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납일(臘日), 참새잡이 세시 풍속/불빛에 지친 듯 눈을 감아버리는 작은 참새의 콩닥콩닥 뛰는 따스한 가슴팍을 잊을 수 없었다

청솔고개 2021. 1. 1. 23:35

납일(臘日), 참새잡이 세시 풍속

                                                                                     청솔고개

   우리 마을에서는 음력 섣달 쯤 납일(臘日)이란 풍습이 지켜진다. 이즘은 동네마다 저녁에 청장년들이 참새를 잡는 일을 공개적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밤이 이슥해질 무렵, 마당에서 뭔가 두런두런 사람소리가 나고 덴짓불이 어른어른하면서 “어험 어험”하고 인기척을 낸다. 이어서 “ **뜨기 지붕이 두터우니 참새가 많이 있을 것 같아 새 좀 잡을라고요…….” 하는 젊은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대개 집 주인들은 그냥 모른 체 하거나 가끔은 “불이나 조심해라”고 거든다. 밖에서는 “덴짓불인데요.”하고 대꾸한다. “덴짓불이라도 조심해야재”하고 그친다. 한 동안 덴짓불이 그냥 호야불이나 초롱불처럼 기름을 태워서 밝히는 불빛인 줄 알고 말한 어른들의 무지함을 놀린다고 “덴짓불도 조심해야재”하는 말을 장난삼아 흉내 내곤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그 당시 귀하디귀해서 한 동네 하나 있을까 말까한 그 ‘덴짓불’은 전깃불로 지금의 플래시를 가리키는 일본식 발음인 것이다.

   그러면 나는 뭔가 싶어서 어린 마음에 호기심이 발동해서 졸린 눈을 부비면서 내복바람으로 밖에 나가 본다. 오들오들 떨면서 지켜보면 참새 잡으러 온 청년 두 셋은 소죽 솥 옆에 눕혀져 있던 우리 집 작두를 들고 지붕 밑으로 가져가서 벌떡 세운다. 그 위로 하나는 올라타고 푹 싹은 초가지붕 이엉 사이 움푹 들어간 구멍으로 덴짓불을 비추면서 손을 쑥 들이 민다. 새들은 바로 비추는 불빛에 눈만 반들반들하면서 꼼짝 없이 붙들려 그냥 잡혀 나오기 마련이다. 언젠가는 한 번 내가 그 새를 한 번 만져보고 싶다고 하니 “새 날려뿌릴라 조심해라”하면서 내 손에 쥐어 준다. 놀라서 까만 눈을 반들반들하거나 불빛에 지친 듯 눈을 감아버리는 작은 참새의 콩닥콩닥 뛰는 따스한 가슴팍을 잊을 수 없었다. 지금도 그 온기가 느껴진다. 이 어린 참새가 목이 비틀린 채 결국 구이가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을 많이 아파했던 생각이 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평소에는 참새잡이 같은 살생을 꺼리었던 분위기였지만 납일 즈음은 그것이 세시 풍속으로 공인되었던 것이다. 그날 잡은 참새들은 구이로 동네 청년들의 최고급 안줏감으로 진상된 것은 물론이다.

   때로는 이런 식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그날 밤, 밖에서 두런두런 소리가 들린다. 동네 아재들이다. 인기척을 낸다. 납일이 가까워 오는가. 새 잡으러 우리 집에 왔다. 덴짓불이 제법 밝다. 작두가 없으면 사다리를 세워서 두껍게 이어진 초가지붕에 덴짓불을 비춘다. 참새의 눈알이 반들거면서 도망은 절대 못 간다. 그냥 새를 손으로 쉽게 잡아서 꺼낸다. 참 쉽다. 또 한 마리. 세 마리 잡았단다.

   누군가가 새집에 새가 있어 손을 넣었는데 물컹하고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기에 이게 뭐지 하고 놀라 바로 손 빼고 불 비쳐보았더니 능구렁이라던가, 쥐라던가 했는데 아무래도 새잡는 자신의 용맹 담을 좀 과하게 부풀린 게 아닌가 싶다. 쥐라면 몰라도. 겨울에 능구렁이가 아무리 두텁게 이어져 썩어 내린 지붕 속에서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오래된 우리 집 지붕 추녀에 난 구멍에 집동만한 구렁이가 나오는 꿈을 더러 꾸곤 했다. 그 후 그 구멍은 항상 내겐 공포의 구멍이었다. 이렇게 새 잡은 걸 구경하는 거 역시 깊어가는 한 겨울 내 유년의 멋진 볼거리였다. 그런데 참새구이 요리는 한 번도 맛보지 못했다. 오롯이 어른들 탁배기 안주감이 되는 것이다.  2021. 1. 1.

 

[주(注)]

⁰납일(臘日) : 동지로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을 가리키는 세시 풍속. 납일 밤에 농촌에서는 새잡기를 하는 민속이 있다. 즉, 청소년들이 패를 지어 새통발을 가지고 다니면서 새가 사는 지붕의 추녀를 찾아다닌다. 통발을 추녀에 대고 긴 막대기로 추녀를 치면 새들이 자다가 놀라서 날아 나오다가 통발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