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기억 5, '아! 법성포여' 동행과의 동행 2
청솔고개
15:00. 풍천 장어 전문 식당에서 출발.
선운사 경내 참배는 몇 년 전 비올 때 우리 가족들과 다 같이 한 번 보았다는 것으로 때우고 입구만 보고 되돌아 나왔다.
선운산 도립공원을 휘감아 동호-구시포-법성포-영광으로 생전 처음 발길을 올려놓았다. 미답의 길을 간다는 것은 언제나 내겐 흥분 그 자체였다.
이제는 정말 세밀하게 더욱 세밀하게 기록해야겠다. 독일의 문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 나오는 박물학적 자료와 정보 지식은 정말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것이 이른바 헤세가 말하는 의미부여 작업의 일환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법성포, 어느 시인이 정말 이 자그마한 포구에 얽힌 그만의 사연을 이렇게 남도(南道)의 한(恨)과 살아가는 의미로 풀어 나간 “법성포 여자”라는 시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바닷물들은 모두 밀려 나가고 부두 바로 아래 마치 큰 강처럼 깊이 판 부분만 물이 차 있어서 배들이 떠 있었다. 바다는 마치 몇 달 가문 뒤 저수지를 보는 것처럼 뻘건 갯벌만이 그 모습을 마치 황소 혓바닥처럼 드러내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열로 그 혓바닥에는 마지막 남은 수분마저 증발되어 버릴 듯 한 황당한 풍정이었다.
아! 법성포가 이런 모습으로 내게 남아 있구나. 나를 만나는구나. 기억과 상념과 이미지 보조 수단으로 몇 컷 기록했다. 염전인지 개펄인지도 모를 듯 한 낯선 이국 풍정이다. 남도로 내려가면서 붉디붉은 밭 흙을 보고 있던 동행도 “정말 흙이 저렇게 붉을 수가 있나요?”하면서 나와 생각이 같음을 내비치니 나도 공감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남도를 여행할 때마다 이 붉은 흙[黃土]가 아니라 적토(赤土)라 함이 옳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8월의 이글거리는 태양도 그 마지막 기운을 뿜는 저녁녘, 황토 아니 적토에 깃든 남도인 들의 알 수 없는 슬픔을 떠올려 본다. 알 듯 모를 듯 한 그 정한(情恨).
끝없이 해안으로 이어진 구릉 같은 산과 들, 밭에는 옥수수랑 고추가 익어 가고 있고 남녘의 하늘은 옅푸른 기운이 길손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는다.
법성포에서 영광까지는 별로 멀지 않았다. 전라남도의 가장 북쪽 마을, 영광 굴비 상품 안내가 곳곳이 걸려 있다. 말만 듣던 영광이라는 곳.
서해안 고속도로에 올랐다. 쭉 뻗은 새 도로 너머 하늘에 떠 있는 여름 구름들, 숱한 상념을 자극한다. 한 마디로 아름답다. 남도의 붉은 흙에 진초록 풀과 나무, 푸르스름한 저녁 구름, 이름 모를 남도 수풀, 끝없이 이어지는 들녘, 아득한 지평선 가까이 낮게 드리워진 산자락. 어느 이역의 아름다움이던가!
원시인들의 삶터, 고인돌 휴게소에서 과일을 먹고 과열된 차를 식혔다.
17:40. 군산으로 향발했다.
줄포-부안-만경-동군산 나들목을 거쳐 가는 이 미답(未踏)의 서해안 고속도로는 볼수록 아름답고 현란한 주변의 이국적인 자연환경으로 나의 정신을 앗아갔다. 군산은 처음 방문인 것 같았다. 암만 생각해도 두 번 방문한 처가 쪽 사돈 사는 곳은 은 군산이 아니라 익산인데 착각한 것 같았다.
시내에 접어드니 제법 날이 어둑어둑, 그래도 바다를 끼고 있어서 부두나 어촌 모습이 특이할 것 같았고, 또한 동행이 그리 바라던 군산의 전라도 아귀찜 먹을거리도 아마 이런 쪽에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참으로 희한하게 듬성듬성 보이는 차량 행렬을 비켜서 여객 터미널까지 가 보았으나 바다는 구경할 수 없고 우리들을 압도하는 부두의 공단 지대 위용만 나타난다. 뒤로 돌아서 아까 동행이 보았던 “**아구”식당을 찾아 갔다. 동행의 기적적인 발견이었다.
이곳 분들은 언제나 그랬었지. 주인장이며 종업원들의 친절하고 나긋나긋한 말소리가 식사를 아직 시작하지 않았지만 매력적인 식사가 나올 것이라는 예감을 동반하고 있었다. 단체 손님이 와서 우리 자리를 좀 이동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도 정말 미안한 표정과 태도로 우리들에게 양해를 구했고 그래서 우리는 흔쾌한 기분으로 따라 주었다. 나중에는 후식으로 사이다 한 병을 서비스하는 배려도 잊지 않아서 더욱 흐뭇하였다.
먹음직스럽게 쪄진 아귀찜더미가 푸짐하게 쟁반에 올려 온 순간 동행 역시 자기의 이 식당 발견에 스스로 감사하고 있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무튼 심한 설사로 위축이 되어 있는 동행에게는 이 식사 한 끼가 충분히 보상되고 있어서 큰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친절한 종업원들의 표정과 서비스는 피곤한 여행길의 막바지를 정말 즐겁게 장식해 주었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을 찾아 나섰다. 이정표만 열심히 보면 제대로 갈 수 있으니 길 찾는 것은 이제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익산으로 향하는 전주 군산 가도 이른바 전군가도를 달렸다. 익산이 끝나 갈 무렵 복잡한 오거리인가 육거리에서 잠시 방향감각을 잃고 역주행하려고 하다가 아찔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일로 거침없이 달렸다. 호남고속도로에 올렸다. 언젠가 한 번 왔다가 차가 밀리는 통에 급히 빠져나와 계룡산으로 갔던 그 여름의 기억이 새롭다.
21:40. 계룡휴게소 도착, 잠시 눈을 부치고 난후 커피로 각성하고 22:10. 다시 출발하였다. 이제부터는 장기전이고 지구전이다. 대전 남부 순환 고속도로로 간다고 생각했는데 불확실해서 그냥 회덕 분기점까지 가서 경부선을 탔다. 지금 생각하니 시행착오다. 그러나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을 느낀다는 사실이 그대로 입증된 셈이다. 둘러 가면 대략 28km, 남부 순환도로로 가면 18km이니 10km, 정도 차이 난다. 대전서 조금 가다가 잠이 쏟아져서 조금 들어간 주차공간, 추풍령, 칠곡 휴게소 등에 들러서 잠을 청하고 잠을 깨워 도착하였는데 02:45. 드디어 귀향. 날이 바뀌어 8월 3일 새벽. 18시간 동안 장장 841km 동행 기록.
아아, 정말 하루만의 여행, 길고도 힘든 하루만의 여름 여행은 끝이 났다.
[이 글은 2002. 8. 3.에 쓴 것을 다시 정리한 것임]
2020.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