 최종 소감이다.> 2022.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